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말지를 통해서 폭로된 5공 군사정권의 보도지침 사건은 한국사회를 뜨거운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폭압에 숨죽이던 말과 양심들이 비로소 거리로 나서는 커다란 계기를 만들었고, 군사정권의 몰락을 앞당기는 역전의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7월 6일 KBS는 코미디언 김미화씨를 명예훼손혐의로 영등포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미화씨가 같은 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블랙리스트 때문에 KBS 출연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혹 제기 발언에 대한 KBS의 즉각적인 대처였다. KBS는 이어 9시 뉴스에서도 이 건을 보도하며 김미화씨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KBS는 지난 일요일 1박2일 재방송 화면에 파업하는 노조를 담당PD가 없는 틈을 타 불법 운운하며 몰아간 것으로 비난받은 바 있는데, 이번 보도 역시 많은 시청자와 누리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우선 KBS태도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사실관계에 관한 파악 정도가 매우 떨어져 있다. 김미화씨가 트워터를 통해서 발언한 내용은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확정적 표현이 아니라, 있다면 ‘밝혀 달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문맥에 대한 뉘앙스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KBS라고 뉘앙스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으나, 과연 그것으로 명예훼손이 성립하느냐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명예훼손 여부를 따지기 전에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밝히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밝힌다면 명예훼손 자체가 원인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KBS 내부의 양심선언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있다. 현재 KBS는 새 노조의 파업을 겪고 있다. 파업에 들어가면서 KBS를 바라보는 국민 시각도 조금은 희망적으로 바뀌고 있다.

노조 파업이 이 블랙리스트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전혀 기대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파업에 임하는 1박2일 담당 피디는 트위터를 통해 “짖지도 않는 개가 되기 싫었다”라고 말한 바 있어 현 정권을 맞아 KBS 직원들이 겪는 정신적 자괴감을 드러냈다. 지금의 분위기가 KBS 내부로부터의 의외의 반전요소가 돌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밝히는 것에 국민들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블랙리스트가 실제 문건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미 윤도현, 김제동 등의 퇴출에 이어 얼마 전 다큐3일에 내레이터로 김미화를 직접 거론한 임원회의의 결정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보도지침은 설마(?) 없겠지만 대신에 예능검열의 시대를 맞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예능검열은 비단 KBS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에 대한 방통위의 끊임없는 간섭과 통제 의도는 익히 아는 사실이다. 또한 국회의원들의 일부 개그맨에 대한 공격적 발언은 해당 개그맨뿐만 아니라 전체 분위기를 위축시키기 마련이다. 현재 진행되는 이 예능검열에 대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사람은 잊어도 역사는 반드시 밝혀야 할 많은 것들을 진실로 인도했다. 지금 당장은 술 푸게 하는 세상이지만 머지않아 그 속 풀어낼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한국 현대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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