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거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올려 보수 세력이 비판하는 가운데 “평화협정에 체결된다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일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비핵화뿐 아니라 주한미군 주둔도 북한 선대의 유훈”이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문정인 특보를 해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청와대 안 사람도 아닌데 툭하면 해임하라고 한다"며 "그런 문제는 야당에 더 많았다"고 지적했다.

5월 2일자 조선일보 기사

앞서 문정인 특보는 <포린 어페이스>에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길-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의 진전과 약속’이란 제목의 영문 기고를 했다. 글 내용에는 “만약 평화협정이 조인된다면, 주한미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이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보수 야당은 주한미군의 감축·철수를 강하게 반대할 것이고, 이는 문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딜레마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고문의 말미에 나온 내용이며 비핵화를 둘러싼 한국의 내부 갈등을 묘사한 문단이다. 글의 주요 내용은 판문점 선언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주한 미군 철수’ 문장을 강조해 "문정인 '평화협정 땐 미군 주둔 어렵다'"는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조선일보 기사에 근거해 남북정상회담을 공격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판문점 선언에 명시한 '각기의 책임과 역할'은 결국 '주한미군 철수'와 '미국의 핵우산 제거'는 아닌지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정인 특보의 글을 근거로 판문점 선언이 주한 미군 철수의 포석이라는 말이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문정인 특보를 해임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장관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문정인 특보는 청와대 안에 근무하는 사람도 아니다”며 “사무실도 밖에 있고 진짜 자유로운 분인데 툭하면 해임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보라고 해서 가끔 정책 제안 정도 하는 것 같은데 일만 생기면 해임하라고 한다”며 “그런 식으로 하면 논란 일으킨 사람들이 야당에 많은데 거기도 해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문정인 특보에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의 철수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중요한 것은 북한의 입장인데 북한은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암시를 줬다”며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까지 하겠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정상회담을)했으면 처음부터 안 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주둔은 선대의 유훈이라는 주장도 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92년 1월 김일성 주석이 노동당 국제비서인 김용순을 미국에 보내 ‘북미 수교만 해 주면 앞으로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 통일된 뒤에도 미국은 남쪽에 또는 조선반도에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이 제안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되풀이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수교만 해 달라는 얘기를 했다”며 “그게 아버지(김정일) 때도 했던 얘기고 할아버지(김일성) 때도 했던 얘기”라고 설명했다.

정세현 전 장관(연합뉴스)

정세현 전 장관은 “독일이 통일된 뒤에도 나토의 모자를 쓴 미군은 남아 있다”며 “유럽의 군사 질서가 요동치는 걸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토의 모자를 쓴 미군이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 또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군사적인 긴장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미군이 나가면 통일된다, 미군은 평화협정이 됐으니까 나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고 비판했다. 북미정상회담 개최 장소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까지는 잘 안 가려고 할 것”이라며 “결국은 판문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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