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를 포함한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임명한 것을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 갬프’의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이 이경숙 인수위원장 내정이 확실시되던 지난 24일 오후 삼청동 안가로 이 당선자를 찾아가 두 시간 동안 논쟁을 벌였고, 이 당선자의 일부 측근들이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과 민정당 전국구 의원 경력을 문제삼았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 2007년 12월 26일자 3면 보도)

국보위 입법위원 경력 문제 삼은 이재오가 당을 떠나라

▲ 한겨레 12월26일자 3면.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재오 의원의 심리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차라리 한나라당을 떠나는 것이 옳다.

이 총장의 인수위원장 임명에 대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비판의 근거가 빈약해 보이거나 구차해(?) 보인다. 기자가 보기에는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보인다.

국민의 직선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대통령중심제에서는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The winner takes all.)"이 용인될 뿐만 아니라 관행이기도 하다. 조중동 등 족벌신문들이 그렇게 비판해대던 이른바 ‘코드인사’가 대통령중심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당선자가 이 총장을 인수위원장에 임명한 것에 대해, 마치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후보의 당선으로 유행을 타고 있는 ‘실용주의’ 관점에서 이 위원장의 화려한 경력을 기초로 분석하면, ‘더 이상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인사’로 보인다.

국보위 입법의원, 국가 비상시에 상정안건 215건 처리에 기여

첫째, 이 당선자 스스로 올해 선거 운동 과정에서 1980년 광주민중항쟁(정부가 공식 발표한 이름은 광주민주화운동)과 17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종말의 도화선이 된 1979년 부마(釜馬)항쟁을 각각 ‘광주사태’와 ‘부마사태’로 부른 적이 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이 당선자의 말대로 광주사태를 진압한 뒤, 때로는 비실용적이고 비효율적이기까지 한, 그래서 이미 해산한 국회의 대체기관으로 설치한 국가보위입법회의(1980년 10월 27일- 1981년 4월 10일) 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215건의 안건을 접수해 모두 가결하는 데 참여함으로써 ‘거수기’ 노릇을 한 것도, 이 위원장이 지난 2006년 4월 월간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밝힌대로, ‘그 때는 국가비상 시기’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국가비상 시기에 국가를 위해 ‘실용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높이)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정당 국회의원, 한나라당의 전신은 신한국당 민자당 그리고 민정당

둘째, 이 위원장이 광주민중항쟁을 총칼로 진압하고 등장한 전두환 군부정권의 국가보위입법의원을 지낸 뒤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낸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당선자의 생각과 철학에 부합하는 경력이었으면 경력이었지, 결점이나 하자(瑕疵)가 아니다.

▲ 조선일보 12월26일자 1면.
더구나 지금 한나라당의 전신은 육사출신과 서울법대 출신들이 좌지우지해 ‘육법당’이라 불리던 민정당이다. 민정당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의 합당, 즉 3당 합당을 통해 민자당(일본 자민당을 본 뜬 민주자유당의 약칭)이 됐고, 다시 김영삼 대통령 때 신한국당, 그리고 지금의 한나라당이 된 것 아닌가!

삼성 사외이사, 회사 운영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셋째, 이 위원장이 1984년 삼성의 사외이사를 지낸 것도 실용주의 입장에서 플러스가 되는 경력이지 흠이 될 수 없다. 이 위원장이 임명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힌대로, “삼성 사외이사는 회사 운영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고 “외국은 (대학)총장이 사외이사를 안 해본 것이 이상할 정도”이니 말이다.

더욱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에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 불리는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구 구조조정본부, 현 전략기획실 실장)의 후계자로 점찍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던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이명박 대선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고대 출신 이 당선자와 동아일보 관계 비추어 실용적

넷째, 이 위원장은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을 지냈다. 이런 경력 또한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이 당선자가 졸업한 고려대와 동아일보의 전반적인 관계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동아일보의 보도 행태 등을 종합해 볼 때, 역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때 프로젝트 등 참여, 당선자의 철학 일찍부터 알 기회

다섯째, 이 위원장은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에 재직할 때 서울시내 대학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연구 프로젝트 등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고, 서울시교향악단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고 지금은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따라서 이 총장이 인수위원장에 임명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태도가 그동안 제가 생각해 온 리더십과 맞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국정운영 방향이나 철학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은 전혀 의례적인 표현이 아닐 것이다.

CEO형 대통령에 CEO형 대학총장, 완벽한 일치

여섯째, 사실상 ‘CEO형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는 이 당선자에게 ‘CEO형 대학총장’ 역시 ‘완벽하게’ 일치하는 조합이다.

숙명여대 수석입학 수석졸업, 이 당선자의 교육철학에도 부합할 듯

일곱째, 더군다나 이 위원장은 열심히 공부하여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경기여고에 입학한 뒤 61년 숙명여대에 수석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 한 바 있다.

이어 미국에 유학, 정치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으므로, 경쟁을 통한 성공 유도라는 이 당선자의 교육철학에도 부합한 삶을 살았고, 이 또한 월급쟁이들의 성공신화를 이룬 이 당선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 중앙일보 12월26일자 3면.
최초 여성 인수위원장, 여성 역할 갈수록 커져 금상첨화 같은 조건

여덟째, 이 위원장은 여성이다. 이는 여성의 역할과 기능이 갈수록 확대되고 커져가는, 또 더 커져야 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금상첨화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인 한명숙 총리에 이어 이 총장이 최초의 여성 인수위원장이 됨으로써 이제 여성 대통령이 등장할 날도 멀지않은 것 같다. 남성의 입장에서도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 당선자와 소망교회 같이 다녀, 화룡점정(?)

아홉째, 이명박 당선자는 소망교회의 장로이고, 이 위원장은 소망교회 권사로 알려져 있다. 이 또한 생각하기 나름이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것 자체가 코드 일치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앞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조건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명박 캠프 입장에서 이 위원장의 경력 중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이 위원장이 방송위원과 김대중 정부에서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낸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또한 ‘이명박식 실용주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고 큰 장점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해 ‘빈둥 빈둥 놀던 사람’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민주화운동 세력을 자처하며 ‘빈둥 빈둥 놀던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일 것이다.

이 위원장이 김영삼 정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과 김대중 정부에서 방송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과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낸 것 또한 ‘이명박식 실용주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고, 또 큰 장점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경숙 위원장이 자신이 기자회견에서 밝힌대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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