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는 참 어리석고 무모합니다. 궁궐에 그렇게 오래 있고 감찰부 궁녀로서 장희재의 음모를 파헤치고 다녔으면서도, 궁궐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계산되지 않거나 의도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여전히 믿고 싶지가 않은데요. 그렇게 동이는 아직 세상물정도 모르고 원칙만을 내세우는 융통성 없고 꽉 막힌 모습을 보여주며, 항상 정공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궁궐 내에서는 정당한 승부란 없는데요. 동이는 인파이팅으로 원투 스트레이트만 날리며 승부를 보는 반면, 장희빈은 아웃파이팅으로 잽에서부터 스트레이트, 어퍼, 훅에 반칙까지 서슴지 않으며 결국 승리를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동이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장희빈

이번 33회에서는 장희빈이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어보고 방심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동이를 가지고 노는 인상적인 모습들이 그려졌는데요. 장희빈은 예전에 후궁 첩지가 내리기 전 이미 어머니 윤씨가 회임 약재를 궁궐 내 반입했던 일로 당시 중전이었던 인현왕후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 적이 있었기에, 동이가 승은상궁으로 들어오면서 궁녀들의 괴질로 세자를 시해하려 한다는 오해를 사게 되자 그것이 누군가 꾸민 일이라는 것을 눈치 채게 됩니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겠다는 동이를 보면서, 그것을 꾸밀만한 사람은 자신의 사람들 밖에 없기에 조상궁을 추궁하여 자신의 어머니가 꾸민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장희빈은 동이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어머니 윤씨를 보면서, 결국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을 수습하고 동이가 숙종으로 부터의 믿음을 잃게 만들려는 계략을 세우게 되죠.

한편 감찰부 장상궁과 심지어는 숙종 마저도 동이에게 중궁전에서 벌인 일인지도 모른다고 충고를 하지만, 동이는 그것을 쉽게 믿고 싶지 않은데요. 비록 지금은 장희빈과 자신의 관계가 틀어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동이는 예전 명성대비를 시해하려 하려 한 것은 장희빈이 몰랐던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고, 또한 마음 한 곳에는 예전 자신이 감찰부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자신을 위해 직접 위험을 감수했던 장옥정의 그 천성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희빈은 이미 각성(?)하여 이제 더러운 짓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하려고 하는데요. 동이가 궁녀들 사이에 발생하는 괴질의 원인과 그 괴질을 퍼뜨린 범인이 누군지 알아낼 것을 대비하여, 분전상인이 잡힐 경우 죄를 뒤집어쓰도록 포섭해두게 됩니다.

그리고 동이가 해결할 것을 예상한 장희빈은 동이를 감찰부로 소환하고, 미리 선수를 쳐서 중궁전에서 문제의 연분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죠. 또한 장희빈은 심어두었던 궁녀로부터 숙종에게 감찰부 장상궁이 괴질사건의 배후에 장희빈의 처가가 있는 것 같다는 보고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이에 장희빈은 숙종이 중궁전으로 올 것을 예상하고 사람을 시켜 동이를 감찰부에서 풀어주고, 앞서 선수 쳐서 잡아들였던 범인에 대해서 고신을 시작하면서 그것을 숙종이 볼 수 있도록 일을 꾸밉니다.

그렇게 장희빈은 숙종에게 결국 모든 문제는 자신이 동이를 위해 직접 해결하였고, 동이를 감찰부에 소환한 것 역시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동이를 가르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믿지 못한 숙종을 무안하게 만들게 되죠. 결국 숙종은 장희빈이 동이를 위해준다고 착각하게 되고, 그간 동이로부터 들었던 장희빈에 대한 의구심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데요. 바로 이것이 장희빈이 노린 동이가 숙종으로 부터의 믿음을 잃게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장희빈의 치명적인 실수

장희빈은 동이가 괴질사건을 자신이 해결하고자 찾아왔을 때, 그리고 괴질사건이 해결되고 난 뒤 동이가 다시 한 번 찾아왔을 때 재밌는 설전을 벌이는데요. 서로가 생각하는 야심에 대하여 논쟁을 펼치기도 합니다.

무엇 때문이냐? 그런 결의라도 내보여 아랫것들의 환심이라도 사보겠다는 것이냐? 어찌 보면 가장 무서운 사람은 너로구나. 처음에는 궁녀의 자리도 가당치 않다고 하더니, 결국은 너도 나와 같은 야심이 있었던 게야. 아니냐?

마마께선 그런 야심으로 오래전 소인을 위해 나서주셨던 것입니까? 무엇을 야심이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옳은 것을 이루기 위한 것을 뜻하신다면, 예. 그렇습니다. 저에겐 그런 야심이 있습니다. 마마. 누구도 자신의 죄가 아닌 것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진 않을 것입니다. 당연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나라와 이 궐에서 힘을 가진자들이 숱하게 그런 일들을 해왔지만,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서라도 꼭 그리되게 할 것이옵니다. 그것이 제게 당치도 않은 이 벅찬 자리가 주어진 까닭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그래. 그럼 어디 한번 해보거라. 너는 여전히 어리석고 무모한 의기만 넘치는구나. 당연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까닭이 무엇인 것 같으냐? 그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권력이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니 자리에서 고작 니가 가진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오래전 니가 나를 위해 애써준 옛정이 있으니 너에게 귀한 충고를 하나 해주마. 이곳에서 니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 옳은 것을 이루고 싶다 했느냐? 그렇다면 잘 보고 배워야 해야 할 것이다. 이 곳은 옳은 것을 이루는 곳이 아니라, 그른 것조차 옳다고 여기도록 만들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를 넘어서고 싶다면 니 그 소망대로 나를 끌어내리고 이 자리에 다시 폐비를 앉히고 싶다면, 다시 그렇게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지 말거라. 알겠느냐? 이것은 겨우 시작일 테니 말이다.

장희빈과 동이의 설전을 보다보면, 예전 MBC에서 했던 드라마 선덕여왕이 생각나는데요. 미실과 덕만공주가 서로 반대편에 서서 대치하고 설전을 벌이지만, 결국 점점 덕만공주가 미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며 업그레이드(?) 되어가던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록 적대적 관계였지만 어떤 의미로는 스승과 같은 존재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이번 그 둘의 설전을 보면서, 장희빈은 결코 의도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둘의 관계 역시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이는 서두에 얘기한 것과 같이 원칙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궁궐에 있는 사람들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어떤 더러운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는데요. 이번 일을 계기로 그리고 장희빈과의 설전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되고, 권력이 무엇인지, 자신이 옳은 것을 이루고자 하려면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장희빈과의 싸움은 결코 피할 수 없음을, 장희빈은 이미 예전에 자신이 알던 천비를 위해서도 자신을 희생하는 그런 사람이 이제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장희빈은 발끈(?)해서 옛정을 핑계 삼아 해주었던 귀한 충고는 앞으로 동이와 장희빈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동이가 승은상궁에서 후궁으로서 그리고 숙원을 지나 정 1품 숙빈의 자리에 오르고 영조의 어미로서, 궁궐 내 수많은 위협 속에서 연잉군을 지키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겠지요. 특히나 세력이 없는 동이는 권력의 습성을 잘 알아야 세력들 틈에서 자신이 힘을 가질 수 있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가 있으니까요.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skagns.tistory.com 을 운영하고 있다. 3차원적인 시선으로 문화연예 전반에 담긴 그 의미를 분석하고 숨겨진 진의를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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