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히트 드라마는 의외의 스타를 탄생시킨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스타가 태어나지 않으면 진정한 히트 드라마라고 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선덕여왕의 고현정과 김남길, 추노의 성동일, 김지석, 한정수 등은 최근 히트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새로이 태어난 스타들이다. 그 반대 경우도 있는데 굳이 이 지면을 통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반복할 필요는 없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이렇게 태어나는 스타 캐릭터들은 아주 짧은 분량만으로도 강한 임팩트를 줘서 오히려 애간장을 태우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캐스팅의 경제원리에 충실한 최소의 투자로 최대 효과를 거두는 효자들이다. 동이에도 그런 인물들이 있다.

단연 인현왕후 박하선과 한내관 정선일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박하선의 경우는 시청자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도 한 장면씩은 꼭 넣는 인상을 줄 정도로 동이의 최대 수혜자로 손꼽힌다. 그와 반면 초반에는 그리 중요한 역할도 아니었고 대사조차 극히 적은 한내관 정선일은 또 다른 측면에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어서 동이를 즐겨보는 시청자에게 박하선 못지않은 기대감을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극중에서 시청자의 의견 혹은 바람을 대변한다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숙종의 최측근에서 완전히 쑥맥으로 설정된 숙종에게 잊을만하면 동이와의 로맨스를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정선일이 최초로 시청자에게 존재감을 폭발시킨 순간은 동이팬들에게 유명한 ‘침소로 들일까요?“라는 대사 한마디였다.

그 후로도 상선 한내관은 지속적으로 숙종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게 자극하는 말을 한두 마디씩 던져오고 있다. 급기야 오랜 이별 끝에 뜨거운 포옹을 하고도 도무지 승은을 생각지 않는 퓨어 숙종에게 보다 못한 한내관은 또 다시 둘의 관계를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한다. 다만 문제는 작가가 아직은 이 둘의 상렬지사를 원치 않는 것 같다. 하긴 누가 작가라도 지연작전을 쓸 수밖에 없기도 하다.

30회에 동이는 비로소 궁으로 돌아간다. 그것도 승은상궁이 입는 당의를 곱게 차려입고 가마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그러나 그것은 소위 공갈승은이었다. 동이를 어떻게든 해치려는 남인들이 장희빈 음독사건 혐의로 잡아간 정상궁과 정임을 풀어주고 반대급부로 동이를 내놓으라고 압박하자 숙종은 남인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중신들에게 승은을 입힌 것처럼 말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그러고도 숙종은 동이를 품으려고 하지 않는다. 공갈승은을 내리는 김에 "침소로 들이면 될 일을 질질 끈다. 그런 숙종을 고요히 나무라는 역할을 상선이 해준다. 이때의 대화를 잠시 옮겨본다.

숙종 : 아무래도 동이 그 녀석은 내속을 태우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곁에 있으나 없으나 이리 애간장을 녹이니 말이야.

상선 : 그래도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으시지 않으시옵니까?

숙종 : 뭐?

상선 : (아빠미소 혹은 망상미소)<= 이 부분은 필자가 넣은 지문.

숙종 : 허 자네 참 정말 별소리를 다하는구먼!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지만 상선은 아랑곳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이번에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전보다는 아무래도 마음이 좀 동한 것 같다. 그러자 상선은 이어서

상선 : 어찌하시겠사옵니까 전하, 사가로 나갈 차비를 할까요?

하고 말뿐인 숙종을 동이에게 가라고 부추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대화를 듣자하면 마치 작가와 시청자가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다. 숙종은 작가의 시점에서 흥밋거리를 더 끌고 싶어 하고, 상선은 시청자 입장에서 어서 두 사람의 달콤한 장면에 목말라 있는 것만 같다. 어쨌든 간에 결국 동이는 숙종의 후궁이 되는 것은 변함없을 테지만 이 숙종과 상선의 실랑이가 흥미롭고, 시청자는 당연히 상선을 응원하게 된다.

아쉽게도 이번에도 숙종이 아니 작가의 버티기가 이겼다. 공갈승은으로 남인들을 속이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다음 주 예고를 보면 숙종이 천수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제 분위기가 임박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 반면 인현왕후가 동이에게 숙종의 여자가 되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이제는 동이가 주저하고 있다. 아비 최효원이 감계수장이었다는 것이 동이를 주저케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갈등이 의미하는 것은 반전의 예고일테니 동숙의 상렬지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한편 예고가 낚시가 아니라면 동이가 당의를 벗어놓고 또 사라진 듯한데, 동숙커플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고비에 상선은 또 어떤 말로 숙종의 마음을 동이에게로 이끌어줄지 궁금해진다. 그런 상선을 보면 우결의 연애 캐스터들을 보는 듯한 착각도 가끔 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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