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안철수 전 의원이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기로 했다. 예정된 일이었지만 지방선거를 둘러싼 정세 변화는 불가피할 예정이다.

당장 술렁이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다. 현직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맞서는 박영선, 우상호 의원은 이렇다 할 반전의 기회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전 의원이 출마하면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양보’가 다시 여론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런 이유로 박원순 대 안철수 구도로는 위험하니 경선에서 결선투표를 도입해 사실상 ‘반-박원순 단일화’가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게 박영선, 우상호 의원 등의 주장인 걸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박원순 대 안철수라는 선거구도에서 2011년의 ‘양보’가 그렇게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양보’ 프레임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효력을 상당히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정성’에 대한 젊은 층의 여론을 보면 알 수 있듯 유권자들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가장 우수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 권력을 책임있게 행사하기를 원한다. 안철수 전 의원이 꿔준 돈 받아가겠다는 논리로 접근하면 오히려 역풍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의 룰은 자기들이 알아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그것보다 선거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걸로 보이는 것은 이른바 ‘묵시적 단일화’의 향방이다. 자유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유력하다. 홍준표 대표가 직접 출마를 제안했고 이제 김문수 전 지사 본인의 결심만 남았다고 한다. 김문수 전 지사가 출마하면 서울시장 선거는 23년 만에 3파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언론의 보도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이 2018년 3월 29일 오후 대구시 동구 MH컨벤션웨딩에서 열린 대구시당 개편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3파전도 어떤 3파전이냐가 중요하다. 김문수 전 지사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가 과연 얼마나 파괴력이 있을지 의문이란 얘기다. 첫번째 문제는 김문수 전 지사가 서울에 정치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거다. 경기도지사를 두 번이나 했고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는 경기도 부천이었다. 2016년 총선에선 대구 수성구 갑 지역구에 출마해 김부겸 장관에게 패배했고 현재도 이 지역 당협위원장이다. 물론 수도권 광역단체장의 경우 이런 지역적 연고의 중요성이 다른 지역보다 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 기반과 관계없이 서울시장 출마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만한 경우는 대상이 ‘전국적 인물’일 때나 가능하다. 지금 김문수 전 지사를 ‘전국적 인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번째 문제는 김문수 전 지사의 출마에까지 이르는 상황의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았다는 거다. 홍준표 대표는 내내 서울시장 후보 발굴을 장담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홍정욱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이 영입 대상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영입을 고사하거나 출마를 거부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출마를 준비한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영입 제의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문수 전 지사의 출마는 마치 “나간다는 사람이 없으니 너라도 나가라”는 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 자기 자신들도 자신하지 못하는 인물을 믿어줄 유권자는 사실상 없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세번째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자유한국당이 서울시장 후보 영입에 계속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당연히 자유한국당이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희망이 없다고 볼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막말’로 내부 논란에 휩싸인 홍준표 전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지난 29일 지면에서 홍준표 대표의 소극적 태도가 영입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연이은 ‘인재 영입’의 실패는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이후에도 당권을 유지하고 2020년 총선에 공천권을 행사해 당 장악을 끝마친 후 2022년 대선으로 직행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탓에 ‘거물’ 영입을 원하지 않은 결과라는 거다.

홍준표 대표의 막말 논란과 ‘강북 험지 차출론’이 보여주는 게 바로 이 그림이다. 연탄가스니 바퀴벌레니 하는 말까지 들은 이주영, 나경원, 정우택 의원 등이 이런 그림을 뻔히 보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 홍준표 대표가 직접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서 낙선하면 책임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로서도 이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런데 좀 더 나간 해석도 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의 주장이 그렇다. 박지원 의원은 지난달 29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홍준표 대표의 행보를 놓고 “서울시장 후보를 꼭 안 나올 사람한테 나오라고 권해 놓고 거절당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 주장에 따르자면 홍준표 대표의 행보는 ‘알리바이 만들기’에 가깝다. 사실은 서울시장 후보를 내고 싶지 않지만 안낼 수는 없으니 시늉만 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뒤집어서 홍준표 대표가 원하는 대로 할 경우를 가정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서로 명시적인 단일화 절차는 거치지 않으면서 사실상 유권자 사이에서 연대를 이루는 ‘묵시적 단일화’가 실현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김문수 전 지사가 지금은 ‘태극기 세력’으로 분류된다는 것에서 이런 상황의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자유한국당 내에서 어떤 그림이든 바른미래당과의 단일화 구상을 가장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도 ‘태극기’를 자처하는 구 친박계 세력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의원은 “자유한국당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라고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자신이 보수정치의 대표가 돼야 한다는 선언이다. ‘태극기’ 김문수 전 지사의 등판은 이런 규정에 “바로 그렇다”고 대답한 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홍준표 대표는 거의 누더기에 가까워진 김문수 전 지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세워 구 친박계의 실리를 챙겨주고 중진들의 명분을 구실로 한 공격을 피해가면서 앞서의 정치적 이유로 득표력은 알아서 최소화하는 기이한 행보를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묵시적 단일화’의 가능한 현실태는 앞을 보면서는 “단일화는 없다”고 해 중도층 이탈을 최소화 하고 뒤에서는 “내가 사실상 보수 야권 단일후보”라고 해 보수적 유권자층 표를 단속하는 것이 된다. 보수 양당은 지자체장, 지방의원, 재보궐선거 등에서 이런 프레임을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할 것이다. 이게 가능한 공통지반을 만드는 것은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개헌이다. 김문수 전 지사는 자유한국당의 사회주의개헌저지투쟁위원장을 맡고 있다. 안철수 전 의원은 문재인 정권의 개헌은 진정성이 없고 ‘정략’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개헌이 ‘아교’ 역할을 하는 건 반대편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다가오는 지방선거는 모든 원내의 정치세력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서로의 이해관계를 고리로 너나 할 것 없이 맹렬히 ‘양자구도’를 만들어 가는 그림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묵시적 단일화’론이란 바로 이 구도의 하위분류에 불과하다. 최근 논란이 된 ‘2인 선거구’ 문제도 크게 보면 이 맥락 안에 있다. 이런 방향의 정치구도 재편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을 주는가, 이것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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