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1일 한화 김승연 회장은 보복폭행 혐의 등에 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명령 200시간을 명령받았다. 1심에서의 실형 1년 6개월에서 크게 깎인 것이었다.

재판부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형사 처벌을 받아 마땅하나, “자신의 아들이 폭행당하자 부정이 앞선 나머지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명이었다. 보복폭행이 치밀하게 계획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부(大父). ‘아버지의 이름’은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이었나? 그 지독한 가부장주의 정념에 혼이 뻑 나갔다. 환자복 입고 휠체어에 앉은 채 회장은 유유히 감옥을 빠져나와 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입을 굳게 다문, 여유롭고 태연한 가진 자의 자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가 ‘한국 재벌총수들은 곤란할 때면 늘 휠체어를 탄다’고 비꼬았다.

▲ 경향 2007년 9월12일자 10면.
국내에서도 네티즌들의 거센 비판이 쏟아졌지만, 주류 매체들은 늘 그러했듯이 침묵했다. 비판의 사설 하나 없었다. 달랑 한겨레의 정혜신 칼럼이 오만한 판사들의 나라를 고발했다. 오히려 한화측의 목소리를 담는데 적극적이었다. 경향신문은 ‘한화 해외사업 다시 속도…김승연 회장 집유 안도’라며 시민이 아닌 회사의 동정을 보도했다. 한겨레 또한 ‘한화 글로벌 경영 재가동’이라는 제목의 뉴스를 바로 실었다. YTN이 ‘잇단 사회봉사 명령…재벌 회장만 선처?’라고 시민의 냉소를 옮기는 게 고작이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회장은 법원뿐 만아니라 신문, 방송으로부터도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는 사회봉사명령이 비리․범법 재벌총수들을 배려한 ‘제3의 길’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기대를 표시했다.

김 회장의 한화 대표이사직 사퇴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요양’을 위해 그는 바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심신의 안정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의사의 권유”를 따른 것이란다. 하하하! 참 많이 들어 본 말이다. 그렇지. 우리의 권력은 이렇게 의사 앞에서 착하고, 또 의사는 그렇게 환자들에게 친절하지. 회장 부재중에도 한화가 나섰다. 저소득층 아동과 여성, 노인을 위한 ‘사회봉사단’을 발족시켰고, ‘전사적 나눔경영’을 실시하겠다는 소식이 신문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미지 쇄신의 홍보 캠페인이 시작된 것이다.

▲ 조선일보 12월21일자 10면.
동아일보가 맞장구를 쳤다. ‘여론 무마용’에 그치지 말고, “‘내 기업’이 ‘우리 기업’이라는 인식을 종업원과 국민에게 뿌리 내리려는 진정성을 보여 줘야 한다”고 점잖게 훈수를 두었다. “진정으로 사회와 국민의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재벌권력의 비리가 발생하고 재벌대표가 ‘사죄’할 때마다 늘 뒷북치는 동어반복적이어서 무의미해진 훈계.

그러면서 한화는 창립 55주년을 맞이했고, 그 와중에 김 회장은 신병 치료를 사유로 사회봉사명령을 3개월 연기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12월 15일 회장님은 출국하신지 3개월 만에 귀국하신다. 재연기하지 않고, 사회봉사명령 마감일인 17일 이전에 귀국해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행 이후 잠깐의 휴식과 준비 기간을 거치고, 내년 3월쯤 경영에 복귀할 것이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회장님은 자신의 세 아들에게 (주)한화 지분 300만주를 증여한다.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지분을 넘기는 과정이라 했다. 세금만 1000억원. 12월 17일자 머니투데이는 기존에 증여받은 지분까지 합쳐 군복무 중이고 대학․고교에서 학업 중인 세 아들이 종가 기준 각각 3255억원, 1384억원, 1384억 원의 부자로 탄생했음을 알린다. 18세 막내를 1000억대 자산가로 만드는 끝없는 부정.

회장님의 12월 20일 꽃동네 사회봉사는 바로 이 귀국 후 첫 행보로서의 ‘파격 증여’와 함께 이루어졌다. 동아, 조선, 중앙 등 메이저들이 일제히 회장님의 꽃동네 행차를 떠들썩하게 알린다. 봉사란 원래 아무도 몰래 조용히 하는 것 아닌가? SBS까지 나서 요란스레 ‘첫 사회봉사’ 이행 예정을 선전한다. 20일에는 산타 모자를 쓴 치매 노인에게 죽을 떠먹이는 회장의 사진이 인터넷을 도배한다. 헤럴드 경제가 ‘꽃동네를 적시는 참회의 구슬땀’이라고 극찬한다. KBS <뉴스9>는 “다소 어색하지만 죽을 한 숟가락씩 일일이 입에 넣어주는 손길에는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라고 했다. 감당은커녕, 이 소름끼치는 닭살. 대체 세상은, 법원은, 텔레비전은, 기자는 어찌 이리 관대하고 친절하고 착한가? 순진한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이러는 것인가?

그때 재판부는 노자의 말을 인용했었지. “피고인은 그 동안 재력으로 사회에 공헌한 바가 크다 해도 재벌그룹 회장으로서의 과도한 특권의식을 버리고 사회공동체 일원으로서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을 부드럽게 해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지덕과 재기를 감추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의 자세를 갖춰 복지시설 및 단체 봉사활동, 대민지원 봉사활동”을 하라고. 이런 명석한 판단력 탓에 회장은 감옥 대신 봉사의 길에 나설 수 있게 되었고, 미디어는 그의 명예를 최종적으로 회복시켜주었다. 비정한 아버지들은 오늘도 먹고 살기 힘들어 이리저리 몸을 팔고, 인자한 대부는 이렇게 넉넉한 후원을 받으며 권좌복귀를 꿈꾸신다. 사태를 지켜보는 부모들의 심경, 자식들의 심정을 헤아리기 만무한 신문․방송이기에 재벌 가부장의 옆을 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지. 새로 선발된 정치 가부장에 보이는 아양과 충성도 이런 추태와 뭣이 다르겠나. 권력과 매체의 오랜 짝짜꿍 놀이관계.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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