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은 후 홍상수 감독과 관련된 보도는 '가십성'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그의 영화에 대해 별무관심이었던 매체들이 그의 스캔들에는 유독 열성이었고 성실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하여 감독은 말을 아꼈다. 여전히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극장에 걸었다. 그중 하나가 <클레어의 카메라>이다. 하지만 달라진 세간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모처럼 혼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만끽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가십'으로 자신을 재단했던 세상에 대해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입을 열었다. 그 '일'에 대해? 아니, 그 일을 다루는 세상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 대해. 물론 이번에도 영화의 중심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은 사랑인지 바람인지 모를 관계를 맺었고, 그 관계로 인해 주변 관계들조차 복잡해 졌다. 더구나, 한국도 아닌 영화를 홍보하러 간 '칸'에서.

솔직하지 못해서 해고된 전만희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 이미지

영화의 축제로 북적이는 칸.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서면 한적하다. 그곳 카페에 홀로 오도카니 앉아있는 전만희(김민희 분). 다가온 지인은 바쁜 영화제 기간 중에 영화사 직원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그녀를 의아해한다. 그런 지인에게 자신이 어제 그 자리에서 대표 남양혜(장미희 분)에게 해고되었다고 전하는 만희.

홀로 남은 그녀는 자신이 겪은 '해고'를 복기한다. 하루 전날 그 카페의 그 자리에 마주 앉은 남양혜와 전만희, 남양혜가 말을 꺼낸다. 자신이 만희를 고용한 이유에 대해, 솔직하고 진솔한 그녀의 면모가 고용 이유였다고 운을 띄운 남 대표. 하지만 언제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듯, 그녀를 고용했던 그 이유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만희를 해고하는 이유로 돌변한다. 알고 보니 솔직하지 않다는 밑도 끝도 없는 평가로 단칼에 만희를 해고하는 남 대표. 하지만 도무지,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솔직하지 않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만희는 그간 함께했던 정으로 사진까지 찍고 헤어졌지만, 해고는 고스란히 상처로 남는다.

만희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해고는 다음 장면, 남 대표와 소완수(정진영 분) 감독의 만남을 통해 짚어진다. 만희의 해고 사유에는 소완수 감독과의 '스캔들'이 있었던 것이다. 술에 취해서라고 변명을 하지만, 결국 남양혜와의 사업 이상의 밀월관계를 정리하려는 소완수의 태도로 보건데, 그와 만희와의 관계는 하룻밤 술로 인한 실수 이상인 듯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건, 그간 흔히 홍상수의 영화에 늘상 등장해왔던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 그 속내가 아니다. 물론 여전히 소완수라는 남자는 예의 홍상수 영화 속 캐릭터를 연기한다. 남양혜와 사업 이상의 관계를 지니면서, 그녀의 부하 직원인 젊은 만희와 스캔들을 벌인 '찌질한 남자'이다. 심지어 그의 옆자리에 앉은 이방인 클레어에게 한, 수작인지 관심인지 모를 소완수의 행동거지는 홍상수 영화 속 남자들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다.

언어의 폭력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늘상 그가 해왔던 그 이야기를 조금 비튼다. 홍상수 영화 속 남자와 여자의 대화들은 ‘사랑하고 싶다’, 아니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자고 싶다'의 장황하고도 구차스러운 은유의 난무였다. 그런데 <클레어의 카메라>에서 그 노골적인 추파는 생략되었다. 대신, 다른 장황한 은유들이 난무한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 이미지

그 첫 번째는 바로 전만희와 남양혜 사이의 대화이다. 결국 이후의 장면으로 보건대, 그간 소완수와 사업 이상의 파트너십을 가져왔던 남양혜는 소완수와 전만희의 해프닝을 눈치 채고 그걸로 전만희를 해고한다. 결국 사적인 스캔들로 전만희의 밥줄을 자르는 '갑질'의 횡포를 부린 것이다. 물론 소완수와 밀월관계를 가져온 남양혜 입장에서 전만희가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간 자신의 사업체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던 전만희를 하루아침에 해고하는 건 '폭거'다. 그리고 영화는 그 과정으로 가장 추상적인 '솔직하지 못하다'는 식의 남양혜의 '언어적 폭력'에 주목한다.

