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이후 스페인 축구 하면 막강한 중원 자원들을 활용한 점유율 높은 축구, 그리고 빠른 템포를 주무기로 매우 이상적인 축구를 하는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호화 군단과 같은 대단한 선수 자원들, 그리고 '축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정확하고 정교하게 이어지는 패스플레이, 또 어떤 상황에서도 골을 뽑아낼 수 있는 완벽한 공격력 등이 스페인 축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그 덕에 '세계 정상 정복'을 선언한 스페인 축구는 유로2008 우승을 확정한데 이어 바르셀로나가 2008-09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하고, 이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결승 진출을 확정지으며 우승까지 노리게 됐습니다. 바야흐로 스페인 축구가 '세계 표준'이라는 시대에 접근한 거나 마찬가지인 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사실 스페인은 이번 월드컵에서 출발이 좋지 못해 또 우승에 실패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조별 예선 첫 경기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스위스대표팀 '명장' 오트마르 히츠펠트 감독의 전술에 완전히 휘말리면서 0-1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델 보스케 스페인팀 감독은 스페인의 강점을 살리는 대신 수비력을 보다 강화하는 전략으로 '화려한 축구'보다 '이기는 축구'에 보다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강력한 압박으로 상대 공격을 원천 차단하는데 중점을 두면서 미드필드진의 유기적인 플레이를 더욱 강화시켜 공-수 양면에 걸쳐 보다 짜임새 있는 경기를 펼치려 노력했습니다.

그 덕에 특유의 위력적인 패스플레이와 빠른 측면 공격을 통해 경기를 주도하면서 결정적인 한 방으로 승부를 가져오는 식으로 이끌어 나가며 승리를 이어갔습니다. 또 스위스전에 한골을 내준 수비는 이후 안정을 되찾으며, 토너먼트에서는 단 한 골도 내주지 않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비록 득점력이 다소 떨어져 유로2008 때보다 아름다운 축구의 진수를 그대로 맛보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면이 많았지만 기본적인 큰 틀을 유지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다시 안정된 전력을 갖추고 '아름다운 축구'의 면모를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이 첫 경기 패배 이후 연이어 승리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로 특유의 패싱플레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완벽에 가까운 조직력이 그대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사비, 이니에스타라는 걸출한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주도하는 볼 배분과 패싱 능력은 점유율을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어냈고, 페드로 로드리게스는 기동력과 빼어난 개인기를 바탕으로 공격에 활로를 열어주는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또 사비 알론소의 안정적인 공-수 조율은 중원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완성도를 더욱 높였고, 이는 스페인 팀 자체가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잡는 계기로도 이어졌습니다. 이들이 펼치는 환상에 가까운 짧은 터치패스, 그리고 깔끔하게 볼을 받아내는 키핑 능력은 마치 게임을 보는 듯 정교하게 이뤄졌고, 이 같은 플레이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욱 안정된 모습을 갖춰가면서 위협적인 팀다운 면모를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완벽하게 변신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던 독일 축구를 완전히 농락시키면서 사상 첫 월드컵 결승까지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스페인 선수들은 어떻게 하면 패스 게임을 통해서 경기를 지배하고, 또 승리를 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패스를 받으면 곧바로 동료에게 볼을 돌리고, 이는 2-3초도 아닌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원터치'로 짧게 이어졌습니다. 1-2명도 아닌 11명의 선수 모두가 탄탄하고 환상적인 개인 기량을 앞세워 원활한 패싱 게임을 선보였고, 짧고 낮고 굵게 이어지는 이 같은 플레이에 독일 선수들은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강한 조직력에 최고의 기술력이 더해진 스페인 축구가 2000년대 현대 축구에서 얼마나 위대한 팀인지를 제대로 증명해 보이면서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고지까지 일단 오르는데 성공했습니다.

스페인의 유일한 약점을 꼽는다면 바로 다비드 비야를 제외한 다른 공격수들이 부진의 늪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큰 경기 경험들을 갖고 있는데다 결정적일 때 언제든 한 방을 터트릴 수 있는 선수들이기에 델 보스케 감독이나 스페인 선수들은 이들의 결정력에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만약 페르난도 토레스 같은 공격수들까지 제 기량을 발휘해서 결승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스페인 축구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을 찍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환상적인 선수 구성과 이들이 보여주는 공-수 양면에 걸친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는 충분히 역대 최강 팀으로 꼽을 만도 합니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 이후 40년 만에 가장 '판타지한 팀'의 면모를 갖춘 팀으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되는 스페인이 정말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 이 아름다운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의 기대감은 한층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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