분명히 요즘의 동이는 지루하다. 그래도 볼 사람은 볼 수밖에 없지만 팬심을 걸러낸다면 그 지루함을 속일 수 없다. 그런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이는 진작부터 연장설이 돌아다니고 있다. 과연 이런 진행으로 연장이 가당키나 한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인데 34회는 그런 전제를 떠나서 새로운 흥분을 채워주었다.

동이가 아니더라도 드라마를 독서하듯이 깍듯한 자세로 시청하지는 않겠지만 34회 후반부에 터진 서용기(정진영)의 참아왔던 상처가 터지면서 한동안 없던 긴장감이 고조됐다. 그뿐 아니라 동이로서는 처음으로 몇 가지 사건이 복합되는 상황이라 그 긴장감을 더욱 자극했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보자면, 세자 고명을 들고 와 등록유초를 요구하는 청국 사신들에 장옥정과 남인들은 좋다가 만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등록유초를 찾아내 세자 고명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런 한편 장옥정은 후궁첩지를 자진해서 동이에게 내린다. 장옥정은 동이에게 후궁첩지를 내리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한다.

말로는 숙종이 아끼는 동이에게 후궁첩지를 내리는 모양이 넓은 아량을 가진 중전으로 포장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동이의 가려진 출신을 밝혀낼 완벽한 외통수를 쓴 것이다. 장옥정의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양수겸장 전략은 물론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의외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동이의 후궁첩지는 엉뚱하게 보류되었던 동이와 서용기의 숙명적 관계로 불똥이 튄다. 아주 오랫동안 서용기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던 묵은 상처를 건들면서 진정한 내면의 갈등, 대의를 위한 눈물어린 포기 등 아주 다양한 감정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아주 입안을 바짝 마르게 할 정도로 흥미를 주었다. 아직도 서용기는 자기 부친이 검계에 의해서 살해됐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사건 이후 12년이 지난 현재 분명 자신과 같은 길을 가고 있고 또 오랫동안 힘이 보태온 동이와의 관계가 아주 심각한 위기에 갇혀버린 것이다. 물론 예고를 보면 서용기는 동이의 과거를 숨겨주기로 결정한다. 당연한 해결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용기의 인간적인 고뇌를 통해서 또한 오해 역시도 풀어지게 될 것이다.

해서 동이의 고속행진은 멈추거나 우회하는 일 없이 쭉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 진행은 변함없지만 이 과정은 동이의 오랜 숙제 몇 가지 중 하나를 해결한다는 점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물론 이것이 검계 그 자체의 부활은 아니지만 동이와 서용기의 오래된 인연을 서로 알게 되고 오해를 풀게 됨으로써 서용기가 이후 동이를 단지 숙종의 지시 때문만이 아닌 스스로의 동기를 갖게 된다는 의미도 있다.

현재 승은상궁 동이에게는 정치적 배경이 전혀 없는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 과거 궁녀들이 왕에게 승은을 받은 경우는 대단히 많았다. 그렇다고 모두 첩지를 받고 후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경우는 아주 일부분에 그쳤다. 물론 승은상궁이 되는 것만도 큰 일이지만 승은을 입고도 내명부 본진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승은궁녀들의 정치적 배경이 없다는 점도 아주 크게 작용한다. 동이 역시 그 범주 안에 들 수밖에 없는데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서용기, 심운택 등 정치적 배경을 등에 업게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놓칠 수 없다.

12년 간 잘못된 원한을 가져왔던 서용기의 변화는 그래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숙종이 심운택에게 동이를 보호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서용기가 갖게 될 동이에 대한 회한은 가장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며 오히려 그동안 서용기와 동이가 꾸준히 동행했던 이유에 대한 늦은 동기를 마련해주는 면도 없지 않다.

심운택의 귀환은 폐비의 복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장옥정과 동이의 공수관계가 바뀔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동이와 대립할 절대적 적수와의 싸움은 이전과 달리 정치적 공방이 될 수밖에 없다. 동이가 노비나 궁녀 따위가 아닌 후궁이라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 탓이다. 그러나 내명부에 속한 동이가 직접 공격과 수비를 다 할 수 없다. 이제 서용기, 차천수, 심운택 이 삼각편대가 동이의 정치적 공격과 수비를 대신할 전위부대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동이의 전면적인 개편을 갖는 것과 다름없는 이 변화는 오랫동안 보조적 역할에 머물던 정진영과 배수빈을 드라마 전면에 내세우는 동기가 되지 않을까 짐작하게 된다. 이 두 배우의 활약을 기대했던 시청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다음 주 서용기는 마음 속 모든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대의를 위한 자기희생으로 동이의 과거를 감추게 될 것이나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동이와 서용기의 관계가 어떻게든 정립될 것이며 마침내 손가락 신호의 비밀에 대한 접근도 시작될 것이다.

34회에 결론 없이 펼쳐놓은 이 모든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후반부 혹은 3부로 치닫는 동이의 신선한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란 기대감을 자극하고 있다. 대전환을 암시하는 동이와 서용기의 숙명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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