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멀리도 돌아 돌아 왔지만 드디어 이 수목드라마는 제목에 걸맞은 빵 만드는 이야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뭐 여전히 그 안에는 통속적인 핏줄 집착이 넘실거리는 막장 코드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고, 심심할 만하면 간간히 김탁구를 중심으로 주먹이 정신없이 오가는 야인시대가 펼쳐지고 있기만 하지만 말이죠. 방송 전 배포되었던 스틸 사진 몇 컷으로 빵을 만드는 청춘 남녀들의 삶을 보여줄 또 다른 순수한 전문직 드라마를 기대하던 예상과는 이미 멀리 떨어져 버렸어요.

그래도 그 안에 품은 독성들이야 어떻든 간에 아역과 성인 연기자와의 전환점 때마다 발생하는 덜컹거림도 성공적으로 가라앉혔고, 빠르고 경쾌한 속도조절의 매력도 있는데다가 월드컵 특수를 이상하게 받아버린 덕에 수목극의 승자는 이번에도 KBS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번 올라가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관성의 법칙인 시청률의 상승을 타버렸으니, 이제 겨우 성인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김탁구는 이미 30%를 가볍게 넘어선 시청률만 본다면 성공한 드라마에요.

그리고 이런 성공에 가장 마음이 부풀어 오를, 너무나도 히트작에 목말라있던 배우가 드디어 자신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리며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제1세대 아이돌 출신 배우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소화하고, 제일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지만 여전히 대표적인 히트작이 떠오르지 않는, 이젠 가수보다 연기자로서의 삶이 더 긴 나름의 선배 배우이지만 여전히 출신 그룹의 꼬리표가 더욱 강렬하게 남아있는 여배우. SES의 유진이죠. 제빵왕 김탁구는 벌써부터 그녀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 거예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도 그럴 것이, 배우 유진은 매번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 혹은 비중 있는 역할로 캐스팅되었음에도 아직도 여전히 시청자들이나 영화 관객들에게 이렇다 할 인상적인 캐릭터로 기억된 적이 없습니다. 인기 없는 주말 드라마, 흥행에 참패한 영화들이 반복되고, 작품을 거치면서 배우로서의 능력은 점점 안정적으로 성장해가고, 매번 그 안에서 배우로서의 호소력을, 그녀만의 확고한 매력을 뽐냈던 배역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녀는 무척이나 작품과, 그리고 배역과의 연이 맞지를 않았던 운이 나쁜 배우였습니다.

겨우 만난 행운, 제빵왕 김탁구가 그녀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요. 이미 상승세를 한껏 타고 있는 드라마에 별다른 부담 없이 참여한 이 드라마에서 그녀는 기본만 한다 해도 자신의 프로필에 30% 시청률의 히트작을 추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 배역 역시도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전형적인 여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구요. 몇몇 반응들처럼 신인격인 상대 남자 배우들과의 나이차가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소소한 불만이야 시간과 함께 익숙해지면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이구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탁구가 중요한 것은 그동안 오랜 숙성을 거치며 단련해온 배우 유진이 드디어 자신의 연기를 많은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그것도 부담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에게 향했던 관심이나 부담감에서 벗어나 주인공의 언저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변방에서 속앓이를 하던 그녀에겐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에요. 드디어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 이것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는 결국 그동안 그녀가 쌓아온 내공으로 판가름 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배우 유진에겐 김탁구야말로 진정한 데뷔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부디 이번만큼은 그녀의 오랜 배우로서의 꿈이 만개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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