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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판타스틱 망가(MANGA)로 구현된 문화의 용광로, 교토[블로그와]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3.31 10:57

3월 29일 개봉한 재패니메이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2017년 우리가 조우할 수 있는 일본 문화의 결정체, 혹은 집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이 희한한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일본 문단의 기대주라 칭해지는 모리미 토미히코라는 작가의 동명 소설이 전제된다. 2003년 <태양의 탑>으로 15회 일본 판타지 노벨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모리미 토미히코는, 2006년 영화와 동명의 소설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로 20회 야마고토슈고로 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나오키 상 후보에 오르는 등, 그해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일본 문단의 기대주로 각광받고 있다. 

모리미 토미히코의 매직 리얼리즘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포스터

<밤을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청춘 판타지물이다. 짝사랑하는 후배 여학생의 사랑을 얻기 위한 선배의 '최눈알' 작전, 이른바 '최대한 그녀의 눈앞에서 알짱거리기' 작전을 다룬 이 소설은, 하지만 풋풋한 연애물을 상상하면 그 기대는 무참히 깨지고 만다. 선배의 낭만적 연애 감성을 자극하는, 아직 소녀티를 벗지 않은 검은 머리 아가씨는 태평양 바다가 럼주였으면 좋겠다는 두주불사에 어른들의 세계를 맛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교토 밤거리에서 벌어지는 판타지적 모험의 주인공이 된다. 반면, 그런 그녀를 짝사랑하면서도 그녀 앞에서는 늘 '어쩌다 지나가는 길이었어'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선배는 그런 그녀를 따르기 위해 '팬티 실종 사건'에서부터 그녀의 헌책 사수 작전, 감기 광풍까지 본의 아니게 판타지에 휘말리게 된다. 

교토라는 특정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 밤의 문화, 그 속에서 때론 음란하게 때론 장광설을 펼치며 문화를 유영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학과 거리의 책과 각종 동아리 공연 문화를 기반으로 한 환상의 서사는 새로운 판타지의 영역이다. 그곳엔 신화도 영웅도 없지만, 교토라는 곳을 기반으로 한 갖가지 문화적 행사와 모임들이 가진 '리얼리즘'이 '매직'으로 승화되며 판타지의 새로운 세계를 연다. 그저 하룻밤, 하지만 영화 속 이백의 말처럼 사계절을 겪어 낸 듯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풍성한 판타지의 세계는 바로 이 '원저자' 모리미 토미히코의 문학에서 시작된다. 

문화의 도시 ‘교토’가 진짜 주인공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매직의 기반이 된 '교토'이다. 교토에서 태어나 교토에서 자라 아직도 교토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교토의 천재라 칭해지는 모리키 토미히코의 작품은 단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토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이하 밤은 짧아)>는 교토의 문화적 거리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 우리가 일본의 '천년 고도'라 알고 있는 곳이 바로 교토이다. 하지만 <밤은 짧아>에 등장하는 교토는 유적지와 벚꽃의 풍경이 아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술을 마시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가 활보하게 된 곳은 바로 교토의 중심지 '기온'으로 간주되는 동네이다. 바둑판처럼 가로세로 구획된 길들이 이어진 동네, 그곳의 밤은 낮보다 빛난다.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 이미지

술을 위해 의기투합한 괴물이라 자칭하는, 유카타를 입은 남자 히구치와 애주가 여성 하누키가 검은 머리 아가씨와 함께 이 술집 저 술집을 전전하는 거리는 늦은 시간까지 술을 파는 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조명과 저마다의 간판을 뽐내는 명소이다. 이백의 배가 닿는, 잠시 숙취를 깨는 환기의 장소로, 그리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등장하는 가모가와 강 또한 빠질 수 없다. 

