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국정화 과정에서 위법행위에 가담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20여명에 대해 수사를 의뢰할 것을 김상곤 교육부총리에게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조치에 보수언론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비난에 나섰다.

▲29일자 조선일보 사설.

29일자 조선일보는 <정권 바뀌면 지금 정책 참여 공무원들도 수사받아야 하는가> 사설에서 "지난 정부에서 교과서 국정화 업무에 관여했던 공무원 등 25명을 무더기로 수사 의뢰하도록 권고했다. 과장급까지 망라했다"면서 "이미 교과서 부서에서 일했던 교육부 공무원의 중학교 교장 발령을 취소했고,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발령났던 공무원은 바로 쫓아냈다. 그걸로 모자라 검찰 수사로 기어이 감옥에 보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어느 정부나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이 있다"면서 "청와대가 결정하면 담당 부처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한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이 무리한 부분이 있으면 그에 맞게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실무를 맡은 공무원을 수사해 감옥에 보내겠다고 나오면 앞으로 공무원들은 청와대에서 내려보내는 지시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조선일보는 "이 정부는 국정교과서 집필자 명단을 비공개한다고 비난하더니 자신들은 중·고교 역사교과서 집필 시안 필자도 공개하지 않았다"면서 "그 시안엔 북한에 대한 부정적 현실 설명이 빠졌다"고 전했다. 이어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촛불집회 사진이 들어가고 새마을운동 사진은 사라졌다"면서 "지금 정부는 지난 정부보다 더 은밀하고 집요하게 교과서를 바꾸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여기에 관여한 공무원들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말했다.

▲29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도 <국정교과서 과잉 처벌, 또 다른 적폐 낳는 것 아닌가> 사설에서 "국정화 작업에 관여한 공무원들을 사법처리하는 것은 진상조사와 별개의 문제"라면서 "국정화 작업에 관여했던 교사나 교육부 공무원은 이미 적폐로 낙인 찍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그들을 수사 의뢰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은 과잉 처벌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이념이 다른 지난 정부에서 정책 집행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공무원들을 사법 처리한다면 현 정권에서 집행되는 수많은 정책도 앞으로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면서 "이제는 공무원 처벌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교과서 편찬 관련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이뤄지는 과잉 처벌이 또 다른 적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적대로 청와대의 지시대로 일한 공무원들을 일일이 문제 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러나 28일 진상조사위가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수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명백한 위법행위가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28일 진상조사위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헌법 가치를 위반하는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정책 집행 과정에서 많은 위법·부당행위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교육부는 박근혜 청와대의 지시로 불법적인 '국정화 비밀 TF'를 구성·운영했다. 청와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 광고를 협찬 형태로 편법으로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홍보용역업체 '수미디어'에게 1억7000만 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하게 하기도 했다.

또한 국정화 여론 조성을 위해 국가기관과 관변단체, 일부 친정권 성향의 교수·교사를 동원해 전방위적 여론조작을 벌인 사실도 확인됐다. 국정화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설문 내용에 직접 개입하고, 여론조사 비용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 관변단체를 이용해 국정화 지지 광고를 신문에 내고, 교육부는 시민단체 명의로 리플릿을 배포할 것을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국정화 홍보를 위해 참고자료, 발언자료, 방송출연 시나리오를 당시 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7개월 동안 조사활동을 통해 많은 위법·부당행위를 확인했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핵심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기춘 전 실장, 이병기 전 비서실장 등이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고위 공직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은 서면조사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불법행위에 가담하거나 협력한 민간인 및 민간단체에 대한 조사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이유로 진상조사위는 감사원의 신속한 감사와 사법 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진상조사위는 "국정농단 사건에 크든 작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 대한 사법 처리와 신분상 조치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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