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가 거듭될수록 단순한 전쟁 드라마가 아닌 그 참혹한 상황에 내던져진 인간들의 고통과 아픔을 담아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보다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함에 시선을 보내고 있는 그들은 전쟁 드라마의 새로운 의미를 전달해주려 하고 있습니다.

윤계상 새로운 도약이 가능해 보인다

1. 전장은 낭만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이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피난민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한강 다리를 폭파하며 국민들을 버리고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렇게 북진 통일을 외치던 정권은 실제 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보다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 도망치기에 바빴고 버려진 피난민들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이념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전쟁다운 전쟁도 해보지 못하고 부산까지 밀린 국군과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부산을 차지하려는 북한군과의 마지막 전투는 치열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낙동강 저지선에서 지켜내느냐 빼앗느냐는 전쟁의 승패가 완벽하게 가려지는 것이니 말이지요.

마지막까지 북한군의 탱크 부대를 저지하던 2중대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막아내기 위해 낙동강 최전선에서 전투를 치룹니다. 연일 이어지는 전투는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살아있는 이들마저 처참해지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전투를 하는 그들에게 지원대는 것들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모자란 식수였지요.

타는 목마름을 감당하기 힘든 그들은 숱에 담겨온 물을 서로 먹으려 하다 모두 쏟아버리고 맙니다. 그런 물이라도 마시기 위해 진흙을 먹어야만 하는 그들은 과연 이 전쟁이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모호하기만 합니다. 아직도 어린 아이를 강제 징집해 전장터로 데려와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상황은 지독할 수밖에는 없지요.

포격이 그치면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숱한 전투를 통해 알고 있는 그들은 폭풍전야 같은 상황이 더욱 견디기 힘듭니다. 그저 싸워야 하니 싸우는 그들은 서로 죽지 않기 위해 싸울 뿐입니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순간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값싼 동정은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그런 전쟁이 무엇을 위함이고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할 틈도 없습니다. 그저 자유를 위한 혹은 해방을 위한 전쟁이라는 소수가 만들어낸 이념만이 진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전쟁은 죽음과 고통, 그리고 죽어서도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이 남겨져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장교가 되어야만 했던 장우는 부산에서 수연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막연하게 그녀를 찾던 장우는 작은 아씨인 수희를 만나게 되지요. 술집 여자가 되어 군인을 상대로 돈을 벌려던 수희는 우연하게 장우와 만나게 되며 자연스럽게 수연의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장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허전함과 부산으로 쫓겨 와 할 수 있는 것들이 전무한 상황에서 돈이라도 벌어보려는 수희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지요. 고향에서도 그랬듯 자전거를 타고 부산 거리를 바쁘게 가는 수연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를 쫓지만 신기루처럼 보였다 사라지는 그녀입니다.

장우가 수연을 찾듯 신입 장교들을 통솔하기 위해 부산으로 온 태호도 수연을 찾습니다. 자신을 진정 사랑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은 그는 자신이 찾던 수연을 먼저 발견한 장우를 보게 됩니다. 자신의 사랑과 무관하게 변할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픔인 그는 그들을 쫓기만 합니다.

쫓기는 그들로서는 남로당원임을 알고 있는 태호가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는 없지요. 여전히 부산에서 남로당원으로서 활약을 하고 있는 수연의 오빠까지 엮이는 상황에서 그들은 태호의 끈질긴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좁은 골목에서 오랜 시간 참아왔던 감정을 폭발하기 시작하지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그들의 사랑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솜틀집에서 솜들이 나부끼는 상황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그들은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서로에 대한 감정은 커져만 갑니다. 수연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가려는 장우에게 수연은 자신을 영원히 잊지 말라며 옷을 벗습니다.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사랑을 모두 보여주고 싶은 수연과 그런 사랑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내려는 장우는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플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사랑은 결코 순탄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2. 윤계상의 재발견

아이돌 그룹 출신의 윤계상의 연기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많았었습니다. 물론 팬들에게는 익숙하고 멋지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이 받아들이는 윤계상은 여전히 가수 출신의 연기자 외에는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지요.

