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의 연기가 전쟁보다 더 치열하고, 더 사나워지고 있다. 최민수로서는 아주 오랜만의 드라마 출연이었던 SBS 아버지의 집에서 보였던 한없이 허무한 눈빛에서 이제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드라마가 표현하지 못하는 더 깊은 의미들을 눈빛 하나만으로 담아내고 있다.

로드넘버원 3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탱크 전투신은 아마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이를 두고 호불호가 다소 갈리기는 하지만 적어도 정직하려고 애쓴 흔적은 보였다는 점에서 일단은 칭찬하고 싶다. 이겼지만 상당히 많은 희생과 더불어 잘못 던진 포탄을 밟아 선두가 멈춰 서게 되고, 그 틈을 탄 소지섭 등의 영웅적인 활약을 덧붙였다.

탱크를 처치하기 위해 중대장 최민수는 분대장 소지섭에게 말한다. “장우야, 준비됐냐, 죽을 준비 됐냐”며 탱크로 달려든다. 최민수는 명령만 하는 지휘자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위험에 몸을 던지는 전우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것들이 최민수가 애초에 후퇴하는 본대에 뒤처져서 주민들을 돌보겠다는 결정이 부대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 동시에 최민수는 중대장이면서 부대원들의 큰형 같은 존재이다. 이 점이 로드넘버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설정이다. 부대원들의 희생을 부하가 아닌 친동생처럼 대하는 최민수의 모습을 통해서 한국전쟁의 모든 희생에 대한 좀 더 각별한 아픔을 부여할 수 있다. 밀리기만 하는 전쟁 초기에 총알받이 소대장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런 전쟁 소모품이 아닌 사람을 잃는 아픔을 특히 최민수를 통해서 전달받을 수 있다.

탱크 전투신을 끝내고 후퇴하던 중 배를 구하러간 손창민을 기다리는 중 윤계상은 최민수에게 어땋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윤계상은 소대장이긴 해도 이번에 처음 사람을 죽여본 전쟁 초보에 불과한데 거기에 김하늘과의 문제까지 겹쳐 소위 인텔리적 회의와 갈등에 빠져 있다. 최민수는 마치 뱃속 내장에서 긁어내는 듯한 목소리로 윤계상에게 말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어떻게든 살아라, 세월이 답을 줄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지 않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이 대사의 감동을 문자로 옮기기는 대단히 부족하다. 마치 전쟁을 겪어본 사람인 것 같은 절실함이 묻어나는 그 감정과 호흡은 휴머니스트가 아닌 전쟁의 한 가운데에 선 모든 군인들이 본능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전쟁터의 일개 군인에게 전쟁은 승리나 패배가 아니라 생존이냐 죽음이냐가 아니겠는가.

이 대사는 공교롭게도 윤계상이 소지섭에게도 전해진다. 물론 최민수가 했던 의미와 감정과는 다른 뉘앙스지만 그 변형된 의미가 결국 로드넘버원을 끌고 갈 두 남자의 긴장감을 표현해주었다. 그것은 총알받이 소대장이라 불리는 단기 장교교육대로 출발하는 소지섭에게 하는 말이라 아이러니한 면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소지섭이 장교교육을 받게 된 동기가 윤계상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준비가 되지 않은 국군은 무기도 그렇지만 군인수도 부족했다. 후퇴과정에 당연히 징집령을 통해 마구잡이 충원을 할 때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은 시골 농사꾼을 놓아주려고 한 소지섭이 윤계상에게 발각됐다.

소지섭은 앞서 탱크 전투신 이후 후퇴할 때도 손창민과 달리 부상당한 전우를 챙겨야 한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온 징집병 박달봉에게 돈까지 쥐어주면서 도망치라고 했다. 아직 미약하지만 소지섭의 행동은 로드넘버원의 주연으로서 앞으로 최민수의 휴머니티를 이어받을 암시를 담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최민수와 소지섭은 강렬한 눈빛에서는 참 많이 닮았다.

지금 최민수가 보이는 인간애와 전쟁에 대한 처절한 태도는 소지섭이 이어갈 미래적 장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전쟁에서 휴머니즘이란 사치일 수도 있다. 최민수의 말처럼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인 상황 속에 휴머니즘은 불편한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최민수 그리고 소지섭이 그것이 불편하지만 꼭 지켜야 할 당위라는 것을 어떻게 설득하냐가 문제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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