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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술클럽’-‘상상식탁’ 먹방의 빛나는 진화, 잘 차린 인문학 한 상 어때요?[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4.15 21:23

<수요미식회>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획기적이었다. 음식이 질펀하게 한 상 차려지지 않은 '먹방'이라니. 먹방, 인터넷 BJ들이 시청자들을 상대로 음식 먹는 걸 보여주며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이토록 무궁무진하게 발전해나갈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BJ들의 먹방은 곧 케이블을 비롯한 TV 먹방 프로그램의 홍수로 이어졌다. 오로지 '먹는 것'에 집중했던 먹방 프로그램의 홍수 가운데 <수요미식회>의 등장은 신선했다. 물론 <수요미식회>에도 먹방은 등장한다. 출연자들은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 음식점에서 그날 주제의 요리를 먹고, 그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수요미식회>의 본질은 시각적 자극이 배제되거나, 극도로 제한된 먹망의 승화에 있다. 출연진 홍신애의, 기꺼이 자신의 몸을 사례로 든 고기 부위에 대한 상상부터, 마치 한 편의 하이쿠와도 같은 이현우의 은유 가득한 맛의 평가, 황교익의 풍성한 평론의 잔치까지. 말로 풍성해진 식탁을 한 상 차려 받는 느낌이 단순한 먹방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기를 끌었다. 

지난 3월 7일 선보인 히스토리채널의 <말술클럽>과, 3월 31일부터 EBS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파일럿 프로그램 <상상식탁>은 바로 이런 <수요미식회>의 맥락을 계승하여 특화, 발전시킨 프로그램들이다. 

히스토리채널 인문 예능 프로그램 <말술클럽>

방송을 시작한 지 3년, 말로 풍성하게 차려진 <수요미식회>가 시간을 지나며 그 말의 깊이가 옅어졌다. 여전히 게스트들의 맛집 순례는 맛깔스럽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출연진의 멘트에서는 그들의 내공보다 작가들의 고군분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뜻밖에도 <알쓸신잡>에 등장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내공 깊은 '탐식'의 경륜과 지식들은 <수요미식회>에서 한 발에서 더 나아간 '인문학'과 '먹방'의 콜라보, 그 가능성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전통주만큼이나 풍성한 인문학, 술 이야기

<말술클럽>은 말 그대로 '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술' 하면 빠질 수 없는 애주가들부터 '술 칼럼니스트'들까지 한데 모인 질펀한 한 상 차림이다. 그런데 여기에 '히스토리'채널의 특색이 가미된다. 그저 술이 아니라, '전통주'이다. 2000여개에 달한다는 우리나라의 전통주. 한번 맛보면 '세상에 이런 맛이!'라고 하지만, 대통령 만찬주로 등장이나 해야 ‘저런 술이 있어?’라며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전통의 명가'들을 탐미하는 프로그램이다. 

히스토리채널 인문 예능 프로그램 <말술클럽>

하지만 술을 매개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전통이라는 색채가 더해지며 한국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로 전개된다.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일본식의 주조 방법이 아니라면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청주'라는 본래의 갈래를 상실한 채 약주, 혹은 맑은 술이란 애매모호한 장르로 둔갑한 우리의 청주. 그 연원부터 막걸리로 시작하여 주막과 돈이 무거웠던 시절 서울 근교의 주막에서 돈을 맡기고 받은 영수증 하나로 매 주막에서의 지불은 물론, 마지막 지방 주막에서 돈을 거슬러 받을 수 있는 '주막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전통주라는 주제 하나로 뻗어져나가는 이야기의 향연. 심지어 수능 국어영역의 '국선생전'의 묘미까지 이어지는 한국사 탐험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거기에 뜯고 맛보는 전통주의 미식 연찬회는 기본이다.

주당 장진 감독과 박건형에, 주류계의 알파고라는 호칭에 딱 맞는 '전통주' 전문가 명욱의 해박함, 이미 그의 <메이드 인 공장> 등을 통해 사물에 대한 재기발랄한 혹은 애정 어린 천착을 선보인 바 있던 김중혁 작가의 박학함 등이 어우러져 애정 어린 '전통주 탐험기'가 완성된다. 

음식으로부터 비롯된 비교사 탐험 

EBS1 교양프로그램 <상상식탁>

<말술클럽>이 전통주를 매개로 한 계통적 한국사 탐험이라면, EBS에서 선보인 <상상식탁>은 횡적인 비교사 프로그램이다. 이제 2회를 방영한 이 프로그램이 선택한 주제는 사랑, 정치, 전쟁 등 개념적 명제들이다. 

정치의 편에서 정상 만찬에 등장하여 화제가 된 '독도 새우'부터, 2차대전을 앞두고 방문한 영국의 조지 6세에게 대접했다는 미국의 길거리 음식 핫도그, 그리고 비빔밥, 초콜릿 칩 쿠키가 정치 그 중심에서 세계를 변화시킨 음식으로 등장하여 새로운 '지식'의 장을 연다. 

전쟁의 편을 연 건 ‘육포’이다. 전쟁하면 싸우는 것만 생각하지만, 정작 전쟁에서 관건이 되는 건 병사들이 먹고 싸울 수 있는 '식량'이다. 바로 그 식량배급 문제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한 몽골의 ‘육포’는 곧 그들의 세계 정복을 가능케 한 신의 한 수라고 <말술클럽>은 정의 내린다. 또한 전쟁 과정 속에 또 하나의 변수가 된 식량으로서 영국의 '피쉬앤칩스'를 조명한다. 1,2차대전 자국이 전쟁터가 된 영국 국민들이 배급 물품에서 제외된 생선과 감자로 기아를 버텨냈다는 것으로, 음식은 곧 ‘역사의 산 증인’이 되는 것이다.

EBS1 교양프로그램 <상상식탁>

이미 <외부자들>을 통해 전문적 영역 MC로 등장한 남희석이 '인문학'의 MC로서 도전장을 내밀며, 자칫 황교익으로 과점화될 우려가 제기된 음식 평론계에서 새로이 등장한 유지상 음식 전문 기자, 건축이 직업이지만 음식비평이 특기가 된 이용재 비평가가 합류하여 음식 평론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팟캐스트<지대넓얇>의 이독실이 공대생 특유의 장기를 살려 데워먹는 전투식량을 실험해본다 하는 식으로 인문학의 활기를 불어 넣는다. 

또한 사랑을 주제로 한 편에 박상희 심리 카운슬러, 정치 편에 전여옥 전 의원, 전쟁 편에 군사전문가 양욱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출연하여 인문학적 전문성을 더한다. 

EBS1 교양프로그램 <상상식탁>

물론 이 프로그램들이 전통주의 홍보를 넘어, 혹은 이미 한편에서는 상식이 되어가는 인문학적 지식의 '편집'을 넘어서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의 여지가 남는다. 하지만, 먹방이라는 가장 익숙한 주제를 '인문학'이라는 트렌트 혹은 발전의 영역으로 가지를 뻗어 시도하고자 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전통주라 봤자’라거나, ‘음식의 역사라 봐야’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인간들의 삶은 먹고사니즘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부디 이러한 시도들이 활발하게 다각도로 진행되어, TV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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