즉, 사적인 문제를 공적으로 처리하는 그 공정하지 못한 방식.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속보이는 이유를 포장하는 추상적이고도 도덕적인 평가의 언어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홍상수 감독의 사생활을 대하는 방식의 '치환'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남양혜는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하려는 소완수 감독에게 은근슬쩍 자신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갑'임을 흘린다. 사적인 관계를 정리해도 사업은 잘해보자는 감독의 말에, ‘글세’라며 여지를 흘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남양혜의 태도에, 소완수는 자신이 던졌던 '관계의 정리'를 이쁘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그런 소완수에게 남양혜는 자신을 예전처럼 이뻐해 달라며 여전한 밀월관계의 지속을 ‘요구'한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스틸 이미지

이렇게 <클레어의 카메라> 속 남녀 관계는 그간 '찌질한 속물 남자와 여자'라는 본능의 관계에서, 남녀의 외피를 쓰지만 '갑을'이라는 권력의 관계로 변화되어 나타난다. 그건, 이후 우연히 건물 옥상에서 만난 소완수와 만희의 관계에서도 연속적으로 드러난다. 영화 관련 모임이 열리는 건물 옥상. 아직 칸을 떠나지 못한 만희가 정장 느낌의 '직원룩'을 벗어난, 핫팬츠 차림의 자유분방한 옷차림으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영화 홍보를 하다 등장한 소완수, 그는 만희의 옷차림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펼쳐 보인다.

말이야 ‘왜 그렇게 자신을 헐하게 내던지려는가’라는 만희를 아끼는 듯한 어르신의 훈계지만, 결국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등장하는 '쉬운 여자론'의 연장일 뿐이다. 아직도 만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한 소완수의 찌질한 감정의 배설이지만, 그 배설이 '감독님'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만희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때 그건 언어의 외피를 지닌 '감정의 폭력'이다.

이렇게 <클레어의 카메라>는 여전한 남녀 관계를 가지고, 그 남녀 관계를 ‘소비’하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해석으로 전환된다. 남녀라는 본능적 관계조차도, 그게 영화사 대표와 직원, 영화사 대표와 감독, 나이든 감독과 젊은 홍보사 여직원이라는 사회적 관계로 맞물리게 되면, 그들 사이의 관계는 '위계'가 되고, 그들 사이의 언어는 본능의 포장을 넘어선 '권위'의 억압적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즉 이전의 홍상수 감독이 다루었던 언어가 개인적인 '파롤(parole)'에 치중되어 있었다면, <클레어의 카메라> 속 언어들은 사회적인 ‘랑그(langue)'에 집중한다. 클레어가 구사하는 이방의 언어에 소완수가 무조건적인 감탄과 찬사를 더하며 접근하는 그 방식도 예외는 아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포스터

이렇게 달라진 관계들 사이에서 그녀의 발걸음처럼 통통 튀며 이야기를 환기시키는 건 영화의 제목인 그녀, 이자벨 위페르가 분한 클레어이다. 그녀는 마치 카메라를 든 철학자처럼, 자신의 사진 한 장의 '마법'을 설파한다. '솔직하지 못했다'던 만희는 그녀의 카메라를 통해 '아름다운 여인'으로, 칸까지 초청받는 명감독이라던 소완수는 '알콜릭'이 의심되는 칠칠맞은 남자로, 도도한 남양혜는 '이상하고 우스운 여성'이라는 뜻밖의 진실을 드러내고야 만다. 그리고 그 '진실'은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누군가에겐 깨달음을 준다. 어쩌면 '현학적인 세상의 말'에 현혹되었던 관객에게도.

<클레어의 카메라>를 여전한 홍상수의 구구절절한 자기변명으로 볼지, 그게 아니면 세상에 던진 감독의 일갈로 볼지, 그도 아니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것인지, 그건 '클레어의 카메라' 속 스냅 사진 한 장의 의미와도 같다. 그건 홍상수 감독의 사적인 일을 어떻게 '소비'하는가에 대한, '소비'해왔는가에 대한 각자의 감회에도 잇닿아진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클레어의 카메라>는 홍상수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릴 만한 가치를 준 작품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세상을 맴돌며 하나의 화두에 천착하던 감독이 본의 아니게 세상 밖으로 한 발을 내딛은 작품처럼 여겨졌다. 과연 다음엔 그가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건넬지 궁금하다.

거기에 덧붙여 김민희만큼, 아니 김민희보다도, 이자벨 위페르보다도 아름다웠던 장미희라는 여배우를 다시 발견하게 해준 홍상수 감독의 다음 뮤즈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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