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발의한 개헌안의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시민들은 환호했다. 세상에 A/S가 안 되는 제품이 없고 심각할 경우 리콜도 하는데, 선거 때와 당선 후가 딴판인 동시에 엉망인 국회의원에 대해서 무작정 4년을 기다릴 수 없다는 의미였다. 물론 자기 보신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국회를 통과하기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울 것은 당연하다.

오래전부터 직접 민주주의의 보완재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시민사회로부터 끊이지 않았다. 특히 촛불 혁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구호처럼 반복된 대한민국 헌법1조는 은연중에 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동기와 열의를 더욱 키웠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국민의 요구를 국회가 외면하는 것은 대의기관으로서의 본분을 상실한 것이며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민의에 등을 돌린 채 민심을 배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국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에는 분노만 쌓여갈 뿐이다.

시민사회의 직접 민주주의 요구가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시민의 정치의식과 참여 의지가 모두 높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촛불 이후 등장한 한국사회의 새로운 동력이다. 촛불 이후 대선도 치렀고, 최선의 결과도 얻었다. 예전이라면 골치 아픈 정치 문제에 대해서 잠시 관심을 접을 만도 했지만, 정치와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는 식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시민들의 참여의식에 절묘하게 대응한 것이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물론 국민청원에 아무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국민청원은 부작용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순작용이 크다. 무엇보다 20만 명의 동의가 모이면 청와대가 직접 답변하겠다는 약속은 국민청원 대히트의 비결이었다. 기껏 청와대에 민원이라고 해봐야 해당부처로 이첩했다는 답변도 아니고 무시도 아닌 답답한 반응뿐이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대의기관인 국회의 태만과 언론의 마이웨이에 지친 목마른 시민들은 이심전심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국민청원을 통해 여론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그렇게 사회 이슈를 결정하는 중요한 통로로 정착한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정부와 국회가 챙기지 못한 것들, 언론이 외면한 것들도 현안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재수사하기로 한 장자연 사건과 단역배우 두 자매 자살사건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두 사건은 모두 청와대 국민청원의 답변 요건인 20만 명의 동의를 채웠다. 아직 청와대의 답변이 나오기 전이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 자체가 이미 검찰의 재수사를 유인했다. 심지어 공소시효마저 지난 사건임에도 재수사를 결정한 것은 미투 운동의 영향도 있겠지만, 사회정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에 검찰로서도 최대한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국민청원은 생각 이상으로 존재감과 의미 그리고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도 많은 곳에서 “대통령 하나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말들도 많았으나 분명 세상을 달라지고 있으며, 청와대 국민청원은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과거는 언론에서 말하는 것이 여론이었고 민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청원을 통해 민심이 직접 생성되고 확인된다. 국민청원은 참여인 동시에 소통인 것이다. 그렇게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의 업적인 동시에 대표 상징물로 자리 잡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