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미디어'와의 전쟁은 세계 1,2차대전 저리 가라 할 통과의례의 진통이다. 70년대의 엄마들은 돈만 생기면 만화방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고, 8,90년대의 엄마들은 TV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아이들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으며, 2000년대 이후엔 외출한 엄마의 가방 속에 마우스며 심지어 컴퓨터 자판이 들어있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더랬는데, 요즘 엄마들에겐 그 대상이 스마트폰이 되었단다. 5월 6일 방영된 <SBS 스페셜> ‘스마트폰 전쟁- 내 아이를 위한 스마트폰 사용설명서’는 바로 그 요즘 엄마들의 고민거리인 ‘스마트폰 전쟁’을 다뤘다.

친절한 베이비시터 스마트폰

이젠 식당에 가면 익숙한 풍경이 있다.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는 식당에서 아이가 '부잡스럽게' 하지 않도록 익숙하게 스마트폰을 꺼낸다. 아이 앞에 켜진 스마트폰의 동영상, 그리고 그 속으로 빨려들듯 집중하는 아이들. 덕분에 부모들은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는 것도 편하고, 부부는 물론 함께 온 일행과의 식사 자리도 원활해진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놀이방에서 데리고 온 아이는 또 놀아 달라 보채지만, 할 일이 태산 같은 엄마는 그 '칭얼거림'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의 도움을 얻는다. 오랫동안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이보다 더 좋은 도우미가 없다. 이렇게 요즘 아이를 키우는 부부들에게 스마트폰은 어느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베이비시터'가 되었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스마트폰

SBS 스페셜 ‘스마트폰 전쟁 - 내 아이를 위한 스마트폰 사용설명서’ 편

그런데, 그 '편하기만 한' 도우미가 어느새 내 아이의 영혼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절대 스마트폰 따위에 의지하지 않겠단 각오가 무색하게 '일과 육아'에 치인 엄마의 편의적 수단으로 야금야금 자리를 차지하던 스마트폰이었는데, 이제 아이는 엄마와 눈을 맞추는 대신 스마트폰만을 하겠다고 떼를 쓴다.

스마트폰 사용이 시작된 지 10년, IT강국답게 초등학생 스마트폰 사용 비율 역시 세계 1위다. 서울 지역 초등학생 가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72%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현대 해상). 그리고 이런 일상화된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이제 갖가지 문제점으로 우리의 가정을 위협하고 있는 중이다.

현대 해상에 따르면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비율은 41%로, 이는 작년과 비교하여 15%나 증가한 수치다. 당연히 그로 인한 각종 사고가 발생하며, 그중 대부분은 자동차와의 충돌인 경우이다. 하지만 다큐에도 등장하듯 아빠의 잔소리나 엄마와의 약속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집에서나 외출 시 그 어느 곳에서도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면 거기에 정신이 빼앗긴다. 거실 벽을 가득 채운 책이 무색하게 집에 들어온 아이는 늦은 시간까지 스마트폰과 시간을 보낸다. 학교 선생님은 쉬는 시간 불조차 켜지 않은 교실에서 모든 학생들이 말 한 마디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광경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고 토로한다.

물론 뒤늦게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준 걸 후회하는 부모들은 달래도 보고 윽박질러도 보고, 갖은 수단을 다 써보지만 여의치 않다. 이건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즐겨보는 각종 사이트에서 횡행하는 '급식체'를 쓰며,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조롱하는 아이들과의 대화는 벽에 부딪치기가 십상이다.

SBS 스페셜 ‘스마트폰 전쟁 - 내 아이를 위한 스마트폰 사용설명서’ 편

겨우 두세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자유자재로 스마트폰의 각종 기능을 섭렵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이트를 찾아 들어갈 때만해도 '스마트 영재'가 아닌가 반색하던 부모들은, 이제 스마트폰에 영혼마저 빼앗긴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당연하다. 전문가는 말한다. 이유식을 시작할 때 거의 간이 되지 않는 음식부터 시작하듯, '자극'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책이라든가, 장난감을 통한 자극에 길들여지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쥔 아이들은 '아주 간이 센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에 길들여져 버리는 것과도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극은 뇌의 일정 부분만 발달시키기에 아동 발달에 있어 적정한 단계를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다큐는 그 예로 이른바 '마시멜로 실험'이라 알려진 실험을 스마트폰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아이의 눈앞에 맛있는 초코 과자를 두고, 만약 선생님이 다시 올 때가지 기다리면 이 과자 두 개를 다 먹을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건다. 물론 기다릴 수 없다면 언제라도 벨을 울릴 수 있고, 그때는 과자를 두 개가 아니라 한 개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아이들에게서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발달 단계에 따라 미래의 대가를 예측하고 기대하며 인내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이 실험에서 '스마트폰 자극'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의 경우 또래 아이들보다 낮은 인내의 결과를 낳았다. 기다리는 대신, 벨을 눌러 당장의 과자를 취득하고자 한 것이다.

적정한 발달과 함께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성'과 관련된 무방비한 자극이다. 스마트폰의 활용에 능숙한 아이들은 인터넷 세상에 지뢰처럼 숨겨진 각종 음란 동영상을 능숙하게 찾아낸다. 심지어 선생님 앞에서 자랑스레 부모님이 걸어놓은 '잠금장치'를 풀었다며 말할 정도로. 이렇게 위험부담조차 없는 음란물에 대한 용이한 접근은 아이들의 성 의식에 심각한 왜곡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은 어른들의 문제, 쉽지 않은 해법

SBS 스페셜 ‘스마트폰 전쟁 - 내 아이를 위한 스마트폰 사용설명서’ 편

그렇다면 어른들보다 이미 훨씬 능숙하며 심각한 중독 상태를 보이고 있는 어린 스마트폰 유저들에 대한 해법은 없는 것일까? 프랑스에는 올 가을부터 모든 초중등 교육기관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한다는 법을 시행한다고 하는 걸 보면 '어린 유저'들에 대한 고민은 전 세계적인 고민거리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뜻있는 엄마들을 중심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이들의 스마트폰 구입 및 사용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헌법에서 인권이 우선되는 한에서 인권의 제한이 될 수 있는 법안의 발의는 쉽지 않다고 이 법의 발의에 앞선 국회의원은 토로한다.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해법이 마땅치 않은 이 '중독'에 대해 다큐는 보여준다. 스마트폰이 중독인 가정. 하지만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많이 써서 하소연하는 부모들 역시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할애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엄마랑 실랑이를 벌인 아이, 모처럼 쉬는 날 엄마는 '**팡'을 하면서 좀 쉬게 놔두라며 아이를 밀쳐낸다고 한다.

왜 스마트폰을 하냐는 질문에 아이는 외로워서라고 답한다.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그 헛헛함을 달래 동영상, 다큐는 말한다. 엄마보다 좋은 스마트폰은 없다고. 하지만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 그곳에 없었던 엄마를 '친절한 베이비시터' 스마트폰이 대신 한 거라고. 긴 밤 홀로 남겨진 아이를 위로하는 게 스마트폰 밖에 없는 사회이다. 결국 아이들의 문제라 했지만, 다큐가 증명한 건 어른들, 어른들 세상의 문제다.

어린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지 않으면 되지만, 젊은 엄마들의 하소연처럼 우리네 젊은 부모들은 너무 바쁘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돈도 벌어야 하고, 해야 할 집안일도 많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해결의 끝은 쉬이 잡히지 않는다. 다큐는 아이의 주도적인 해결을 유도하라고 하지만, 이미 너무도 의존적인 스마트폰 유저들과의 '지각어린 타협'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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