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신문들 참 바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임명하자 의미부여 하느라 참 바쁜 것 같다. 한쪽에선 ‘코드’보다 실용을 중시했다고 평가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차기 대통령이 능력과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면모가 드러났다고 치켜세운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것처럼 “흠 없는 사람” 찾기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과거보다는 현재의 능력을 중시하는 것도 나름대로 ‘참신한’ 발상일 수 있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지난날 자신의 과오에 대한 ‘참회와 반성’이다. 그것이 전제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황은 ‘하늘과 땅’ 차이다.

▲ 동아일보 12월26일자 3면.
국보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 … 부끄럽기는 한 건가

인수위원장 임명 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의 ‘전력’은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경력이다. 이른바 ‘국보위 전력’인데 국보위가 무얼했던 곳인가. 오늘자(26일) 한겨레 보도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1980년 10월27일 전두환 대통령이 국회와 정당을 해산시키고, 국회를 대신해 입법 기능을 담당할 기구로 만든 것이다. 기존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에 입법 기능을 더해 격상시킨 것이다 … 국가보위입법회의는 81년 4월10일까지 존속하면서 신군부의 ‘거수기 국회’ 노릇을 했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215건의 안건을 접수해 모두 가결했으며,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국가보안법·노동법·집시법 개정안 등 악법 시비가 일었던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 한겨레 12월26일자 1면.
자신의 이런 ‘경력’과 관련해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2006년 4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끝까지 사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마지못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이해한다. 신군부 시절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마지못해’ 참여했더라도 국보위의 ‘활동’과 그것이 한국사회에 미친 폭압적 상황은 별개의 문제다. 어떤 식으로든 ‘참여’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참여가 마지못한 참여라 할지라도.

그런데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수락하면서 밝힌 내용이 이렇다. 좀 깬다.

“국보위는 역사적으로 평가가 다 내려진 것 같다. 27년 전 일인데, 열심히 일하겠다. 삼성 사외이사는 회사 운영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외국은 총장이 사외이사를 안 해본 것이 이상할 정도다.”

“국회의원 경험 감사하게 생각” … “국보위? 이미 27년 전 일”

▲ 한겨레 12월26일자 3면.
국보위에 대한 역사적으로 평가가 내려졌으니 이제 더 이상 문제 삼지 말라는 뜻인가. 국보위에 ‘마지못해’ 참여한 사람치고는 참 염치가 없는 것 같다.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는 동안 국보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무엇을 했나. 아니 좀더 직설적으로 한번 물어보자.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은 그동안 자신의 국보위 참여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한 적이 있던가. 이미 역사적으로 평가가 내려진 이 사안에 대해서 말이다.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2006년 4월 <신동아> 인터뷰를 보면 당시 이경숙 숙대 총장은 사과와 반성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됐다’는 상황만 강조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국회의원 한 덕으로 만났던 정계, 재계, 관계 인맥이 학교의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줬다. 국회의원 경험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27년 전 ‘마지못해’ 국보위에 참여해서 그런 도움을 받았다면,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지금 이 시점에서도 사과 한 마디 할 법한데 그냥 ‘과거 일’로 치부한다. 역시 한 끗 차이다. 만약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자기반성’을 통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밝혔다면 이런 논란이나 비난도 조금 방향을 달리했을 터.

“앞으로 과거 독재 권력에 부역하거나 인권유린에 연루됐던 사람들을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정 일선에 내세우지 않을까 우려된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반성 없는’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능력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실용주의가 묘하게 겹쳐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 보수신문의 '실용주의' 찬양(?)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국면'이 좀 우려스럽다. 지난날 과오에 대한 반성 없는 실용주의가 가져올 몰가치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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