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미네소타주 건플린트 호수에 사는 벤(오크스 페글리 분)은 매일 늑대가 나오는 악몽을 꾼다. 얼마 전 벤은 불의의 사고로 엄마 일레인(미셸 윌리암스 분)을 잃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빠에 대한 단서를 찾던 중 사고를 당해 청력을 잃게 된 벤은 귀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빠를 찾겠다는 일념 하에 무작정 뉴욕으로 떠난다.

1927년, 역시 미네소타주 건플린트 호수 근처에서 살던 로즈(밀리센트 시몬스 분)는 아버지의 엄격한 통제를 견디지 못하고 무작정 뛰쳐나와 엄마가 있는 뉴욕으로 향한다. 로즈의 엄마 릴리언 메이휴(줄리안 무어 분)은 무성영화 스타였고, 로즈는 유명한 배우인 엄마를 동경했다. 하지만 그토록 그리워하고 선망하던 어머니 또한 아버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어른이라는 사실에 실망한 로즈는 홀로 뉴욕을 배회한다.

동성 연인의 운명 같은 사랑을 그린 <캐롤>(2015)로 수많은 영화팬들을 열광시킨 토드 헤인즈의 신작 <원더스트럭>(2017)은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1977년 벤과 1927년 로즈에 얽힌 비밀을 찾아 나서는 일종의 어드벤처 드라마 영화다. 다른 시대이지만, 미네소타 주 건플린트 호수 근처에 살았던 로즈와 벤은 부모를 찾아 무작정 뉴욕으로 떠나고, 이들은 모두 귀가 들리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 <원더스트럭> 스틸 이미지

주인공들을 청각 장애인으로 설정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27년의 소녀와 1977년의 소년을 통해 각기 다른 뉴욕의 풍경을 보여주는 <원더스트럭>은 무성영화, 유성영화로 나눠지는 영화 매체의 속성을 다루고자 한다. 1920년대는 흑백 화면에 대사가 없이 배경 음악과 효과음만 나오는 무성 영화가 절정을 이뤘고, 1970년대는 화려한 색채의 유성 영화가 전성기를 맞았다. 무성 영화 시대에 살던 로즈의 이야기는 그 시절 영화처럼 흑백 화면에 대사 없이 펼쳐지고, 벤이 등장할 때는 1970년대 할리우드 영화처럼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화면에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년을 둘러싼 세상의 소리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부모를 찾다가 뉴욕 거리를 배회하게 된 로즈와 벤은 모두 미국 자연사박물관 안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경이롭고 환상적인 물건이 가득한 ‘호기심의 방’을 만난다. 영화 제목인 ‘원더스트럭(Wonderstruck)’은 벤이 아버지를 찾게 하는 중요한 단서인 책 제목인데, 원더스트럭이라는 단어는 ‘아연실색한, 깜짝 놀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호기심의 방은 애초 17세기 유럽의 귀족들이 진기한 것들을 수집해 진열했던 구조물들을 모티브로 하는데, 현재 박물관의 기원이기도 하다.

영화 <원더스트럭> 스틸 이미지

하지만 <원더스트럭>의 주인공들은 자연사박물관과 호기심의 방에서만 깜짝 놀랄 무언가를 발견하지 않는다. 미네소타 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홀로 뉴욕으로 당도한 어린 소녀, 소년에게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 자체가 놀라운 세계다. 귀가 들리지 않는 로즈와 벤은 자신들이 가진 눈으로만 뉴욕의 풍경을 바라보고 마주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경적을 울리며 소음을 유발하는 자동차,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안겨주는 높은 빌딩들로 가득한 뉴욕은 그 자체로 거대한 박물관이자 호기심을 유발하는 존재다.

호기심의 방은 쉽게 말해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그곳은 더러운 쓰레기 더미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그들 자신과 관련된 추억이나 과거를 더듬어가는 장소다. 아빠의 흔적이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킨케이드 서점을 찾다가 우연히 또래 소년인 제이미(제이든 마이클 분)를 따라 자연사박물관에 들어간 벤은 그곳에서 매일 밤 꿈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두려운 존재들과 마주한다. 알고 보니 꿈에 등장했던 늑대들은 벤의 아버지와 관련된 상징적인 존재였고, 그곳에서 벤은 매일 자연사박물관에 들러 미네소타 주 건플린트 호수의 박제된 늑대들을 보러오는 수상한 할머니(줄리안 무어 분)를 본다.

영화 <원더스트럭> 스틸 이미지

영화 시작부터 수많은 암시와 복선으로 가득한 <원더스트럭>의 결말은 의외로 평범하다. 하지만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약을 꿈꿨던 소녀와 소년의 모험이 없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놀라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즈와 벤은 수많은 사람들과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뉴욕의 거리와 진귀한 것이 가득한 자연사 박물관과 호기심의 방에 놀라움을 표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누군가는 별을 본다. 영화는 잡동사니와 같은 존재들을 한데에 모아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잠시나마 다른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게 하는 흥미로운 매체다. 어쩌면 영화야말로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별을 보게 하는 놀라운 존재 아닐까. <원더스트럭>은 세상 모든 진귀한 것으로 가득한 뉴욕의 역사에 대한 예찬가이자 영화에 대한 영화다. 5월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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