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강의를 하다보면 주요 취재 절차 등을 다루게 되는데,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엠바고(embargo)’, 즉 보도유예이다. 일반적으로 엠바고는 외교나 안보상의 이유로 특정 시점 이후까지 기사화를 유예하는 일종의 신사협정이며, 근거로는 보충취재, 조건부, 공공이익, 관례적 사유 등이 있다. 종종 과학 논문의 결과 등에 대해서 저널의 발행보다 먼저 내지 말아달라는 조건부 엠바고도 있지만, 대체로 범죄 용의자 추적을 위한 비밀유지와 같은 공익이나 중요한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보도를 연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엠바고가 정보원과 기자단 사이의 합의 형태로 법적 강제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종종 언론은 엠바고를 깨고 단독보도를 해 특종 아닌 특종을 하기도 한다. 물론 신사협정 파기에 따른 출입처 제한 조치 등은 감내할 부분이기도 하다.

원양에서 해적에 의한 선박의 피랍 사건의 경우 일반적으로 꽤나 긴 기간 엠바고가 요청된다. 대체로 엠바고를 요청하는 주체는 외교부와 국방부인데, 협상에서 해적들에게 국내 분위기나 관련 정보를 전달하면 협상에 난항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 범죄사건의 엠바고와 마찬가지로 해적들이 언론 정보를 이용해서 행동반경을 조정하면 군사작전 수행도 어렵고, 인질의 안전도 보장하기 어렵다. 다만 이러한 엠바고 요청이 언론에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피랍과 관련된 정보가 매스미디어 등에 유포되지 않은 상황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해외 언론들이 이 문제를 다루고, 현지에서도 이미 이슈가 되었는데 국내에서만 보도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가나 해역의 마린711호 피랍 사건의 경우에도 이미 현지 언론에 보도되었고, 최근까지 가나 지역에서 연구를 했던 국제관계학 연구자에 의해서 소셜미디어로 전파된 바가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그간 저널리즘을 연구하면서 처음 보는 현상이 나타났다. 언론이 정부의 엠바고 해제에 대해서 반발을 하고 나선 것이다. 앞선 언급한 것처럼 엠바고는 정보원이 요청하고 그것이 적절한지 언론이 자율적으로 파악해서 약속을 맺는 신사협정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두 정부에서는 엠바고와 오프더레코드의 남발이 언론 자유를 상당히 침해하였지만, 원론적으로 이 협정에서 요청을 수용하는 ‘갑’의 위치는 언론이 점하고 있다. 즉 정부가 엠바고를 해제했어도 언론이 해당 기사의 정보 공개 수위를 조절할 수 있고, 다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지난 정부에서는 엠바고 남발에 불만을 갖던 언론조차 지금은 정보를 공개한다고 야단을 친다. 물론 언론의 비판 지점을 모르는 바가 아니고, 공감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지금 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우리 선원의 안전이 확보가 되지도 않았는데, 군사작전 수행을 하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는 것이고, 이는 언론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언론의 양면성에 대해서 지적할 필요도 있다.

첫 번째로 지적할 부분은 ‘우리 언론이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얼마나 외교, 안보 관련 문제의 엠바고를 지켜왔는가’ 하는 점이다. 2004년, 한 지상파 언론은 탈북 국군포로의 근황과 실명까지 보도하였고 이후 후속 기사들이 쏟아진 바가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나 진행 중인 교섭 등을 감안하면 신변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보도였고, 외교부가 유감 성명까지 내기도 했다. 당시 탈북자의 한국행은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에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도 이후 외교부는 탈북자 송환 보도와 관련해서 강력한 엠바고 준수를 요청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취지들이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2년에도 언론은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3년째 머물던 국군포로 가족의 극비 입국 소식과 선양, 상하이 총영사관의 탈북자 가족의 한국행 예정을 보도하였다. 또 다른 외교정책 관련 사례를 보더라도 언론이 판단하는 국익과 공익의 무게에 따라 엠바고는 파기되기도 한다. 물론 저널리즘의 본래적 감시 기능을 생각할 때, 엠바고 파기 행위 자체만 가지고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엠바고를 파기하면서 언론이 얻은 것과 국민이 잃은 것을 저울질해보았을 때, 우리 언론의 엠바고 파기는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렵다.

