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4월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첫날부터 파행됐다. 특히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요청한 추경안의 처리에 앞서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방송법 개정이 4월 임시국회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당초 2일 오후 2시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회기 결정의 건'과 '대정부질문을 위한 출석 요구의 건'등의 안건을 상정해 의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열린 원내대표 회동에서 방송법, 공수처 설치 등의 안건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결국 본회의는 무산됐다.

▲2일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본회의에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원들이 참석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본회의는 양당의 불참으로 결국 열리지 않았다. (연합뉴스)

3일 바른미래당은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개헌 논의를 제외한 모든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바른미래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권의 언론장악을 방지하기 위한 방송법 개정안 발의까지 했던 민주당이 어제 국회의장 원내대표 회동에서 느닷없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을 처리해야 방송법을 처리해줄 수 있다고 나왔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것은 오만함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야당일 때는 정권의 언론장악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더니 여당이 됐다고 발로 걷어차도 되느냐"면서 "개헌·민생·개혁 입법의 결실을 맺는 4월 국회를 만드느냐는 민주당의 태도 변화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김삼화 원내대변인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월 국회와 관련해 민주당이 방송장악 금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본회의와 상임위, 추경안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도 방송법 처리 요구에 동참했다. 자유한국당은 장제원 수석대변인 논평에서 "민주당이 발목잡고 있는 방송법은 현재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박홍근 의원의 대표발의로 민주당 의원 전원을 포함해 162명의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법안"이라면서 "민주당이 야당 시절 스스로 '중립적 인사를 사장에 임명해 정권과 무관하게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앞장선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이런 방송법을 지금 와서 발목잡는 것을 보니 과연 손아귀에 움켜쥔 공영방송의 인사권과 방송장악 놀음의 달콤함에 빠져 기억상실증에 걸린 모양"이라면서 "뿐만 아니라 사개특위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공수처 법안과 방송법을 바꾸자니 이들의 권력집착증은 중증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박홍근 원내수석이 대표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일명 '언론장악방지법'으로 불리는 법안으로 언론의 독립성, 중립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로 마련됐다. 당시 이 법안에는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소속 의원 162명이 서명했다.

현행 KBS 이사회는 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4명으로 구성돼 있고, MBC 사장을 추천하는 방송문화진흥회는 대통령·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이뤄져 있어, 공영방송 사장에 정부여당에 치우친 인사가 임명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언론장악방지법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이다.

이 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 수를 13명으로 늘려 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6명으로 하고, 사장 추천시 2/3 이상의 찬성을 받는 특별다수제 도입이 골자다. 또한 공영방송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해 투명성을 강화하고, 사용자·종사자 동수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함께 담겨 있다.

그러나 야당이 제기한 방송법 공세에 민주당은 황당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속적으로 방송법 개정을 당론으로 하고 있고, 앞선 논의과정에서 지난 2016년부터 지속적으로 법안 논의를 요구해왔으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번번히 막혔기 때문이다. 현재는 과방위 방송소위 구성 문제로 상임위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또한 자유한국당의 경우에는 사용자·종사자 동수 편성위원회 구성에 아직까지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승동 KBS 사장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과 연계된 전략적 정치공세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양 후보자를 부적격자로 규정하고 사장 후보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야당의 정치공세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장은 "4월 임시국회가 시작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면서 "자유한국당은 본회의가 예정돼있던 시간에 KBS 사장 후보자 규탄대회를 열었고,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방송법 개정 없이 4월 국회를 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이제는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으로 인한 국회 파행이 도대체 몇 번째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라면서 "상임위에서 문제 하나만 생겨도 국회 전체를 중단시키는 자유한국당의 습관적 보이콧은 매우 유감스럽다. 여야 간에 차이를 토론과 협상을 통해서 합의점을 찾아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국회를 파행시키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양승동 KBS 사장 후보자 임명저지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미 본회의 안건을 다 합의했는데, 갑자기 원내수석 회동에서 방송법 처리를 들고 나왔다"면서 "우리가 야당일 때 신속처리안건 지정도 하고 끊임없이 논의를 요구해왔는데, 응하지 않았지 않느냐. 지금도 상임위에서 방송소위 구성 때문에 논의를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방송법 개정안 논의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추혜선 안, 강효상 안, 최근에는 방송미래발전위원회 안까지 나왔고, 그래서 기존 안까지 포함해서 논의해보자고 얘기가 된 사안인데, 그걸 정권이 바뀌었다고 안 해준다고 하는 것에 당황스럽다"면서 "갑작스럽게 4월 안에 처리하자면서 안 그러면 국회를 열지 않겠다는 건 정치공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방송미래발전위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제작 자율성 제고를 위한 방송법 개정안을 내놨다. 민주당은 방송미래발전위 안을 포함해 방송법 개정을 논의하자며 양해를 구해왔다. 방송미래발전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미래방송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다만 방송미래발전위 방송법 개정안 도출 과정이 다소 늦어진 것은 사실이다. 당초 방송미래발전위는 지금보다 더 빠른 시점에 방송법 개정안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지난해 11월 국회 법안소위에서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은 "12월 말까지였는데 최대한 당겨서 12월 15일까지 (방통위 방송법안을) 내보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근거로 과방위 여야는 1월 방송법 공청회를 예정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방통위는 12월 15일에 과방위 행정실에 3장 짜리 보고서만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당시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원래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안을 내기로 했었다"고 해명했다. 고 위원이 말한 시점보다도 2주 이상 늦어진 시점에 나오긴 했지만, 어찌됐든 방송미래발전위는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안을 도출해낸 상태다. 방통위는 방송미래발전위 안을 면밀히 살펴 공식적인 정부안을 국회에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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