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올드 보이'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에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뤘던 주역들이 '마지막 월드컵'에서 제 몫을 다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을 모두 볼 수는 없었습니다. 꾸준하게 대표팀에 몸담았던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정도가 풀타임을 뛰었을 뿐 김남일, 이동국은 교체 출전으로, 안정환, 이운재는 이렇다 할 출전 기회도 잡지 못하고 아쉽게 '마지막 월드컵'을 마쳐야만 했습니다. 개인에게는 무척 영광스러운 월드컵 출전이겠지만 마지막에 투혼을 불살라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선수 개인에게는 참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테랑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들은 분명 달랐습니다. 자신의 존재감만으로도 선수들에게 든든한 큰 힘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예전에 선배들이 자신에게 베풀었던 것 이상으로 이들은 후배들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고 힘을 보태며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여기에다 그라운드에 나서는 베테랑 선수들은 뛰고 또 뛰면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덕분이었는지 후배 선수들은 투혼 정신을 발휘하며 자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려 노력했고, 마침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꿈을 이뤘습니다. 베테랑 선수들 역시 몇몇 선수들은 주인공이 되지 못했지만 후배들의 기쁨을 자신들이 직접 이뤄낸 것 같은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쾌거를 함께 나눴습니다.

하지만 16강전에서 우루과이에 안타깝게 졌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눈물을 흘리는 후배들을 다독여주고 위로해 줬습니다. 이미 이전 월드컵을 통해 산전수전 다 겪었던 선수들이었기에 누구보다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 지를 잘 알고 있었고, 베테랑 선수들은 슬픈 가운데서도 마음을 다 잡고 후배들의 마음을 추스르는데 안간힘을 썼습니다. 자칫 패배의 충격이 오래 갈 법도 했겠지만 베테랑 선수들의 격려 덕분에 23명 태극전사 모두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준비를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한 베테랑들이었기에 월드컵 경험이 일천한 후배 선수들 역시 든든한 마음으로 마음껏 자기 기량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베테랑들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후배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29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안정환은 "최고의 후배들과 함께 월드컵을 치러 행복했다"면서도 "내가 좀 더 후배들에게 잘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좋은 모습을 보여 그라운드에서 팀 승리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베테랑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완벽하게 제 역할을 다 해내면서 16강 진출의 '숨은 주역'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또 그라운드에 나섰던 박지성과 이영표, 차두리 역시 매 경기마다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플레이로 제 몫을 다 해주며 일등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첫 경험으로 인한 지나친 긴장으로 오히려 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을 후배들을 위해 뛰고 또 뛰고 열심히 격려해준 '옛 영웅' 베테랑들의 희생정신이야말로 이번 월드컵에서 유독 빛났던, 그래서 16강이 더욱 위대해 보이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오합지졸'과 다름없던 '우승후보' 잉글랜드, 프랑스보다도 더 위대한 팀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베테랑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운재, 이영표 등 일부 선수들은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또 다른 베테랑 선수들 역시 내년 1월에 있을 아시안컵을 전후로 대표팀을 은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다음 4년 뒤, 브라질에서 이들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을 확률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지막과 다름없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조연으로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 해내며 '아름다운 마무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베테랑들의 든든한 모습은 2002년 쾌거의 주역으로서 보였던 것만큼이나 대단히 빛나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이번 남아공에서 보여준 이들의 희생정신을 발판삼아 바람대로 후배들도 더 좋은 선수들이 되고, 팀 정신이 돋보이는 팀이 만들어져서 한국 축구가 더 큰 팀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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