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늘상 공포를 불러오는 이야기들은 식상하면서도 매력적입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만들어졌던 구미호 관련 이야기들 중 이 작품이 최강의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들이 만드는 잔혹극이기 때문입니다. 천진난만해서 잔인할 수밖에 없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아역 배우들이 최고를 만든다

역대 구미호들 중 이 작품에 등장하는 구미호가 가장 나약한 존재일 듯합니다.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과거의 구미호들과는 달리 이번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인간을 사랑한 죄로 결정적인 순간 내재되어 있던 잔인함을 억누르며 살아갑니다.

달이 차면 간을 내어 먹어야 하는 존재도 아니고 어린 딸이 3개월 후 여우의 피가 흐르게 되면 인간들이 살지 않는 깊은 산에서 살고자 합니다. 여린 인간의 몸을 한 딸을 데리고 산으로 들어갈 수 없는 구산댁(구미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구미호의 막강한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 채 속박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만 그려질 뿐입니다.

인간과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서 그런지 인간보다 더욱 정이 많은 존재가 되어버린 구산댁은 그래서 어쩌면 더욱 매력적일지도 모릅니다. 인간들은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는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와 달리 짐승들은 본능적인 생존만이 중요할 뿐 잔인하고 무모한 일들까지 저지르지는 않기에 인간보다는 나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제노사이드를 저지르는 것은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잔혹함이니 말이지요.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잔인함으로 대변되는 구미호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정작 인간들은 탐욕스럽고 잔인한 모습으로 등장해 기존의 방식을 뒤엎으며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같은 생명이지만 자신의 딸이냐 와 남의 딸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인간을 가장 잔인한 동물로 만들어갑니다. 잔혹한 번뇌를 부추기는 박수무당과 그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쉽지 않은 윤두수의 모습은 인간들의 다양한 측면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두수와는 앙숙 관계인 고을 현감에 의해 모진 고초를 당하는 구산댁과 연이를 구하는 두수는 이를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다른 이를 죽일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은 그녀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왔지만 다시 이렇듯 만나게 되었던 것은 하늘이 자신의 잔혹한 마음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된 그들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갈등이 극대화되어 있는 두수의 집에 구산댁이 자리를 잡으며 다시 한 번 혼란 속으로 빠져듭니다. 두수의 애첩과 아들들, 병치레를 하면서 집착만이 강해진 두수의 딸 초옥은 사랑을 독차지 하는 연이가 눈엣가시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두수 입장에서는 3개월 후면 초옥이를 위해 간을 빼내어야 할 연이를 애처롭게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안타깝기만 합니다. 자신의 딸을 위해 남의 딸을 해쳐야 하는 두수로서는 만감이 교차하건만 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연이를 위험에 빠트리려고만 합니다.

병치레가 잦은 초옥은 두수의 숙적인 조현감의 아들 정규를 좋아합니다. 도령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서찰도 보내고는 하지만 정규는 그런 초옥을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초옥이 연이를 죽이고 싶도록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상황은 반딧불을 보러간 그들로 부터 입니다.

반디를 따라 그곳까지 온 연이는 운명처럼 물에 빠진 정규 도령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됩니다. 어머니가 선물로 주었던 방울을 떨어트리고 이를 전해주러 온 도령으로 인해 초옥은 분노하게 됩니다. 자신의 사랑을 빼앗아간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던 초옥은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연이를 감싸며 그림을 그리는 걸 도와주는 모습은 그녀를 폭발하게 만들지요.

분노에 가득 찬 초옥은 몸종을 시켜 연이를 우물에 던져 넣어버리고 죽을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물 안에서 빠져 죽음에 가까워지는 그녀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구미호의 힘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 어느 누구보다 잔인해진 상황에 놓여 있던 연이는 어미를 능가하는 최가의 구미호가 될 수밖에 없는 조련을 받은 셈입니다.

너무 잔인해져버린 초옥을 따끔하게 꾸짖어도 결코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는 딸로 인해 두수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3개월 후 간을 빼내어 자식을 살리려던 계획을 앞당겨 구산댁 모녀를 불러들이는 두수는 과연 모녀들에게 어떻게 할까요?

1회를 능가하는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2회를 값지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성인 연기자들이 조연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재미입니다. 구미호가 되어가는 연이 역을 맡은 김유정과 잔인한 성격을 드러내는 서신애가 맡은 초옥은 드라마 사상 가장 잔인한 아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우물에 연이를 빠트리고 해맑게 웃으며 죽을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대사를 하는 서신애의 모습은 그 어떤 잔인한 장면들보다 잔혹했습니다. 어린 아이의 천진함 속에 이렇듯 잔인한 장면을 뽑아냄으로서 그동안 피만 낭자한 죽음들이 공포스러움의 전부라고 이야기했던 역대 구미호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스러움을 선사했습니다.

종아리가 터지도록 맞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토해내는 초옥의 열연은 신애이기에 가능했습니다. 폭발하듯 몰아치는 그녀의 분노 연기는 아역 연기자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역대 구미호 이야기 중 최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신애와 김유정이 펼쳐 보이는 잔인한 연기 때문입니다. 가장 순수한 얼굴을 하고 섬뜩한 마음을 품고 있는 어린 아이는 그 어떤 무서움보다 두렵게 다가옵니다. 여리고 귀여운 데미안이 악마의 웃음을 지을 때 느껴졌었던 두려움만큼이나 이 어린 여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최고였습니다.

3개월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하나의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구미호와 인간의 동거.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잔혹함은 이 드라마를 더욱 값지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공포 이야기가 아닌 공포의 가치 자체를 극대화해주는 어린 배우들의 열연은 이 드라마를 꼭 봐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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