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세종연구소가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연구위원이 정부 비판 성향을 이유로 청와대 등의 압력을 받아 사직했다는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반박에 나섰다. 앞서 중앙일보는 4, 5일 양일에 걸쳐 문재인 정부가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인 학자들을 압박해 사직시키고, 국책연구기관과 국책 TV 방송 등에 언론 관련 지침을 내리는 등의 압력을 가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앙일보는 4일자 1면 <'문 코드' 압박에 외교안보 박사들 짐싼다> 기사를 시작으로 24면 <대북정책 비판 목소리 막나…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5일자 <비판의 목소리도 존중해야 대북정책 성공한다> 사설, <스트라우브 논란 단상> 칼럼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비판을 제기했다.

▲5일자 중앙일보 <분수대> 칼럼.

4일 중앙일보는 "대표적 지한파 학자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박사는 지난달 하순 1년여 몸담았던 세종연구소를 떠났다"면서 "연구소 핵심 관계자는 3일 '문재인 정부의 대북 및 외교안보 정책에 비판적 성향을 보였다는 이유로 연구소 측에 청와대 등으로부터 압박이 심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세종연구소 측은 "청와대 등으로부터 압박을 받아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세종-LS 연구위원이 사직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닌 오보"라면서 "스트라우브 씨의 계약기간은 2017년 3월 1일부터 2018년 2월 28일까지였고, 한시적 1년간 계약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5일 중앙일보는 세종연구소 측의 해명에 대해 재반박했다. 중앙일보는 <스트라우브 논란 단상> 칼럼에서 "실제 상황은 좀 더 미묘하다"면서 "그가 올 당시를 아는 인사는 '1년 계약이지만 1년을 연장하는 1+1, 즉 2년으로 약속했고 펀드도 확보한 상태였다. 이는 연구소 사람들도 대충 아는 내용'이라고 전했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4일자 기사를 작성했던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는 "세종연구소가 계약 내용을 모두 공개하면 된다"면서 "스트라우브의 경우 박준우 전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자신의 지인인 LS그룹 회장과 이야기를 해서 '세종-LS 펠로우십'을 체결했고 이후 스트라우브와 '1+1'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스트라우브는 3월에도 연구소를 다녔고 재임용돼서 기쁘다고 했는데 갑자기 나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종연구소 측은 다시 반박에 나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스트라우브의 계약 연장이 중단된 것은 세종연구소 지도부의 교체와 관련된 것이지 '청와대 등의 압력'과는 무관한 것"이라면서 "저와 세종연구소가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 부분인데 중앙일보가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부적절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어 세종연구소는 현재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성장 실장은 "스트라우브가 세종연구소에 '세종-LS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박준우 전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박 전 이사장은 스트라우브에게 LS의 후원을 받아 1년 단위로 두 차례 계약을 진행해 총 2년 간 세종연구소에 근무하는 것을 제안했고 스트라우브가 이를 수락해 한국에 오게 됐다"고 전했다.

정성장 실장은 "그러나 스트라우브가 연구소와 2차 계약을 체결하기 전 박준우 전 이사장의 임기가 만료돼 퇴임하게 됐고, 신임 이사장은 스트라우브와의 계약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추가 계약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정부와 청와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당연히 언론이 앞서서 따지고 비판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정부와 청와대가 자신의 코드에 맞지 않는다고 언론이 사실을 왜곡해가면서 비판한다면 이는 명백한 언론자유의 남용이며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외교안보 분야 대표 싱크탱크 중 하나로 꼽히는 세종연구소는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재단이란 이름으로 설립됐다. 1984년 문교부에서 외무부로 소관 부처를 이관했고, 1986년 평화안보연구소를 개소했다. 이후 1988년 일해연구소에서 세종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했다.

문제가 된 시기의 이사장은 박준우 전 이사장과 백종천 이사장이다. 박 전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고, 백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한편 세종연구소의 연구위원 재계약 잡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10월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해고에 학자 270명이 성명 낸 까닭은> 기사를 통해 당시 연구위원 재계약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지난해 7월 세종연구소가 지난 23년간 연구소에서 근무한 정치분야 수석연구위원 강명세 박사에게 연구 실적 부족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강 박사가 부당해고라고 맞섰다는 내용이다.

강명세 박사는 "이사장이 박근혜 정부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 연구를 하는 연구원들을 질책할 떄마다 내가 공개적으로 반발하곤 했는데, 그런 부분이 실제 해고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강 박사는 지난해 9월 법원에 재계약 심사 불합격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세종연구소 측은 강 박사를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당시 정치·사회학계 학자 270여명이 "노동과 복지, 정당과 선거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성과를 남긴 대표 정치학자인 강명세 박사가 해고 통보를 받은 데 대해 양식 있는 학자들이 공분하고 있다"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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