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KBS <천국보다 긴 계단-한국의 수도원을 가다>의 한장면이다.

반성하기 적당한 시점이다. 연말에 해두지 않으면 다시 기회를 잡기 힘들다. 송년회, 신년회 하고 나면 구정이고, 곧 봄이 온다. 지금보다 두배로 바빠질지 모른다.

무엇보다 말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올해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 점검을 해줘야 하는 시기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순간 순간 쏟아내야 하는 말들이 너무나 많다. 그만큼 듣는 말도 많다보니 대꾸를 하며 살자면 어쩔수 없다. 머리나 가슴보다 입이나 손이 먼저 말을 하고 있다.

연말을 맞아 방송사들이 종교인들을 찾고 있다. 풍요롭지만 각박해진 세상에서 종교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KBS는 25일 성탄기획으로 <천국보다 긴 계단-한국의 수도원을 가다>를 방송했다. MBC는 지난 15일<MBC 스페셜> '내 생애의 모든 것-수도원의 작은 형제들'편을 방송했다.

두 프로그램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차별화된 감동과 정보를 줬다.

KBS 성탄기획 <천국보다 긴 계단-한국의 수도원을 가다>는 '트라피스트 수도원'를 찾았다. 그 곳을 통해 한 명의 수도자가 입문하는 과정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촘촘히 담았다. 입회식으로 시작해, 청원식, 서원식, 착복식, 유기서원, 종신서원식에 이르는 길은 예상 보다 매우 길었다. 그리고 마침내 생을 마치고 장례식까지에 이르는 길도 매우 험했다. 만약 어떤 부와 명예를 준다고 해도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었다.

MBC <MBC 스페셜> '내 생애의 모든 것-수도원의 작은 형제들'편은 MBC가 1997년 작은형제회에서 만났던 17명의 젊은 수련수사들을 다시 만났다. 8년이 지난 후 그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수련생활을 그만 둔 사람도 있었고, 그동안 다시 수련을 받아야 했던 인물도 있었다. 수도원안에서만 수도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주민들을 도우며 수련을 정진중인 수사들도 있었다.

두 방송 모두 베일에 싸여있었던 수도원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방송을 빛나게 했던 것은 그분들의 솔직함이었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게 그분들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한다. 만약, 하느님 품에 있어 본인은 행복하다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답만 나왔다면 쉽게 질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분들은 인간이 가지는 욕망들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하고 가슴 아파했던 속내들을 그대로 들려줬다.

방송을 보니 수도생활에서 강조하는 것은 '침묵'과 '노동'이다. 침묵은 자신과 타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하고, 노동 또한 땀의 가치를 잊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할 수도과정 중 하나라고 한다.

시인 유안진은 '침묵하는 연습'에서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얼마나 외롭게 하고/텅비게 하는가?/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적었다.

연말이 되니 사람들이 더욱 지쳐보인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탈진 직전인 경우가 많다. 이때 일반인들도 며칠쯤은 수도생활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말을 줄이자. 이 기회에 꼭 해야할 말과, 할 필요가 없었던 말이 무엇인지 구분해보자. 오로지 욕심 때문에 필요없는 물건을 사들였다면 나눠줄 사람을 찾아보자. 땀을 흘리며 내가 살고 일하는 공간을 청소하자. 인터넷에 뱉어놓은 말들도 흔적을 따라잡아 보자. 이제와서 보니 악플이라면 인류평화를 위해 지우자. 사과까지 하면 더욱 즐겁다.

그리하여 내년은 좀더 가볍게 출발해보자. 마음 안에 있는 경계들을 넓혀보자. 말이 앞서 후회하는 일을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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