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13년 동안 조선일보 하청업체에서 근무한 조판팀 직원이 사실상 해고 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은 노보에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취재해 담았다. 조선일보 노조는 이번 해고 사태의 원인이 최저임금 문제에 있으며, 해고에 조선일보 본사 간부의 영향력 행사가 있었던 만큼 '위장도급'에 해당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2일 조선일보 노조가 발행한 조선노보에는 <하루아침에 잘린 동료의 눈물>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조선노보에 따르면 신문 지면을 컴퓨터로 제작하는 조판팀원을 조선일보 사측이 '잘랐다'고 한다. 조선노보는 이 직원이 조판팀원 중에서도 손이 빠르고 집중력이 뛰어났으며, 지면계획을 읽고 맥락을 파악해 편집자와 빠르게 소통하는 유능한 직원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직원의 고용주인 인력 파견업체 인터비즈 관리자는 "조선일보 본사 편집 담당 간부가 요구한다"는 이유로, 퇴사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퇴사를 거부할 경우엔 대기 발령을 받아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버티든지, 3개월분 급여를 받고 권고사직 형식으로 퇴사하든지 택하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조선노보는 이 직원이 해고된 이유를 "얼마 전 조판팀원들의 업무량을 늘리고 근무기강을 잡겠다며 본사 편집 담당 간부들이 소집한 회의에서 반론을 제기해 소위 찍혔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조선노보에 따르면 이 회의에서는 '쉬는 날을 줄이라'는 요구와 '곤란하다'는 입장이 부딪혔는데, 본사 간부들은 조판팀이 야근 뒤 다음날 쉬는 인원이 많고 휴일 대체휴무가 많다고 문제를 삼았다고 한다. 야근을 1~2시간 줄이고 다음날 쉬지 말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노보는 이 같은 조선일보 본사의 요구에 대해 "정규직 기자들의 '야근 뒤 휴무'를 대부분 없애 '매일 야근'이라는 비인간적인 근무 체제로 만들 대 썼던 방식"이라면서 "올해 들어 정규직 기자들의 인원을 줄이고 노동 강도를 더욱 더 높이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조판팀의 근무가 느슨해 보였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규직과 급여가 두배 이상 차이 나고 휴일수당이나 야근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우에 대해선 나몰라라 했다"고 지적했다.

조선노보에 따르면 근무 인원을 늘리면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가고 근무표를 짤 수 없다고 반론을 펴던 조판팀의 팀장들이 버티지 못하고 직위에서 물러났다. 본사 간부들은 "팀장을 포함해 5명을 자르겠다"고 밀어붙이다가 파견업체 관리자의 만류로 결국 2명을 해고하는 것으로 매듭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노조에 따르면 조선일보 편집 담당 간부들은 노조에 "권고사직을 시킬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다"며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노조는 이번 해고사태의 이면에 '최저임금 문제'가 있다고 봤다. 조선노보는 사내에 자회사, 파견업체 소속, 임시직 등 몇가지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으며, 그 중 상당수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고 전했다. 올해 들어 최저임금이 월 20만 원 가량 올랐지만. 사측이 임금으로 나가는 비용의 증액을 막았다는 것이다.

조선노보는 "중소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지만 그 뒤에는 본사의 경우처럼 원청기업이 있다"면서 "원가가 오르면 원청기업에서 용역비를 올려주는 게 순리다. 그것을 피하려는 원청기업은 압력을 넣어 하청기업의 임금 인상을 편법으로 억제하거나 인원을 줄이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노조는 이번 해고 사태에서 본사 간부가 해고를 압박한 것에 대해 "위장도급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선노보는 "IMF 이전에는 조판팀원들도 한 회사의 동료들이었다"면서 "노동유연화라는 명분으로 비정규직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인터비즈라는 파견 전문업체 소속으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그들의 처우는 급전직하 했다"고 전했다.

조선노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처지가 달라지니 동료들 사이도 점차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면서 "본사 간부들은 예전과 달리 근무의욕과 소속감이 떨어진 조판팀원들을 압박했고 조판팀원들은 처우 개선에 무관심한 간부들에 야속해했다. 여성이 대부분인 조판팀원들은 심지어 본사 편집 담당 간부가 주최한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사유를 내도록 추궁당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조선노보는 "형식적으로는 사내하청 도급관계였다"면서 "하청업체가 인사노무관리의 독립성이나 경영상의 독립성이 없어 원청업체와 노동자간에 실질 근로관계에 있다면 도급으로 위장한 불법 파견으로 판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파견 노동자는 2년 이상 근무하면 직접 고용해야 한다"면서 "조판팀은 도급 관계로 포장했기 때문에 장기간 근속하면서도 직접 고용이 안됐다"고 전했다.

조선노보는 "따라서 본사 간부들이 휴게시간과 휴일 축소 명령 등 업무나 인사에 대해 지휘 감독한 것은 불법 위장도급의 근거가 된다"면서 "하물며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해고를 본사 간부들이 압박했다는 것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갑질로 언론에 고발할 만한 사안이다. 노동자에게 부당해고는 물벼락 맞는 것 만큼의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조선노보는 "권고사직 형식이었더라도 사직 의사가 없는 근로자가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냈음이 인정되면 근로기준법상 '해고'가 된다"면서 "해고의 부당함은 둘째 치고 본사 간부들이 주도한 점은 하도급업체 직원들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행위였다. 게다가 작년 연말 또 다른 사내하청 업체에서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부당 해고해 문제가 불거진 지 몇 개월 만에 빚어진 일이기 때문에 우발적인 일로 보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노조는 "대기업 노조를 비판하려면 우리부터 약자와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노보는 "지난주 대기업 노조를 관찰하고 연구한 송호근 교수 인터뷰가 조선일보에 실렸다"며 "노조의 정당성은 약한 쪽을 돕는 계급연대에서 나온다. 노조는 국가와 산업 전체를 고려한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송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대기업 노조에 대해 진정성 있게 비판하려면 스스로도 약자와 연대해야 한다. 따라서 조선일보 노조는 본사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노동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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