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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스트럭’-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선택의 기적, 가정의 달엔 이 영화[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5.07 13:23

가끔 우스개처럼 전해지는 해프닝들이 있다. 공시 학원에 전화해서 우리 아이 학원 왔냐고 묻는 엄마라든가, 혹은 대학 수강신청에 나서는 모성이라든가. 이 웃기지도 않는, 다 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 대부분 실화라는 점에서 우리는 실소한다. 실제 대학 학부모 방담 자리에서 우리 아이가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하는 엄마를 목격하기도 했으니, 아마도 사실일 터이다.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엄마의 품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 그러니 초등생의 경우 오죽할까? 

부모의 지시에 따라 방과 후의 시간을 보내는 건 당연지사가 된 지 오래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도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이런 삶에 '이견'이 없다. 힘들고 지쳐도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더 '요즘 아이들'이 안타깝다. 그렇게 부모가 '스케줄 짜준'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이들과 가정의 달 5월에 <원더스트럭>을 보는 건 어떨까? 성장과 부모의 자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의 영화다. 

시궁창에서 별을 찾아 떠난 아이들

영화 <원더스트럭> 스틸 이미지

<원더스트럭>의 주인공은 소년 벤(오크스 페글리 분)과 소녀 로즈(밀리센트 시먼즈 분)이다. 그런데 이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다르다. 하지만 이들 소년과 소녀를 잇는 공통점이 있다. 소녀가 물가에 띄워 보낸 종이배에 그녀가 쓴 단어 'HELP'. 간절하게 도움이 필요했던 소년과 소녀, 하지만 그들은 그 도움을 찾아 스스로 길을 떠난다.  

미네소타 주 호숫가에 사는 소년 벤이 사는 시간은 1977년. 사서인 엄마 엘레인(미셸 윌리암스 분)와 단 둘이 사는 소년은 여전히 늑대에게 쫓기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벤을 불러 깨워주던 아빠의 목소리, 하지만 현실의 그를 깨워주는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중에'라며 미루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나중이라 말하다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며 투박하게 농담을 던지던 벤의 말은 교통사고로 진실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그리워 엄마의 방에서 옛날을 추억하던 벤은 <호기심의 방 원더스트럭> 속 아빠가 보낸 카드에서 찾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다 그만 벼락을 맞아 청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청력을 잃어버린 벤은 소녀 로즈와 또 하나의 공통점이 생긴다. 1927년 무성영화와 같은 흑백의 공간 속 소녀 로즈, 그녀는 듣지 못한다. 그리고 듣지 못하는 그녀와 눈조차 마주치기 싫어하는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세상과도 분리시키려 한다. 그런 '답답한 삶'을 견디지 못한 소녀 로즈는 가정교사의 가르침 대신, 긴 머리를 끊어내며 아버지가 만들어준 새장과도 같은 삶을 뛰쳐나온다. 소녀가 본 영화 속 무성영화의 시대가 끝나듯, 무성영화의 세상 속에서 살 수 없는 소녀는 무성영화처럼 자신을 가두려는 '아버지'의 세상을 스스로 떨쳐 나온다. 

그렇게 1977년과 1927년 흑백과 총천연색으로 색채마저 달리하는 50년의 시공간을 넘어, 도움이 필요했던 소년과 소녀는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 길을 떠난다. 어머니가 남긴 책 <호기심의 방 원더스트럭> 속 켄케이드 서점을 찾아 '아버지'의 향방을 찾으려는 소년과, 이제는 자리를 잃은 무성영화 속 주인공인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가 연극배우로 공연하는 극장을 찾아 온 소녀는 '뉴욕'이라는 공통적 공간으로 향한다. 

순간의 선택이 만들어 낸 기적

영화 <원더스트럭> 스틸 이미지

길을 떠난 소년과 소녀의 여정은 당연히 순탄하지 않다. 1927년이든 1977년이든 그 시대의 번화가였던 뉴욕, 하지만 여전히 '묵음'의 세계 속에 갇힌 소년과 소녀는 그 소음의 세계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달려오는 마차의 소리는 위기가 되고, 친절한 소년의 한마디는 무용지물이다. 

무성영화 속 흠모했던 주인공인 줄 알았던 여배우는 알고 보니 소녀의 어머니 릴리안(줄리안 무어 분)이었다. 하지만 힘들게 자신을 찾아온 딸에 대한 반응은 떠나온 집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혼자서 위험하게 돌아 다니냐며 펄쩍 뛰기만 하는 어머니를 두고, 다시 자연사 박물관으로 '모험(?)'을 떠나는 소녀.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았던 뉴욕에서 친절하게 자신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던 소년을 따라 역시 무작정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한 소년, 그렇게 두 사람의 여정은 시간을 두고 다시 겹친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두 사람의 여정은 쉽지 않다. 수상스런 그녀를 의심하는 박물관 경비원들의 추격,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친절했던 소년과의 숨바꼭질.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방을 박물관처럼 꾸몄던 벤과, 역시나 자신의 방을 '디오라마(작은 공간 안에 어떤 대상을 설치해놓고 틈을 통해 볼 수 있게 한 입체전시)'처럼 꾸몄던 로즈는 시대를 달리한 자연사 박물관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안식을 느낀다. 박물관 중앙에 전시된 운석에서 시대를 달리하며 조우하는(?) 두 사람. 하지만 영화는 판타지 같은 기적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선택의 기적을 선물한다. 

영화 <원더스트럭> 스틸 이미지

1927년에 스스로 부모가 만들어 놓은 새장 같은 세상에서 한걸음을 내딛은 소녀는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오빠를 만나 자신이 살아갈 새로운 세상을 연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맞는 공부와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들까지 얻으며 행복하게 살던 소녀는 이제 50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오빠와 함께하는 서점에서 아빠를 찾아 그곳으로 온 손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1927년의 로즈와 1977년의 벤은 그렇게 시간을 뛰어넘은 인연으로 만나게 된다. 또한 벼락으로 청력을 잃은 상실감에 시달리던 벤은 그 상실감에 공감해줄 동변상련의 동지를 만나게 된다. 스스로 세상 속으로 한 발을 내딛은 소년과 소녀의 용기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연'의 기적을 만든 것이다. 

1927년의 무성영화와도 같은 뉴욕, 그리고 1977년 데이빗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와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OST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컬러의 현란함으로 표현된 뉴욕. 동일한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대가 가지는 문화적 느낌을 색채감으로 표현해낸 영화는 그 분리된 공간 속에 스스로 한 발을 내딛은 소년과 소녀의 인연을 1977년 실제 벌어진 뉴욕 정전 사태를 배경으로 별빛 속의 조우로 기적처럼 그려낸다. 

결국 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선택, 그 선택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영화는 스스로 빛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매우 '영화적인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러기에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이 시대의 부모, 부모가 정해준 울타리에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는 이 시대의 가족에게 한번쯤 봐야 할 필독서 같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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