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어요.…우릴 어떻게 집에서 끌어냈죠? 우리를 어떻게 데리고 갔죠? 숲 언저리 큰 밭 기억이 나요…그 자들이 힘 센 사람들을 골라내 커다란 웅덩이 두 개를 파라고 했어요. 깊이. 나머지 우리는 옆에 서서 기다려야 했어요. 먼저, 어린 아이들을 웅덩이 안으로 밀어 넣더군요.…그리곤 파묻기 시작했어요.…부모들은 울부짖거나 매달리지 않았어요. 모두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서 있었죠. 왜 그랬냐고 물으실 텐가요? 나도 왜 그랬는지 나중에 많이 생각해 봤어요.…늑대가 사람을 덮칠 때, 당신이라도 그 늑대한테 말을 하려 들거나 목숨 살려 달라 애걸하지 않겠죠? 혹은, 커다란 야생 곰이 당신을 쫓아온다면…군인들이 웅덩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낄낄 웃었어요. 사탕을 던져주기도 하더군요. 함께 온 경찰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어요.…그들의 주머니에는 손목시계가 가득 들어 있었죠.…그 자들이 얘들을 산 채로 묻어 버렸어요.…그리곤 남은 우리 보고 다른 웅덩이에 들어가라 하더군요. 엄마와 아버지, 어린 누이동생 그리고 나.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우리 순서가 된 겁니다.…대장인 자가 엄마 보고 “당신은 살려 주겠소”하며 나오라 손짓하더군요. 아빠가 외쳤어요. “뛰어 달아나오!” 그런데 엄마가 아빠에게 매달려요. 나를 와락 끌어안더군요. “저도 같이 있을 거예요.” 우리 모두 엄마를 떼놓으려 애쓰며, 제발 가라고 부탁했어요.…그런데 엄마가 우리보다 먼저 웅덩이에 훌쩍 뛰어 내렸어요.…그것밖에 나는 기억하지 못해요.

『Secondhand Time- An Oral History of the Fall of the Soviet Union』 표지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1985년 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로 알려진 동유럽 벨라루스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한 그녀는 2013년 소비에트의 마지막에 관한 빼어난 구술사, 『Secondhand Time』을 내놓는다. 우리말로 바꾸면, ‘전해 들은 시간’ 정도가 되겠다.

위 글은, 그 책에 나오는 ‘불길의 잔혹함과 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제목을 단 챕터에서 옮긴 것이다. 소련체제의 해체를 지켜보는 어떤 나이든 유태인 공산주의자 퇴역 군인이, 자신은 어떻게 해서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너무나 생생한 장면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가져와 봤다.

다시 4월 3일을 맞아, 4.3의 70년을 새롭게 맞이해, 멀리서지만 나는 이렇게 책을 읽고 있다. ‘우리’의 4.3에 관한 게 아닌, ‘그들’의 전쟁에 관한 증언들을 듣는다. 그녀는 책 어디엔가 이렇게 썼다. “이 이야기는 어느 특정한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 유태인 소년의 특별한 이야기에서 제주도 인·민의 공통된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맞다. 죽음과 죽임 그리고 주검의 이야기는 저곳 ‘그들’만의 비극적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전쟁범죄의 현대사, 민간인 학살의 세계사. 그것은 2차 세계대전 동유럽, 구소련 땅에서만 한정된 만행이 절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한국전쟁과 그 전후로, 한반도 어느 데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제주도에서도 그러했다.

4.3의 증인들을 더 만나봐야 하는가? 같이 살던 마을 집들이 홀라당 불타 무너지고, 시신들은 짐승도 가까이 하지 않을 까만 숯으로 나뒹굴었다. 주민들이 떼로 계곡으로 끌려가 총살당하거나 산 채로 암장된다. ‘골로 간’ 식구와 돌을 단 채 깊은 바닷물에 내던져진 이웃 청년, 강간당한 처녀의 악몽으로 살아남은 자들을 매일 밤 고문을 당할 것이다.

체험과 목격담을 토대로, 여러 소설과 시, 저널리즘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치 떨리는 지옥의 증언은 아직도 다 덜 캤다. 지하의 유골은 아직도 이곳저곳에서 발굴 중. 아, 작가여. 나는 몇 해 전 지리산 언저리 감자밭 돌무덤에서, 파랗게 이끼가 낀, 나무껍질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정강이뼈들을 보고, 얼마나 기겁했었는지. 제주 한라산은 또 오죽하랴.

