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남아공 더반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한국 대 나이지리아 경기에서 원정 16강 진출의 염원을 달성한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무적함대' 스페인의 우승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아프리카에서 열린 첫 월드컵이었던 이번 대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 팀들의 약세 속에서 문어 '파울'을 전 지구적인 스타로 만든 '이변'의 대회였다. 물론, 우리에게 이번 월드컵은 한국 대표 팀이 사상 첫 원정 16강을 기록한 대회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비단, 남아공 월드컵의 의미는 한국 대표팀의 첫 원정 16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월드컵은 국내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추동해 낸 기념비적인 대회로 기록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SBS의 '단독중계'는 국내 월드컵 중계 역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월드컵 단독 중계의 손익, 최소 100억 적자 최대 200억 적자

사실, 월드컵 '단독중계'라고 하는 것이 워낙에 초유의 경험이다 보니 개막전이 전파를 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단독 중계되는 월드컵의 양상이 어떻게 될지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설왕설래가 많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인 견해는 월드컵의 상업성을 감안할 때 SBS가 '엄청난 수익'을 거둬드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단적으로 SBS미디어홀딩스의 주가는 월드컵 개막 직전 10일간 무려 73.6%나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현재 시점에서, 단순히 수익 면만 따져보면 SBS는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SBS는 월드컵을 단독 중계하며, 중계권료로 750여 억 등 최소한 1천 100억 이상의 돈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방송통신위원회에 납부해야 하는 과징금과 자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따라 FIFA에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중계권료 등을 합치면 SBS의 총 투자 금액은 1천 200억 이상 될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스>가 확인한 SBS가 지상파 광고 수익은 700억이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아직,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의 공식적인 정산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연합뉴스>와 인터뷰 한 코바코의 관계자 역시 "700억 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SBS가 케이블, IPTV, 인터넷 등에 중계권을 재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이 300억 안팎임을 감안하면 최소 100억에서 최대 200억 사이의 순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월드컵이 SBS의 수익 구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SBS 주가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8강 탈락이 결정된 직후 SBS의 주가는 최근 1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에서 저가 행진을 벌였다.

SBS는 정말, '돈 대신 명예를 얻었'을까?

물론, 월드컵 단독중계의 득실을 수익 면에서만 따지는 것은 온당치 않다. 12일 화제가 됐던 한 기사의 제목을 빌자면, SBS는 월드컵 단독중계로 "돈 대신 명예 얻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SBS가 단독중계 강행함에 있어 여러 가지 희망적인 전제들이 있긴 했지만 수익 면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SBS 홍보팀은 물론 보도국에서도 '본전만 하면 다행 아니겠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SBS의 노림수는 다른 것이었다. 수익 보다는 오히려 '3등 방송'으로 굳어진 이미지의 쇄신과 매체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를 단독중계의 주요한 목표로 삼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SBS가 명예를 얻었다면, 이 부분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부분에서 SBS의 의도가 관철됐는가를 살펴보면 역시 시원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월드컵 기간 동안 SBS는 불필요한 논란을 너무 많이 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전광판 중계권료 논란과 타사의 응원 취재 방해를 꼽을 수 있다.

전광판 중계권료 논란의 경우 시장경제에 관대한 <조선일보>조차 ‘돈독 오른 SBS’라고 쏘아 붙였을 정도로 사회적 상식을 위배하는 것이었다. SBS는 지상파 3사가 공동 중계했던 2006년에도 있었던 문제이며, FIFA의 방침상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민영방송이 '국민의 축제를 독점해 돈을 뽑아 낸다'는 대중의 규범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타사의 응원 취재를 방해했다는 논란 역시 문제는 'SBS의 월드컵 독점'이라는 인식을 확대시키며 SBS의 욕심이 과해 광장도 멋대로 하려한다는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월드컵 기간 중 SBS가 '돈만 밝히는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된 점은 두고두고 SBS의 행보를 어렵게 할 문제다.

SBS 내부적으로는 시청률에 대한 고민이 커 보인다. 이 대목은 월드컵에서 진정한 '승자의 저주'라고 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전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월드컵 시청률은 부진한 편이었다. 이는 축구의 인기가 지속적인 인기 하락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드컵 이외의 콘텐츠가 동시에 방송될 때의 경쟁력이 한 번도 검증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역시나 그랬다. KBS의 <제빵왕 김탁구>를 위시해 <동이> 등 KBS와 MBC의 드라마 시청률은 월드컵 기간 중 예상 밖의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월드컵 기간 중에도 의제를 설정하는 <PD수첩>의 힘은 끊어지지 않았다. 반면, SBS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자이언트>와 <나쁜남자>는 월드컵으로 편성의 흐름이 완전히 끊어지면서 곤두박질 쳤고, 편성이 회복된 이후에도 맥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뉴스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했다. 뉴스는 시청률을 떠나 방송의 신뢰성 전체와 관련있다. 대규모 인력을 남아공에 파견 보냈던 SBS 뉴스는 월드컵 기간 내내 ''부실한' 뉴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 뉴스 분량의 절반 이상이 월드컵으로 도배된 SBS 8시뉴스는 뉴스라기 보단 사실상 월드컵 특집 편성물에 가까운 구성이었다. 한국팀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지난 6월 23일의 경우에는 무려 1시간 20분 가까운 시간을 뉴스로 편성하여 같은 장면을 수십 차례 이상 반복하는 '추태'를 연출하기도 했다.

SBS의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진 장사

그 동안 국내 방송사들은 월드컵과 같은 '국가주의 이벤트'를 중계함에 있어 저널리즘의 원칙보다는 노골적 '상업주의'를 우선시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위장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집단주의'가 필요했다. 그런데 SBS의 단독 중계는 바로 이 '집단주의'의 해체를 촉발시켰다.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강제적'이나마, 채널 선택권이 보장되면서 월드컵 집단주의에 상대적 누수가 일어났다. 월드컵에 대한 사회적 집중도는 눈에 띄게 떨어지면서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했지만 광고가 예상보다 부진한 결과가 벌어졌고, 과거 같았으면 '카르텔'에 의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들이 부각됐다.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진 장사', SBS의 월드컵 단독 중계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지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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