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우승을 노린 잉글랜드가 또 한 번 불운하게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승 청부사'로 불렸던 이탈리아 출신 파비오 카펠로 잉글랜드 감독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습니다.

잉글랜드는 27일 밤(한국시각), 남아공 블룸폰테인에서 열린 라이벌 독일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서 토머스 뮐러에게 2골을 내주는 등 일방적으로 골을 허용하면서 1-4로 대패, 16강에서 탈락하는 망신을 당했습니다. 조별 예선부터 좋지 않은 경기력으로 어렵게 16강에 오른 잉글랜드는 다듬어지지 않은 조직력에 좀처럼 터지지 않는 공격력, 여기에 오심과 '골대 저주' 등 불운까지 겹치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완패한 뒤 카펠로 감독은 쓸쓸한 패장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고개숙인 카펠로 감독 ⓒ국제축구연맹
당초 잉글랜드는 이번 월드컵을 우승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맡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끈 파비오 카펠로를 지난 2008년에 데려왔습니다. 카펠로에 대한 잉글랜드 축구계의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16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모두 9번의 리그 우승, 1번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궈내는 등 우승제조기로서 명성을 누려왔기 때문입니다. 유로2008 예선 탈락으로 자존심이 있는 대로 구겨진 상태에서 카펠로는 잉글랜드를 구할 '유일한 구원투수'로 여겨졌습니다.

과정은 좋았습니다. 잉글랜드는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강력한 공격력과 조직력을 앞세워 최근에 치렀던 예선 가운데 가장 손쉽게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특히 4-4-2, 4-3-1-2 포메이션을 적절히 활용하며 팀 능력을 극대화해 가장 안정적인 팀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승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져만 갔고, 본선 조추첨 결과 역시 시드 배정국 가운데 가장 좋은 조편성을 받으며 부푼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선에 들어서 잉글랜드는 강점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문제점만 드러내면서 강팀의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팀 공격의 핵 웨인 루니는 전혀 제 몫을 다 하지 못했고, 미드필더 조직력은 유기적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대회 도중, 전(前) 주장 존 테리가 카펠로 감독의 지도력에 맹비난을 퍼붓는 등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흘러간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팀이 팀답지 못하다보니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없었고, 카펠로 감독은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며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라이벌과의 경기에서 완패를 당하며 우승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카펠로 감독 입장에서는 이번 월드컵이 개인 첫 월드컵이었기에 나름대로 잘 하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보였어야 할 지도력을 본선에서 보여주지 못하면서 고개를 떨궈야만 했습니다. 영국 언론은 일제히 카펠로 감독의 용병술, 지도력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고, 팬들 역시 '카펠로로는 잉글랜드 축구의 미래가 없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월드컵 직전 2년 재계약을 상황에서 카펠로 감독은 '사임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변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켜줄 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남아공에서 고개 숙인 우승청부사. 혹 감독직을 유지한다면 앞으로 펼쳐질 2년 감독 기간 동안 어떤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세우는데 성공할 지 흥미롭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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