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설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대리운전을 하면서 여자친구 현지(류현경 분)에게 얹혀살던 경유(이진욱 분)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여자친구에게 쫓겨난다. 경유가 쫓겨난 그날은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탈출하였고, 대리운전을 하다가 전 여자친구 유정(고현정 분)을 만난 추운 겨울날이었다.

<로맨스 조>(2011), <꿈보다 해몽>(2014)을 연출한 이광국 감독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2017)은 시공간을 뒤섞은 복잡한 서사가 돋보인 전작에 비해서 한결 간결해지고 친절해진 듯하다. 영화를 구성하는 플롯 또한 비교적 단출하다. 살던 여자친구 집에서 쫓겨나 갈 곳 없어진 남자 경유는 우연히 전 여자친구 유정을 만난다. 유정은 경유가 그토록 원하던 소설가가 되었고 집이 있지만, 이상하게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약속된 마감을 넘긴 지 오래라 어떻게든 써서 넘겨야하는데 도통 글이 써지지 않는 유정은 전 남자친구 경유에게 도움을 청한다.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 이미지

경유가 현지의 집에서 나오던 날, 경유를 배웅하며 현지는 그에게 “호랑이 조심하라.”는 마지막 말을 건넨다. 오랜만에 경유를 만난 유정 역시 경유에게 호랑이를 조심하라고 한다. 하지만 경유는 호랑이를 마주치는 것도 무섭지만, 갈 곳 없어 거리를 배회하는 눈앞의 현실이 더 무섭다. 호랑이는 혹여나 마주치게 되면 죽은 척 하면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도무지 피할 방도가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사실, 경유의 상황이 꼬여버린 데에는 그 스스로에게 원인이 있다. 소설가를 포기하고 오랫동안 방황을 거듭한 경유는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누군가에게 기대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 사이 경유를 먹여 살리던 현지는 비정규직으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되고 나날이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살던 집을 비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집에서 쫓겨난 경유는 뒤늦게 현지를 찾아 나서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게 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는 남자에겐 한탄만 남는다.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 이미지

한편, 우연히 전 남자친구 경유를 마주친 유정은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에도 성공하고 소설가로서 재능도 인정받았지만, 써야하는 글은 쓰지 않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신다. 글을 쓰기 위해 시도는 하지만, 매번 엎어 버린다. 아무래도 유정은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큰 것 같다. 전작보다 더 나은 작품을 써야한다는 부담감이 유정의 머릿속을 짓누르는 것이다. 글이 안 써지니 계속 술에 의존하게 되고, 이제는 알코올 중독까지 의심될 정도다.

그러던 중, 소설가를 지망하던 시절에 만났던 경유를 다시 만나게 된다. 경유가 자신의 곁에 있어주면 안 써지던 글이 잘 써질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경유가 예전에 썼던 글이 필요했다. 그는 집이 없으니 재워주고 먹여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순탄하게 풀릴 것만 같았다. 각자 처해있는 상황은 다르지만, 경유와 유정 모두 누군가에 의존하여 문제를 피해가려 한다. 얹혀살던 여자친구 집에서 쫓겨나 갈 곳 없어진 경유는 친구 혹은 유정의 집을 전전하며 의식주를 해결하고자 하고, 글이 써지지 않는 유정은 경유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그의 글을 탐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지 않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떻게 운이 좋아 급한 불은 끌 수는 있겠지만, 또다시 비슷한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곤란한 상황에 놓이면 어물쩍 넘기거나 화부터 내곤했던 경유는 연이어 비슷한 상황에 몰리며 곤란을 겪게 되고, 혼자의 힘으로 글을 쓰기 어려워했던 유정은 설상가상 데뷔작 또한 표절시비에 몰린다.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스틸 이미지

궁지에 몰린 경유는 현지와 유정이 그토록 조심하라는 호랑이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호랑이를 만나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경유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이런저런 상황을 보면 차라리 호랑이를 만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라는 제목을 환기해 보자.

경유에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그의 전 여자친구 유정도 아니요, 대리운전을 하면서 경유를 힘들게 한 진상손님들도 아니었다.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과 마주하는 것. 호랑이를 마주친 경유는 그제야 비로소 오랫동안 손에 놓았던 글을 쓰기 시작한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앞에서 피하지 않았던 그의 새로운 이야기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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