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의 앨범을 발매하면서 그 컨셉을 정하는 것은 자기들 자유입니다. 자신의 전체 경력에서 이 앨범 활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떠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와 의미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포장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를 두고 결정한 것이 바로 컨셉이죠. 이를 위해 가수 당사자는 물론이고 여러 전문 스텝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것이겠고 우리가 각종 매체를 통해 전달받는 것들은 결국 끝내 나온 산물이겠죠.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것들을 하면서 이익을 창출하는 이른바 프로들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의욕과 욕심이 과하다보면 전혀 엉뚱한, 보기에 민망한 과욕의 컨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마치 손담비의 세 번째 미니 앨범 컨셉, the Queen처럼 말이죠.

여왕이랍니다. 아마도 군림하는 자. 혹은 지배하는 자로서의 이미지가 몹시도 탐이 났던 모양이죠. 예상치 못한 천안함 사태로 이효리가 잠시 삐끗하고, 다른 여성 솔로 가수들의 성과도 아이돌에게 밀려 밋밋하기 그지없는 지금, 무주공산처럼 비어있는 듯 한 여자 가수 제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가보죠. 그런데 말이죠. 그녀가 여자인건 알겠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것도 정규 앨범도 하나에 이번이 세 번째 미니 앨범을 내는 초짜티를 갓 벗은 신예가 여왕이라는 호칭을 당당하게 붙이는 것이죠?

네. 발매한 앨범의 개수가, 활동한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과 가수들도 단 하나의 앨범, 단 한곡의 노래로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풍미했던 적이 수도 없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길이 납득할 정도의 왕도, 그야말로 여왕의 길이었다면, 하다못해 이번에 발표한 곡과 무대와 실력이 그런 위용에 걸맞은 것이라면 기꺼이 이 앨범의 컨셉을 기쁜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돌 투성이의 가요계에 균형을 맞춰줄 거물 여자 솔로가수의 존재는 너무나도 절실하고 필요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손담비의 이번 여왕 칭호는 그런 납득이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그녀에게 가해졌던 가장 맹렬한, 그리고 뼈아픈 지적이었던 허세나 거품에 더 가까워 보이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주었던 객관적인 모습은 인상적인 히트곡 몇 개, 그것도 미쳤어의 의자 퍼포먼스를 제외하면 그리 큰 파급력을 가지지 못한 주목할 만한 신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나마 올라오던 상승세가 선덕여왕에게 밀린 드라마 드림의 참패로 한풀 꺾인 것이 현실이구요. 새로운 CF 스타로서의 면모도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조차도 한때의 유행, 지금은 같은 소속사인 유이에게도 밀리는 지나간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오랜 공백 끝에 야심차게 들고 나온 타이틀곡이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음원 시장에서의 반응도 시큰둥하고 이번 활동과 관련해서는 그저 뮤직비디오와 무대 컨셉의 표절문제로 화제에 오르고 있는 것뿐이죠. 차라리 같은 시기에 컴백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나르샤가 선보이는 솔로 앨범이 훨씬 더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녀로서는 결코 우호적이지 못한, 그렇다고 어떤 반등의 계기가 보이지도 않는 실망스러운 복귀에요.

결국 그녀가 왜 여왕인지는 그런 호칭을 붙여준 소속사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손담비에게 여왕의 칭호는 너무나도 이르고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아요. 차라리 도전자의 모습으로, 참신하고 겸손한 자세로 신예 여자 솔로의 선두주자를 노렸다면 이렇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번 그녀의 활동과 홍보 전략을 보면 그놈의 허세,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그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노출만 시켜주면 유명세와 인기는 나중에 따라온다는 거품 전략이 너무나 빨리 그 밑바닥을 보여준 것만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해는 가지만 동의하기는 어려운 정말 민망한 여왕님 컨셉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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