두 번째로 지적할 부분은 ‘과연 이 시점에서 외교부가 국민들에게 사건을 공개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피랍 사실의 공개는 인질의 몸값을 올리거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현지에서 사건이 그들의 언어로 기사화 되었고, 현재 공개된 정보가 ‘아덴만의 여명’ 작전처럼 선박을 대상으로 한 구조작전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질의 안전에 대해선 다양한 판단이 가능하다. 본래 기름을 훔치던 해적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군 투입에 부담을 느껴 협상이 수월해 질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는 인질에 대한 감시가 강화될 수도 있다.

또 불가피한 공개라는 점을 떠나서 현 시점의 엠바고 철회는 적극적인 국민구조 노력과 투명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11년 제미니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었을 당시 우리 외교부는 엠바고를 요청한 채로 500일을 허비한 바가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기간 동안, 정부는 피랍자 가족들에게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만 전달한 채 국민보호 임무를 방기한 셈이었다. 이 사건은 외교부가 아닌 다른 출입처 기자들이 엠바고를 파기하고 보도한지 100일 만인 2012년 12월에 군사작전을 통해 해결되었다. 그런데 마린711호 사건에서는 피랍 초기에 피해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당시 제미니호 작전에 참가한 요원들까지 현장에 파견하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의 생명 보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도 있다. 엠바고 철회가 단순히 ‘우리 잘하죠?’의 홍보가 아니라, ‘제대로 하겠습니다’의 의지로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일간베스트 캡처 화면

한편 이번 사안과 관련해 오히려 우려되는 부분은 정부 내에서 중요한 외교안보 정보가 유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극우사이트 일베에는 3월 27일 오후 6시 50분경에 ‘(빨빠른ㅇㅂ) 마린711선박, 금일 가나 부근 해적에 피랍추정’이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이 글은 사건 발생 후 불과 16시간 만에 게시된 것이었다. 실제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현지에서 조차 29일부터 보도된 상황 등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정보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심지어 민간이 아닌 외교부나 국정원 등의 정부 루트에서 정보가 유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드는 지점이다. 현재 이 게시물은 일베에서 삭제된 상태여서 더욱 의심을 더하고 있다. 만일 이런 방식으로 정부의 주요 정보가 유출되고 있다면 엠바고 자체도 무의미한 조치일 수 있다.

엠바고는 간략히 공익을 위한 보도 유예이다. 결국 언젠가 드러날 뉴스인데 공익성을 위해 신속성의 뉴스가치를 양보해야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엠바고가 존재하는 한 그에 대한 협정은 지켜져야 한다. 물론 어떤 언론은 자사의 이익에 따라 엠바고를 파기하기도 하고, 어떤 언론은 양심에 따라 정부의 불합리한 행정이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엠바고를 파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은 취재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언론 입장에서 엠바고가 사라지는 것은 반가워해야 할 일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지 않음으로써 언론은 자율성을 가지고 뉴스가치를 판단할 수 있으며, 양심에 따라 우리 사회의 공적인 이익에 맞게 가공하여 보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언론에 대한 신뢰다. 그래서 엠바고가 제거된 이상적 환경을 비판하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 있다. 특히 지금처럼 세계 각국의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온갖 정보가 공유,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엠바고 철회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엠바고나 오프더레코드에 무감각하게 응했던 언론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정부 입장에서도 국민의 안전보다 홍보를 우선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본의는 차치하고라도 비판받을 맥락이 있다면 숙고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면 이후 행정에서 반영해야 한다. 게다가 상황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 홍보성 메시지는 훨씬 큰 역풍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모쪼록 정부의 발 빠른 조치를 통해 피랍된 선원들이 무사히 귀환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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