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외유 논란’과 관련해 언론의 프레임이 ‘여비서’로 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김기식 외유 논란과 관련해 일간지, 종합편성채널, 인터넷 매체 등 모든 언론사에서 ‘여비서’라는 본질과 무관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두고 언론의 무자비한 폭력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4월 5일 자 조선일보 보도 재구성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외유 논란을 최초로 보도한 언론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5일 <자신이 비판했던 피감기관 돈으로 9박 10일 해외 시찰> 보도를 통해 김기식 원장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를 나갔다는 문제 제기는 타당했다. 그러나 해당 기사의 부제목은 “대외경제硏서 3000만 원 부담, 여비서와 연구원 직원 4명 동행”였다. 문제 제기를 넘어서는 '여비서' 프레임이다.

같은 날 오후 인터넷에 출고된 <김기식, 여비서 동반 해외출장...정치권 "이런 경우 못봤다"> 보도에선 ‘여비서’가 해외 출장에 동행했다는 관계자의 멘트와 함께 비서의 현 직장까지 공개했다. 특히 해당 기사는 해시태그(#과 연관 단어를 적는 칸)로 #여비서와 출장 #안희정 비서와 출장 등을 담았다.

조선일보 기사 목록. # 옆에 자극적인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조선일보의 다른 보도에서도 자극적인 해시태그가 사용됐다. 기사에 사용된 해시태그는 #여비서 고속 승진 #수상한 여비서 #여행 후 고속 승진 #여비서와 해외여행 #金연구소 연구원 #김기식 여비서 #안희정 해외출장 등이다.

개인 신상까지 공개했으며 나아가 안희정 전 지사의 문제와 연결을 시도했다. 이를 두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정무비서 성폭력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측면에서 악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해시태그는 조선일보의 ‘여비서’ 부각이 명백히 의도를 담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비판했다.

종편도 마찬가지였다. TV조선은 5일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 사찰…여비서 동행>이라는 보도에서 ‘여비서’의 존재를 부각했다. 특히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여비서와 함께 해외 시찰을 다녀온 건…” “김 원장과 수행 여비서가 열흘 동안 쓴 예산만 항공료와 숙박비를 포함해 모두 3천만 원에 달합니다”라고 여비서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채널A도 5일 <거절한 의원도 있는데…“여비서까지 대동 이례적”> 보도를 통해 “동료 의원도 없는 해외 시찰에 여성 비서관까지 대동하고 간 것도 매우 이례적”이라는 정치권 반응을 소개했다. 민언련은 “조선일보, TV조선, 채널A처럼 본질과 무관하게 ‘여비서와 동행출장’을 부각하며 사안을 선정적 가십으로 몰아가는 것은 전형적 옐로우 저널리즘 행태”라며 “이러한 보도는 동행한 보좌진을 추문에 몰아넣는 행태이며, 인권침해의 소지마저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모든 언론이 ‘여비서’ 프레임을 무분별하게 받아썼다. 인턴에서 7급까지 초고속 승진했다는 이유로 특혜 시비까지 제기했다. 마치 해외 출장 동행과 승진이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기사 행태는 온라인매체, 일간지 등을 가리지 않았다.

김기식, 여비서를 제목으로 쓴 언론사들 (네이버 뉴스 화면 캡쳐)

▲매일신문 <김기식 여비서, 출장 뒤 9급→8개월 뒤 7급 초고속 승진 "도대체 무슨 일?"> ▲부산일보 <김기식 여비서, 인턴에서 7급까지 초고속 승진 이유> ▲YTN <김기식 여비서, 인턴에서 7급까지 '폭풍승진'?> ▲중앙일보 <“김기식 ‘황제 외유’ 동행, 여비서 아닌 인턴…이후 초고속 승진”> ▲스페셜경제 <김기식과 여비서 ‘수상한 뒷거래 있었나?’ 의혹에 해명 들어보니…> 등 일간지와 방송사, 인터넷 매체 모두 자극적인 제목을 뽑았다. ‘김기식’과 ‘여비서’가 적시된 기사는 수십 개에 이른다.

'여비서'라는 언론의 프레임은 포털 검색에도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에 ‘김기식’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김기식 여비서’ ‘여비서의 실명’ ‘김기식 인턴’ 등이 등장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서의 이름, 휴대전화번호, 사진 등 개인 신상이 공개됐다. 외모 품평과 악의적인 비난도 함께 쏟아졌다. 조선일보의 기사로 시작된 언론의 ‘여비서’ 프레임이 실제 당사자를 향한 폭력으로 행해진 것이다.

김기식과 관련된 연관검색어(네이버)

이를 두고 여의도 옆 대나무숲(국회에서 근무 중인 직원들이 페이스북 내에서 소통하는 공간)에 “여비서 프레임을 만들어야 했냐”는 지적이 나왔다. 본인을 “인턴 때부터 지금까지 남성 의원께 정책 업무 직보하고, 담당 기관·단체 방문 일정을 수행했던 여비서”라고 밝힌 글쓴이는 “인턴은 정책 하면 안 되고, 여성 보좌진은 남성 의원 수행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턴 하다가 승진하면 안 되는 거였나”며 “9급 위에 8급 자체가 없던 시절인데 9급에서 7급 간 게 어떻게 고속 승진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글쓴이는 “꼭 '여비서와 둘이'·'출장 다녀와서 고속 승진' 이런 프레임 만드셔야 했냐”며 “그동안 여성 보좌진을, 인턴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셨는지 잘 알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총장은 “상식적인 언론이라면 ‘여비서’라는 단어를 다 지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경 사무총장은 “언론 기사에서 비서의 성별을 넣는 건 인권침해”라며 “여자라서 무슨 일이 있지 않았냐는 호기심에 노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의 폭력이나 다름없다. 모든 언론이 해당 단어를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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