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매치 '독일VS아르헨티나'의 8강전은, 뮐러, 클로제 등의 연속골에 힙입어 독일의 4:0 완승으로 끝이 났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싱겁지만, 내용면에선 이번 남아공월드컵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었던 경기로(물론 대한민국 경기를 제외하고) 기억될 만큼, 양팀 모두 수준높은 경기력을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축구천재 메시를 앞세운 아르헨티나가 독일 골문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점은 있으나, 양팀의 빠른 공수전환이 90분 내내 이뤄지면서 눈돌릴 틈이 없었다. 특히 앞서 나가던 독일이 수비에 치중하지 않고, 지속적인 공격을 이어가며, 점수차를 벌려 나간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독일은 지키는 축구가 아닌 전차군단의 명성에 걸맞게, 준비된 수비조직력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팀컬러인 공격축구를 구사하면서,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 0순위로 떠올랐다.

차두리의 인공지능해설, 차범근과 뭐가 달랐나?

경기만 재미있었던 게 아니었다. '차범근-차두리' 부자의 해설콤비는, 잘 차려진 경기에 맛좋은 양념역할로 손색이 없었다. 역시나 좋은 해설은 보는 재미뿐 아이라 듣는 재미까지 선사할 수 있음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해설자가 두 명이면 산만할 수도 있으나, 부자의 역할분담이 확실해 군더더기 없는 해설을 가능케 했다.

해설의 명의 차범근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경기의 맥을 짚는데 탁월했다. 또한 양팀의 전술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시청의 길잡이 역할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정적인 찬스에선 '아, 아~' 등의 탄성도 질러주면서, 경기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차범근표 샤우팅도 적절하게 표현했다.

반면 차두리는 월드컵을 직접 뛰어 본 현역선수답게, 공인구 자블라니의 특성,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대변해 주었다. 특히 분데스리가에 뛴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 선수들의 장단점을 비롯한 특성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그들과 직접 부딪힌 경험을 토대로 한 에피소드, 선수들을 바라보는 자국내 시선과 분위기를 덧붙여, 아버지 차범근이 커버하기 힘든 부분을 매끄럽게 이어줬다.

깨방정을 떨지 않았냐는 평도 있지만, 오히려 급샤우팅 차범근에 비해, 차두리는 시종일관 차분한 말투와 톤으로 안정감 있는 서포트에 충실했다. 축구선수와 감독을 거친 차범근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감에 의존한 해설을 했다면, 차두리는 현역선수답게 남아공월드컵 경기장을 누볐던 학습을 통한 문제해결방안을 찾았고, 양팀 선수들에 대한 이해와 방대한 데이터를 적재적소에 접목시켜, '인공지능' 해설을 선보였다고 볼 수 있다.

'차두리로봇설'을 일축시킬 정도로, 해설가 차두리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멘트는, 차박사 차범근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서로의 장단점을 커버해 준 '차범근-차두리' 부자의 콤비 해설은, 지난 독일월드컵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만은 분명했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떠나, 스코틀랜드의 명문구단 셀틱으로 이적한 차두리. 대표팀의 기성용과 한솥밥을 먹게 된 만큼 서로에게 힘이 되고, 두 선수 모두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지 않았나 싶다. 말미에 이적한 차두리를 향해, "차두리 화이팅!" 이라는, 짧고 굵은 메시지를 전했던 아버지 차범근의 멘트가, 한국축구대표팀과 차두리를 응원했던 많은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한 최고의 해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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