2017년 4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69주년 4ㆍ3 희생자 추념식' 직전 희생자 유족들이 행불인 표석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은 그렇게 억울한 전쟁의 주검들을 숨기기는커녕 악착같이 지상에 그 유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죽음의 현현에 질리지 않을 자 과연 있을까?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 실감나지 않는가? 멀어져 좀 다행인가? 아서라. 그 후에도 우리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의 현실, 제노사이드의 현장으로부터 단 한 차례도 떨어진 적이 없다. 피해자로서, 혹은 가해자로서.

사실, 범죄자 국가와 그 권력이 동원한 하수인들은 평상시에도 사람들을 학살로 내몰았다. 60년 4.19혁명과 80년 광주항쟁의 끔찍한 피 흘림을 떠올려 보라. 수백 명이 비명횡사한 형제복지원 사건은 엄연한 홀로코스트였다. 국가가 공식 출병시킨 군인들이 베트남에서 자행한 야수적인 민간인 학살은 ‘사죄’의 말로써 잊을 수 있는 일인가?

이 모든 억압된 것들이, 70년 세월이 지난 2018년 4월 3일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역사에서 4.3은 봉기와 저항, 적대의 시작이었다. 살아남은 우리에게 오늘은 한라산 오름, 해변, 비행장 등지를 동백꽃처럼 빨갛게 물들인 인간들을 다시 기억할 때다. 제주 넘어 한반도, 나라 밖 세상의 범죄적 행위와 비참의 사건들을 돌아볼 시간으로 맞이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류는 국가의 전쟁범죄를 법을 통해 엄중히 물었다. 그러기 위해, ‘인도에 반하는 범죄’라는 용어와 ‘제노사이드’라는 단어까지 발명하고 재발견해냈다. 그래도, 야만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러기에, 개인과 집단에 폭력을 가한 국가와 부역 당사자의 죄과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집요하게 묻지 않으면 안 된다.

2018년 4월 3일은 그 끝없는 책임추궁이 재개되는 날이다. 학살된 민간인에 대한 대한민국과 미국의 책임은 결코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규명을 위해 온전히 남아 있다. 그 취조, 기억, 기록, 탐사의 몫이 우리에게 부여된다. 이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는 생존자 우리는 4.3 70년을 역사 되찾기, 역사 글쓰기의 당사자로서 부담스럽게 맞이할 수밖에 없다.

2017년 3월 28일 제주 하니호텔에서 열린 '4·3역사 증언 및 제주 4·3인천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4·3당시 인천형무소에 끌려간 수형생존자 양근방(사진 왼쪽부터)·현창용·사회자 김순이 시인·양일화·박동수씨가 당시를 증언하려고 증언대에 나와 있다. Ⓒ연합뉴스

‘기꺼이!’라고 할까? 4.3의 이야기를 사실의 알갱이와 진실의 실로써 단단히 현대사와 묶고 엮어내는 작업. 외세의 개입과 사상의 격돌에 의해 압살된 인간들을 조용히 기념하며 현현시키기. 그 기억과 기록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알렉세예비치의 책을, ‘그들’의 슬픈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공통된 아픈 역사로서, 고통스럽지만 조용히, 읽어 내려간다.

역사의 지워진 목소리를 묵묵히 수습 중인 작가여. 당신도 아시아 대륙 동쪽 너머 제주라는 섬과 뭍에 생매장 된 유령들의 시간을 전해 들으세요. 너와 나 인간이 20세기 내내 목격한 죽음의 이야기, 비극의 역사, 지옥의 참사를 함께 잊어버리지, 잃어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당신이 전하는 또 다른 육성, 짧게 다시 번역해 둡니다. 역사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그랬던 거예요.…모든 게 오늘까지 선명히 남아 있어요. 밤에 초대하지도 않았는데도 집을 찾아오는 “숲 사람”들을 모두 무서워했어요. 어느 날 밤, 그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끼를 갖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쇠스랑을 어깨에 메고 왔더군요. “어머니, 돼지비계요리 좀 내놓으시오. 밀주도. 소리를 내면 절대 안 됩니다.” 지금 당신께 나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책에다 써 놓은 걸 옮기는 게 아니에요. 처음엔, 사람들은 빨치산을 싫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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