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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가공할 ‘나쁜 정의’ 앞에 선 무차별적 정의의 연대[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5.02 10:51

역대의 마블 영웅들이 한데 모여 절대 악 타노스에 대항한 전쟁을 벌인다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티니 워)>의 개봉 소식을 듣고 가장 관심이 갔던 건, 이 걸출한 영웅들의 집합체인 '어벤져스'를 소모하지 않고 제 몫을 다하여 전쟁을 수행할 것인가였다. 아이언맨에서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등 기존 어벤져스 팀은 물론, 새로이 합류한 닥터 스트레인지에 블랙 팬서, 스파이더맨, 심지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스타로드, 로켓, 그루트 등 이미 한 시리즈를 이끌었던 내로라하는 신진 영웅 그룹까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속담이 절로 생각나는 면면들이다. 

다들 얼굴 한 번씩만 비춰주고 나면 영화 반이 훌쩍 지나갈 것 같고, 그들이 제각기 활약을 한다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것만 같은 이 장황한 히어로들의 서사를 과연 <인피니티 워>는 제대로 꿰어낼 것인가. 아마도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때론 그들의 활약이 아쉬울망정, 적어도 구슬 서 말이 저마다 나동그라지지는 않았다는 소감이 들 것이다. 

나쁜 정의, 타노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포스터

그들을 '구슬 서 말의 보배'로 만든 중심에는 최강 빌런, 절대 악 '타노스(조쉬 브롤린 분)'가 자리한다. 2012년 <어벤져스>를 통해 그 존재를 알렸던 그는 소문답게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겨우 생존한 아스가르드의 우주선을 파괴하면서 '진정한 종말'의 서막을 연다.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의 황혼', 세계의 종말이 절묘한 우주로의 '항해'를 통해 새로운 희망이 되었는가 싶더니, 그것을 압도하는 '타노스의 심판'이 등장해 버린다. 

타노스, 그 이름에서는 죽음과 파괴의 본능 '타나토스'가 연상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출신 별 타이탄에서부터 자원의 고갈, 인구 과밀에 대한 해법으로 무차별적인 '인구 절반의 절멸'을 주장한 이래 행성 곳곳을 다니며 자신의 신념을 과감하고 과격하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의 행보는 이미 예고된 대로 '지구별'을 향하고 있었다. 

타노스의 이런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역사적, 철학적 근원을 갖는다. 이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한다'는 인구론을 주장한 바 있는 '멜서스'로부터 한정된 지구 자원을 압박하는 인구 증가에 대한 해결적 입장이 등장한 바 있다. 가난한 이들을 죽도록 내버려두어 인구 증가를 막아야 한다는 멜서스 이래, 나치의 합목적적 열등 인자의 제거를 핑계로 '인종 청소'를 거쳐, 20세기 미국의 강제적 피임 사례까지 역사는 '의도적이며 합목적적인 인구 조절'의 역사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런 '과밀한 인구의 청소'에 대한 과격한 사상은 <킹스맨1>과 소설과 영화 <인페리노>를 통해 실행된 바 있다. 바로 그 합목적적 의도를 가진 '인종 청소'의 정의를 타노스가 들고 나온다. 심지어 그저 '인피니티 스톤'을 향한 욕망으로만 여겨졌던 그의 행보가, 비록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그녀의 죽음에 악어의 눈물이 아닌 진심의 눈물을 흘리며 파괴의 폭군이 아닌, '나쁜 정의'의 수호자로 영화의 중심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그렇게 '사공이 많은 배'의 대항마로 확고한 철학과 세계관을 설정하며, 어김없이 '마블'은 히어로의 활약 이전의 '정립된 세계관'이라는 자신의 장기를 통해 다시 한번 마블 월드를 확장해 나간다. 

히어로들의 무차별적 연대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이런 자신만의 분명하고도 심지어 타당해 보이기까지 한 이유를 지닌 타노스의 광폭한 행보에 지구의 위기, 나아가 전 우주의 위기를 막기 위한 그 급박한 목적만으로, 그리고 멸망을 막아서려는 '순수한 마음'만으로 히어로들이 '어벤져스' 군단으로 거듭난다. 

