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진짜 도둑맞았네, 남 번역가한테. 어처구니 없음. 페미 돈 된다고 하니까 별별 일 다 생기네.”

신간 <도둑맞은 페미니즘>의 번역가 김성준 씨에 대한 한 온라인 서점 회원의 평가다. 이러한 비난이 온라인 서점뿐 아니라 트위터에 만연하다. ‘재기(자살)하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여론이 험악하다.

<도둑맞은 페미니즘> 도서 표지

여론의 요지는 ‘페미니즘 책은 돈이 된다. 그런데 여성혐오 발언을 한 부르주아 남성 김성준 씨가 그 몫을 젠더 권력으로 차지했다. 그리고 그의 번역에는 여성 혐오가 반영됐을 것이 뻔하다’이다. 하지만 번역가를 문제 삼으면서, 정작 책의 내용이나 번역의 질을 제대로 확인한 의견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김성준 씨의 발언과 과거 게시물들을 맥락을 소거하고 왜곡해 여성 혐오의 증거로 삼고, 이미 충분한 사과가 이루어진 잘못에 대해 지속해서 ‘조리돌림’하는 상황이다.

이 사태에는 김성준 씨가 ‘남페미(남성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큰 몫을 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오마이뉴스 기자였던 하지율 씨가 책 <우리는 메갈리안>을 기획했다가 ‘남페미’라는 이유로 일부 페미니스트들에게 진정성 의혹으로 비난 폭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우리는 메갈리안>이 논객 박가분 씨의 메갈리아 폄하 논의에 대항하는 기획이었다는 점, 하지율 씨가 꾸준히 페미니즘 관련 기사를 썼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온라인서점 알라딘 홈페이지 도서 <도둑맞은 페미니즘>구매평 중 일부

‘남페미’와 당사자성

물론 페미니즘에 민폐를 끼친 ‘남페미’들이 실제로 있었다. 이는 ‘남페미’가 가부장제 기득권자로서 여성보다 가부장제에 거리 두기 어려운 탓이다. 남성이 페미니스트라 쉽게 밝힐 수 있고, 작은 페미니즘 실천만 해도 칭찬받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성들도, ‘남페미’ 자신도 ‘남페미’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페미를 경계하는 것과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배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김성준 씨와 하지율 씨 사례처럼, ‘남페미’들은 한 번 트집 잡히면 끊임없이 사과하고 반성해도 ‘여성이 아니라 진정성에 한계가 있어서’, ‘지금까지 젠더 권력을 누려 왔다’는 이유로 조리돌림의 도돌이표에 갇힌다.

‘남페미’는 여성 당사자가 아니다. 하지만 ‘당사자성’은 옳음을 보장하지 못한다. 여성으로서 여성 인권을 후퇴시킨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명징한 사례다. 당사자성은 사유의 중요한 토대이자 시작점이지만, 그 자체 사유의 결과이기 어렵다. 성 소수자나 장애인이, 노인, 다문화 가정이 아니라며 침묵하는 것이 변명인 이유와 같다. ‘남페미’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과 조리돌림은 당사자성과 성별 이분법에 호소하는 오류다.

한 트위터리안이 김성준 씨에게 한 비난

우리가 사과를 요구하는 까닭

남성은 명백히 젠더 권력의 수혜자다. 하지만 기득권 전반과 개인에 대한 접근은 달라야 한다. 젠더 권력은 일정하고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젠더 권력을 바꾸려는 페미니즘 운동도 가능하다. ‘남페미’의 목적은 여성 당사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될 수도 없다. 그래서 ‘남페미’의 역할은 가부장제 기득권을 성찰하고, 기득권을 이용해 더 용감히 발언하며, 함께 가부장제 해소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페미’든 누구든 옳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사과’를 요구하고 실천한다. 사과를 통해 반성해 자신은 진보하고, 뒤늦게나마 피해의 고통에 책임지고, 재발 방지를 다짐해 결과적으로 사회가 진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 요구는 진보 요구와 같고, 화풀이와는 다르다. 하지만 현재 김성준 씨에 대해 과거 행실을 털어 인성 검증을 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도 외면하고 인신공격 하는 양상은 화풀이에 가깝다. ‘김성준 씨의 연인이 로맨스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졌다’며 여성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여성혐오를 저지르거나, 번역 시장에 대한 몰이해로 공격하며 오히려 당사자성을 무시하는 것도 그렇다. 정작 <도둑맞은 페미니즘>의 원저자 니나 파워의 메시지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진짜 ‘페미니즘 도둑’은 누구인가?

‘남페미’에 대한 조리돌림은 결과적으로 공론장에 ‘나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김성준 씨가 “이럴 거면 그냥 남성 정치학자 번역할 걸 그랬다”라고 푸념한 것처럼, ‘남페미’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율 씨도 심한 인신공격을 받아 <우리는 메갈리안> 기획이 엎어진 뒤, 사실상 절필 상태다. 그 사이 페미니즘을 폄하하는 박가분 씨의 책은 꾸준히 출판됐다.

그렇다고 남성들이 페미니즘 관련해 침묵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최대한 부정적으로 해석돼 조리돌림 당하는 일을 감수하라고 할 수도 없다.

김성준 씨는 본인 페이스북에 "페미니즘 서적을 남자가 번역했다는 게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겨우 형성된 한국어 페미니즘 책 시장을 파괴하는 방향보다는, 본인들이 지지하는 여성 번역자의 좋은 책을 많이 사주시는 방향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요. 저는 이 책들이 제 번역서보다 훨씬 많이 팔려도 기쁠 것 같습니다"라고까지 했다. 이런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화력 낭비가 아닌가? 과연 페미니즘 정의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가?

어쩌면 ‘남페미’가 남성으로서 죄의식을 가지고 있고, 페미니스트들의 말을 우선적으로 듣는, 만만한 상대여서가 아닌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는 사이, ‘진짜 페미니즘 도둑들’은 활개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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