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2018년도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방송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방송노동자도 근로시간 제한을 적용받게 됐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프리랜서 형태로 계약을 맺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방송노동 현장에서는 법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다. 주당 근로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시키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는 이른바 '특례업종'이 기존 26개에서 5개로 줄어들면서 '방송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오는 7월 1일 관련 법 적용을 앞두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법 시행에 따른 사업자들의 이해를 고려해 사업장 규모에 따라 시기별로 단계적 시행이 예고된 상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7월 1일, 50~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 5~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 1일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가 비정규직·프리랜서 형태로 계약을 맺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방송노동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관련 법 적용이 방송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탁종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소장은 외주제작사 소속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탁 소장은 10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문제는 직접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들, 흔히 제작스탭이라 불리우는 프리랜서들에 대해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사각지대 놓여져 있던 노동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 적용이)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섞인 전망을 내놨다.

탁 소장은 "노동자성이 인정돼야 근로기준법에 따른 시간외 근로시간 제한, 초과수당, 해고 등 법의 적용 받을 수 있다"며 "지금은 아예 적용이 안 되는 상황이다. 노동부를 찾아가도 프리랜서 계약이라고 하면 조사하지도 않고 돌아가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직장갑질 119'의 한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비정규직 방송노동자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특례업종에서 방송이 빠지게 되면 회사는 이번 기회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명확하게 나누려 할 수 있다"며 "방송사들은 주 52시간 내로 근로시간을 조정하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거나 업무량을 줄여야 한다. 기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행 업무가 줄면서 고용불안에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단계적 시행에 따라 외주제작 비율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방송사는 정규직 직원의 업무량 또는 근로시간을 줄이고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방송사가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채용이 아닌 법 적용시기가 늦은 외주제작 비율을 높이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직장갑질119'관계자는 이미 도급·하도급 계약이 많은 방송제작 노동환경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방송사의 외주제작 비율이 늘어나면서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외주제작 비율은 방송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계자는 "예를 들어 A라는 방송사가 있으면 B라는 외주제작사에 업무를 도급을 준다. 외주제작사 B는 촬영전문 업체 C에게 또 하도급을 준다. 하도급업체 C는 ㄱ이라는 촬영감독과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다. 중첩적인 구조"라며 "(근로기준법 적용 후)최악의 경우 고용구조나 계약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근로자성이 부정될만한 노동자들을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탁종열 소장은 관련 법 적용에 있어 노동자 인원수에 따른 사업장 규모를 획정하는 것에도 방송제작 여건상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탁 소장은 "보통 드라마의 경우 한 드라마당 100명 정도가 일한다고 보면 (외주)업체는 12~13개가 들어간다"며 "그러면 근로 인원에 따른 사업장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100여명이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한다고 볼 수 없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50인 미만 영세사업자가 대부분인 외주제작사 또는 개인 프리랜서들이 방송사의 근로기준법 적용 시기를 늦추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정부에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5개 부처는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근로기준법 개정 여파에 따른 대책은 포함돼있지 않다. 주무부처인 방통위는 오는 6월 방송업계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준수 여부를 방송사 재허가 심사 때 검토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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