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그야말로 전쟁이 따로 없는 살벌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요즘의 가요계입니다. 이젠 활동하고 있는 그룹의 수를 세기조차 어려운 아이돌의 시대인 지금, 별을 향해 연습실을 달구던 아이돌 예비생들은 매일, 매시마다 새로운 신인 솔로와 그룹들로 옷을 갈아입고 찍어 나온 듯한 신곡들을 들고 나옵니다. 기존의 그룹들 역시도 별다른 공백기가 필요 없다는 것처럼 빠르게 복귀와 휴식을 반복하며 신곡들을 쏟아내고 있죠. 그 와중에 관록의 솔로들이 비집고 나와 이들 새파란 후배들과 노래 홍보를 위한 대결을 벌입니다. 전쟁. 신곡 홍보를 위한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이 따로 없어요.

이렇게 치열한 다툼을 벌이다보니 이젠 자신의 노래를 한번이라도 더 틀기 위해선 장소를 가리지도 않고 방법도 가지각색입니다. 무대 뒤 매니저들의 사투야 예전에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라디오 전파 한번을 더 타기 위해 방송국을 누비느냐 가뜩이나 적은 수면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가수들 역시 예능이건 지방행사건 한 마디, 한 소절이라도 자신들의 노래와 스스로의 이름을 전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음반시장의 몰락으로 가요계 전체의 시장은 작아졌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음원 시장과 행사 네트워크의 승자로 남기 위해 음반 홍보란 이젠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절대 절명의 과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격렬한 아우성의 한 구석에서 아주 특이한, 매우 기발한 틈새시장을 공략해 성공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터져 나온 가요계의 새로운 기린아, UV의 멤버이자 개그맨, 유세윤이 바로 그 주인공이죠. 어느 정도 의도하기도 했고 그 이상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과 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 덕분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예측불허의 퍼포먼스와 발상은 단연 사상 최고의 음반 홍보 전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뮤지션 뮤지와 의기투합으로 만든 그룹이기는 했지만 UV는 그 스스로 말했다시피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미니 홈피에서 장난삼아 올리던 노래가 방문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쿨하지 못해 미안해’의 뮤직비디오 제작과 싱글 발매로까지 이어지고 이것이 입소문을 타고 대박을 터트리면서 힘을 받기 시작했죠. 결국 정규 앨범, 천상유애를 제작 발표한 이들의 힘은 또 한 번 인터넷을 뒤흔든 사건, 정규앨범 홍보를 위한 쇼핑스타 K에 출연으로 기분 좋은 뒤통수를 날렸습니다.

고작 7분여의, 그것도 주말 새벽 시간대의 짧은 방송이었지만 진짜 홈쇼핑 스테이지에서 보여주는 진지한 뮤지션 컨셉의 유세윤의 모습과 우정출연해준 두 명의 절친, 말없이 CD를 들고 찐한 눈물연기를 보여주는 유상무와 전화 상담원의 장동민이 만들어낸 이 짧은 소동극은 본방 이후 지속적으로 지난 주말을 뒤흔들면서 자신들의 음악을 홍보하는 최적의 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를 짬뽕한 것 같은 기분 좋은 구식의 노래가 이런 즐거움을 더욱 배가시켰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들의 홍보 전략은 그 어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도,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분투와 안간힘보다도 효율적이고, 무엇보다도 깔끔했어요.

그것은 비슷한 유형의, 음악의 열정은 가지고 있었지만 개그맨이라는 출신 성분 때문에 고심하던 선배들인 박명수나 이수근이 그들의 출연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들의 음악을 홍보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보기에도 듣기에도 부담스럽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기분 좋은 홍보였습니다. 스스로 개그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위트와 기발함을 보여 주면서도 그 음악 자체의 즐거움에도 충분히 주목할 수 있게 해주는 유세윤의 재기발랄함은 홍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막대한 자본과 인맥을 동원한 대대적인 언론 장악이나 무지막지한 TV 출연의 반복이 아니라 뛰어난 아이디어와 적합한 방식의 발견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왜 뼈 속까지 개그맨인지를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노래는 노래 그 자체의 힘으로 승부하는 것이 좋다는 다소 고루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런 식의 멋들어진 홍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들의 홈쇼핑 동영상과 뮤비를 보면서 저는 근래 들어 가장 크게, 제일 기분 좋게 웃어본 것 같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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