그런 그에게 <로드 넘버원>은 연기자로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첫 회부터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남자의 모습이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육사 출신의 엘리트 장교 출신으로 완벽한 군인의 모습을 보이는 그는 용맹하고 전우를 우선하는 전장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사랑 때문에 한없이 질투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나쁜 남자로 변신합니다.

윤계상은 태호라는 완벽해 보였던 인물이 사랑으로 인해 한없이 파괴되어가는 존재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불안전한 인간으로서 복잡한 심경 변화들을 잘 표현해야만 하는데 의외로 잘 연기해내고 있습니다. 전장에서 대원들을 이끌어야하는 직책임에도 절대 강자의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죽음 직전에 몰려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오늘 그의 연기 압권은 갈증으로 시달리던 상황에서 바닥에 쏟아진 물이라도 마시기 위해 진흙을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물기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에서 그는 실제 진흙을 먹어가며 리얼하게 연기를 하는 장면은 그에 대한 논란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연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소지섭의 카리스마 연기도 좋았고 그들이 오늘 보여준 사랑의 감정들도 멋진 장면들과 탁월한 감정 연기들로 잘 표현해 주었지만 사랑에 상처를 입고 그들을 찾아다니던 윤계상의 연기가 4회에서는 그 누구보다 탁월했습니다. 단순히 진흙을 먹는 장면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씩 변해가는 태호의 역을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의 연적이 되어 함께 생사를 나누는 전우가 되어야만 하는 그들이기에 연기에 대해 상호 보완적이고 경쟁적인 상황이 되지 않으면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소지섭에 비해 부족해 보였던 윤계상이 확실하게 자신의 연기에 몰입하면서 <로드 넘버원>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드라마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지섭은 철저하게 하나의 목표만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수연과의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그의 캐릭터는 상당히 단순화 되어 있습니다. 그에 비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수연은 다양한 변신을 해야만 하는 존재이지요.

이들 이상으로 윤계상이 중요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배역의 중요성입니다. 육사 출신의 엘리트 장교가 전투에 참여하며 느끼는 감정들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에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단순한 전쟁 머신이 아닌 사랑에 상처를 받고 마지막까지 그 사랑을 놓지 않는 그의 캐릭터는 미세한 변화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내야만 하는 쉽지 않은 배역입니다.

그런 만만치 않은 연기를 윤계상이 보여주기 시작하며 그에 대한 편견들은 조금씩 사라질 듯합니다. 새롭게 변신하기 시작한 연기자 윤계상은 <로드 넘버원>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3. 사전 제작의 성공 가능성?

사전 제작되어 시청자들의 회 차별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은, 악재가 될 수도 있지만 호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매 회 바뀌는 호불호로 인해 드라마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에서 첫 기획 방향을 흔들림 없이 끌어갈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사전 제작은 도박과도 같습니다. 성공을 한다면 이 보다 좋은 제작 형태는 없겠지만 초반 실패를 해버리면 어쩔 수 없이 마지막까지 그 상태 그대로 가야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초반 전쟁 장면 등에서 보여준 어설픈 모습들과 전쟁 드라마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인해 아쉬움을 토로하던 이들이 많았지만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전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배우들의 열연 등으로 몰입도를 높여가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전투 장면들을 버리고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참혹한 장면들은 전쟁이 얼마나 추악하고 아픈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과 북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치열한 전장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중요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전쟁을 하나의 게임처럼 혹은 전쟁을 정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전쟁이 주는 본질적인 참혹함에 집중하고 그렇게 죽어가야만 했던 수많은 이들의 고통을 담아내는데 주력하고 있는 <로드 넘버원>은 이념을 장사로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드라마입니다.

소지섭과 김하늘, 윤계상으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이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오느냐는 중요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전쟁 드라마에 대한 환상 혹은 편견을 가진 이들로 인해 작품의 완성도와는 달리 만족할만한 시청률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로드 넘버원>은 전쟁의 참혹함이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켜 가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앞서가는 드라마로 기억되어질 듯합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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