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었다. 새벽부터 깨거나 혹은 아예 전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날 아침 생중계된 남북 두 정상의 만남과 해프닝은 지켜보던 시민들을 울리고 또 웃겼다. 분단된 나라에 태어나 불행했으나 죽기 전에 이토록 감동적인 장면을 보게 됐으니 행복했다. 두 정상이 손을 잡고 남과 북을 오가는 모습은 분단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판타지의 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 북측으로 넘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 이후로 수도 없이 손을 맞잡고 만남이 끊겼던 지난 10년의 세월을 애써 거스르려는 몸짓을 보였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다시금 “이게 나라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크고 깊은 분노에 내내 몸살을 앓아야 했던 9년의 보상으로 부족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27일의 최고 화제는 냉면이었다. 옥류관 냉면. 점심때는 냉면집마다 몰려드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것이 바로 민심이었고, 이심전심이었다. 다들 놀랐다고 한다. 그까짓 냉면이 뭐라고 밥 먹으러 와서 괜히 뭉클했다고도 한다. 이처럼 시민들이 27일에 냉면으로 일치단결한 것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자연스러운 작용이었다.

냉면은 온라인에서 더 난리였다. 시민들은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서 서울에 옥류관 냉면 지점을 설치한다는 것이 진짜 의제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냉면 한 그릇에 통일과 평화에 대한 겨레의 뜨거운 염원과 응원이 집약된 것이었다. 누구나 그랬다. 아무 일 없이 웃음이 나왔고, 길에서 마주치는 누구나 다 반갑기만 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시민들의 한결같은 염원과 응원이 냉면이라는 의외의 소재로 분출된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공수된 옥류관 평양냉면 Ⓒ연합뉴스

그뿐인가. 끊긴 남북의 철도를 다시 잇기로 한 결정에 모두는 기차 타고 유럽 가는 꿈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어려운 말 따위는 몰라도 좋았다. 기차 타고 평양에 내려 옥류관 냉면을 먹는 흐뭇한 상상이면 족했다. 당장 될 일도 아니고, 돈이 엄청 드는 일이라는 것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모처럼의 즐거운 상상에 방해받을 이유는 없었다. 현실은 내일부터여도 충분했다.

그러나 정확히는 모두가 아니었다. 통일이 싫고, 평화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판문점 선언은 단지 못마땅한 남의 일이거나 혹은 부러워 배가 아픈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9년을 허비했다. 불평하거나 배 아파할 자격이 없다. 이런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고 오히려 남북관계를 후퇴시킨 죄가 클 따름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판문점 선언을 국회의 동의를 받기로 했다. 선언을 선언에 그치지 않게 하고 강력한 추진력을 더하기 위한 자신감 넘치는 결정이다. 세계가 모두 반기는 판문점 선언에 “위장된 평화쇼”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적은 것”이라며 어디에도 통하지 않을 생떼를 부리고 있는 홍준표 대표. 27일 하루 동안 국민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당리당략에 눈먼 자유한국당의 초라한 민낯이 다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 반통일, 반평화 세력이 판문점 선언의 국회동의마저 발목을 잡으려 든다면 이번에야말로 피할 수 없는 국민적 저항과 분노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분단 73년의 고통과 한은 너무 깊어 이제는 아프지도 않을 지경이다. 그래서 통일은 당장 어렵더라도 불행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한 노력에 재를 뿌리는 행위는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판문점 선언이 지방선거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생떼 아니라 더한 것도 하고 싶겠지만 그렇더라도 국민들이 벅차게 누리는 행복을 깰 생각일랑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 년 가까이 국민들은 자유한국당의 횡포를 질릴 정도로 보고도 참아왔다. 지금의 이 행복한 기대를 깨뜨린다면 자유한국당은 이름을 바꾸기 전에 겪었던 그 공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총선은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고, 시민들은 잊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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