타노스의 합리적, 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한 나쁜 정의와, 그에 대항한 '절멸을 막기 위한 열정'의 히어로 군단을 보면 문득 예전 미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 1977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아들과 딸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미드 <Eight Is Enough>는 제목처럼 8명의 아이들 둔 가정의 에피소드를 다룬다. 

그중 한 장면, 1977년이라지만 당시도 인구 증가가 심각하게 여겨지는 상황. 인구 증가에 우려를 나타내는 학자와 피치 못하게 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 아빠는 그곳에서 학자와 논쟁을 벌인다. 폭발 직전의 지구에서 몰상식하게 아이를 8명이나 낳았다는 학자의 비난에, 아버지는 '현답'으로 그 자리를 모면한다. 아버지의 '현답'이란 다름 아닌, 생명의 강제적 단종 대신, 혹시나 미래 자신들의 아이 중 하나가 그 인구 폭발에 대한 해법을 가진 '희망'일 수도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긍정이었다. 도대체 합리적 이유나 타당한 설명도 없이, 그저 막연한 긍정과 희망은 꽤나 설득적이었다. 

이런 '8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의 긍정적 세계관'은 언제나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다수의 '히어로물'에서 관통한 세계관이기도 한다. 청소년의 영웅 심리도, 자기 가족에 대한 복수심도, 그리고 시대를 거스른 국가적 사명감도 혹은 반항심도, 그리고 신화에서 튀어나오거나 연구실에서 튀어나온 이종의 영웅도, 심지어 돈 앞에서 이합집산하던 떠돌이들마저도 자신들이 기반 한 존재의 위기 속에서는 언제나 힘을 합쳐 하나가 된다. 이는 서부 영화, 전쟁 영화에 관통되던 51개의 별이 모인 성조기로 상징되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위기 앞에서는 하나가 되자는 '아메리카니즘'이기도 하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그러기에 시간을 지배하는 영적인 닥터 스트레인지와 과학을 지배하는 아이언맨이, 아버지와 같은 아이언맨과 아들과 같은 스파이더맨이, 재벌인 아이언맨과 도적떼인 갤럭시 패거리가, 그리고 이전 시리즈에서 서로 배척했던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와 토르가 그 손을 맞잡아 타노스에 대적해 나가는 그 순간 관객의 '카타르시스'는 충족된다. 

외려, 그들이 마치 거인 골리앗에 대항하여 돌 하나를 든 채 나선 다윗처럼 그 '맹목적 열정'만으로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비록 이번 시리즈에서 그들이 성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8명의 아버지처럼 희망을 접지 않는다. 왜? 그들은 '정의'로우니까. 인간을 희생하지 않는, 지키려는 정의는 이길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는 긍정적 세계관의 확신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무엇보다 이들 히어로들의 장황한 연대와 연합에는 이미 관객들에게는 배경지식이 된 그들의 '전사'가 있다는 것을. 즉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압도적 흥행은 마치 영화 속 그들 히어로들의 연대처럼, <토르> <아이언맨> <어벤져스>, 그리고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모두 혹은 개별의 시리즈로 보았던 '과정'의 질적 확산이다. 그들의 전사에 대한 이해가, 비록 영화 속 등장과 함께 죽은 '로키'나 무엇하나도 해보지 못한 채 스러지는 '윈터 솔져' 등을 아쉽지만 용인할 수 있는 것이다. 와칸다의 들판에서 조우한 블랙 팬서와 캡틴 아메리카의 이질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한때 적이었던 이들의 어색한 만남에 미소마저 지어진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즉 그간의 시리즈를 통해 마블의 세계관의 전파는 일정 정도의 수준을 넘어섰다. 필독서가 되어 기꺼이 관객들이 '타노스'의 침공에 마음을 합쳐 지켜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어쩌면 파죽지세의 관객 증가세가 말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는 그간 우리의 영화계를 공습했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 그리고 오랜 시간을 거쳐서 빛났던 <스타워즈>의 콘텐츠적 영향력을 압도한다. 

마치 하나하나 끌어 모으며 그 힘을 질적으로 승화시킨 인피니티 스톤을 장악한 타노스처럼, 그간 매번 흥행해왔던 '마블'의 시리즈들이, 그들의 연합군 앞에 우리 관객들을 투항시켜 버린다. 물론 거기엔, 아예 싸울 기세도 없이 손을 들어버린 우리 영화계의 무기력함도 한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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