한바탕 술판을 벌여 결국 술내기로 술의 신으로 칭해지는 '이백'까지 이겨낸 검은 머리 아가씨의 밤은 아직도 한창이다. 그 깊어진 밤만큼이나 계절도 무르익어 한여름의 열기를 뿜어내고, 그 열기 속의 밤거리엔 책 축제의 향연이 펼쳐진다. 시모가모 신사를 향하는 참배객의 넓은 길을 간이 서가가 채우고, 그곳에 오래된 책들이 켜켜이 쌓여 고서 마니아들의 방문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책을 찾기 위해 서가를 헤매는 검은 머리 아가씨. 그 아가씨의 책을 먼저 찾아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아이로 등장한, 헌책 시장의 신에게 이끌려 책 구하기 작전에 휘말리게 된 선배의 모험담은 바로 이 교토의 '책 축제'와 오래된 책을 사랑하는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명소의 거리나 책 축제와 같은 구체적인 장소나 무형의 유산만이 영화를 채우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판타지적 해프닝의 행간을 메우는 출연진의 갖가지 문화적 행태들이다.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혹은 젊으면 젊은 대로 괴변을 비롯한 갖가지의 공통적 취미를 통해 만나지는 기온 거리의 각양각색의 술집. 통제된 암흑의 시대에 게릴라처럼 번지는 대학의 문화,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용납되기 힘든 '춘화 마니아', '팬티 패티시' 등등의 하위문화가 영화의 행간을 당당하게 채워간다. 다종다양한 B급의 문화적 정서들이 교토의 밤거리, 책 축제라는 도시의 문화와 함께 어우러져 <밤은 짧아>의 주인공으로 교토를 기억되게 한다. 그저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 교토라는 도시에 담뿍 빠져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 든다.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를 통해 구현된 캐릭터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 이미지

교토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빚어지는 청춘들의 판타지적 모험담이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로 영화화 된 건 영화를 보면 당연한 결과물이라 여겨진다. 그저 술을 마시고 싶어 밤거리로 나선 검은 머리 아가씨가 그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혹은 괴물, 신들과 함께, 술과 책과 사랑의 모험을 겪어 가는 신비한 세계를 풀어가는 데 애니메이션만큼 유효한 장르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모리미 토미히코의 원작이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영화가 되기까지에는 일러스트레이터 나카무라 유스케라는 관문이 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이 모리미 토미히코의 작품을 영화화한 건 <밤은 짧아>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TV시리즈로 소개된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가 그 첫 시도로, <밤은 짧아>에 등장한 대학 내 다양한 동아리들이 신입생의 고민으로 등장하며, 익숙한 캐릭터들이 선보여졌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카무라 유스케는 모리미 토미히코 작품의 캐릭터 원안을 담당했다. <밤은 짧아>의 여주인공인 검은 머리 아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는 소녀와 동물이 어우러진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마치 일본의 옛 그림의 정취가 배어나는 화풍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우리나라에도 마니아층이 있다.

긍정적 인간애에서 비롯된 러브 스토리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 이미지

이렇게 자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갖은 판타지적 고난을 겪어 내는 찌질한 선배와, 그런 선배의 구애 작전은 아랑곳없이 어른의 세계에 용감하게 뛰어든 검은 머리 아가씨의 성장 판타지는, 이렇게 교토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원작과 그 원작을 절묘하게 구현한 일러스트 등 갖가지 문화 콘텐츠들의 조합으로 탄생되었다. 하지만 아우성치듯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나던 문화적 콘텐츠들은 영화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결국 애초에 작가, 혹은 감독이 추구했던 청춘 서사로 절묘하게 모아진다. 

팬티를 갈아입지 않던 선배의 희한하다 못해 괴팍한 취향도, 최눈알 작전이니 뭐니 소심했던 선배의 짝사랑도, 그리고 어른의 세계만을 탐닉하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검은 머리 아가씨도, 결국은 하룻밤을 빙자한 교토 사계절의 판타지 모험을 겪어내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향한 용기를 내게 된다. 여전히 서툴고 머뭇거리지만 더는 '알짱거리거나 기다리지만은 않는 그들의 사랑은 영화 초반 '찌질했던' 그들을 이해하게 될 만큼 애틋한 러브 스토리로 마무리된다. 

마치 한바탕의 난장을 겪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제 그들은 가슴 설레는 사랑을 시작한다. 그 '러브스토리'는 때론 찌질하고 종종 변태스럽기도 하며, 심지어 위악적이기도 했던 등장인물들의 군상을 여유롭게 '인간사'의 한 장으로 품어낸, 그래서 어쩐지 영화를 보고 나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밤은 짧아>의 넉넉한 세계관이 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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