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축구를 체험했던 건 군에 있을 때였다. 훈련소 특기 교육을 받던 1998년 6월 21일 새벽 4시.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훈련이 없던 새벽 시간인 점을 감안해선지 교관은 14인치 TV를 연병장에 꺼내놓고 수백 명의 훈련병들에게 월드컵 축구를 보여줬다. 네덜란드와 한국이 경기를 하고 있었고, 네덜란드는 5골을 몰아치며 한국을 넉다운시켰다. 한국 축구가 좌절했던 그날, 나는 내가 속한 국가대표 팀의 좌절감에 온전히 동화될 수 없었다. 네덜란드 축구의 미학에 넋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그라운드를 뛰는 10명의 네덜란드 선수들은 수비할 땐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한국 선수들을 압박해 그들을 계속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공격할 땐 한국 수비진 뒤쪽을 헤집으며 창의적으로 공간을 창출했고, 그들의 공간 지향점 앞에는 어김없이 슈팅과 같은 강도의 대포알 패스가 배달됐다. 대포알 패스는 공의 회전과 어깃장을 내지 않고 포용하는 몸짓으로 발현되는 트리핑에 의해 자연스레 그들의 몸의 반걸음 내에 안착했고, 그 뒤 터져 나오는 슈팅은 골문 구석 곳곳을 찔러댔다. 압. 도. 적. 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네덜란드는 그해 4강에서 브라질과 맞붙어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했다. 제대 뒤 모든 경기를 뒤늦게 구해본 내겐 프랑스의 우승이나 브라질의 준우승이란 결과물보다 네덜란드가 풀어 나가는 축구라는 하나의 과정이 훨씬 더 긴 잔상을 남겼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을 맡은 감독이 그때의 그 네덜란드 감독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그 뒤 한국 축구는 1년 새 수비와 공격을 막론하고 입에 거품이 일 때까지 뛰며 숨막히는 압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과정을 익혀갔고, 그 과정을 통해 월드컵 4강이라는 압도적 결과물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물론 완벽한 축구의 미학을 펼쳐냈던 네덜란드처럼 창의적인 공간 창출, 대포알 같던 패스, 어깃장이 나지 않던 트리핑, 구석을 찌르던 슈팅까지 갖추진 못했지만 2002년의 한국 축구는 월드컵 본선 역사상 최초로 압박 축구라는 자기만의 색깔을 경기 중에 펼쳐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때부터 한국인들에게 '축구=압박'이란 공식이 자리잡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이란 결과물을 이끌어낸 과정은, 허정무 감독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 8년이란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이뤄낸 거스 히딩크식 압박 축구의 한국적 변주에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가진 클래스의 무게감, 이청용과 기성용의 위축되지 않는 자신감이 더해진 총체성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의 총체성이 가장 아름답게 빛을 발한 경기가 16강 우루과이 전이었고, 가장 미욱하게 발현된 경기가 조별 예선 아르헨티나 전이었다. 하지만 4경기를 통틀어 볼 때 한국 축구는 아직까지 한국 축구만의 미학을 갖추지 못했고, 창의적인 공간 창출과 패스력은 널뛰듯 변덕을 부렸으며, 골을 결정지어줄 능력에서도 미숙함을 드러냈다. 장점은 체력을 활용한 압박, 그 뿐이었다. '체력이 고갈될 만큼 뛰어다녔던 정신력과 투혼'이란 찬사의 수식어가 대표팀에게 붙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배가 고팠'고, 압박과 투혼과 정신력 그 이상의 무언가를 그들에게 바랐다. 그건 비단 축구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보고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중문화의 텍스트에 그 텍스트를 유도한 사회의 현상이 묻어있듯 한국 축구라는 고유성을 빚어낸 과정의 총체성에도 사실 한국 사회의 현상이 온전히 묻어있다. 한국 축구가 여전히 '투혼'만을 강조하며 선(線)이 곱지 못한 투박함을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까닭에는 한국 사회의 스포츠 혹은 더 나아가 스포츠를 포괄하는 사회 환경 전체의 파편적 현상들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축구가 압박과 투혼과 정신력 그 이상을 발현해낼 줄 알게 된다는 것은 곧 한국 사회가 그 이상을 발현해줄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놨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고, 나는 그런 토대와 그 축구가 함께 보고팠다.

창의력이 부족한 한국 축구는 그런 면에서 획일적이고 명시적인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한국 사회의 일반 교과 과정 뿐만 아니라 학원 축구 환경에서도 늘 강조되는 건 오로지 승리라는 결과물이다. 승리라는 결과를 위해선 과정 따윈 중요치 않다. 성적 지상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비교육적.반인권적 훈련문화를 개선해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및 인권 상황을 발전시키려'(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교체육법안')하면 대한체육회 회장이라는 이는 "이런 문제로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을 때 세계 스포츠는 저만치 앞서 간다"(중앙일보 2009년 8월7일자 기고)는 '논리'로 맞선다.

▲ ⓒ연합뉴스
여기서 '성적 올리기'와 '비교육적.반인권적 훈련 문화'는 사실 대비되는 개념, 즉 어느 하나를 우선시하며 다른 것을 외면해도 되는 사안이 아님에도 어느덧 대중의 인식엔 '성적이라는 현실적 토대를 올리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반인권적 훈련 문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명제가 명징하게 인식되고 만다. 여기서 인권과 교육에 대한 정당한 이의제기는 '성적'이라는 엄존하는 현실을 모르는 치기 정도로 인식되고, 현실적 토대를 바탕으로 공유가치를 자신들의 기득권적 가치로 선점한 쪽은 은근히 미소를 짓게 된다. 연이은 언론의 고발에도 잊을만하면 나오는 교내 체육부 폭력은 이런 식으로 전유된 가치에 의해 발현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성적 지상주의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위축시키고, 오로지 팀의 승리를 위해 개인의 창의성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인식만 팽배하게 만든다. 땀을 흘리는 과정을 함께 공유하며 동료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고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스포츠는 이런 사회에서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창조적인 플레이는 실수라도 할라치면 바로 '이기적인 플레이'로 매도되고, 군대식 선후배 관계로 짜인 위계질서에 의해 '모난 돌'이 되어 정을 맞는다.

잔뜩 위축된 플레이의 결과물로서 나타나는 골 결정력 부족은 축구, 특히 월드컵이라는 국가 간의 경기 때마다 발현되는 한국 사회의 압도적인 국가주의가 안긴 부담이 일정 정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겨울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와 모태범, 이상화 등은 자신의 성적에 따른 결과로 '국익이나 민족적 자긍심이 향상된다'는 집단적 가치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모습을 보여줬다. 실수해도 미안해하지 않았고, 승리 혹은 경기 그 자체를 즐길 줄 알았다. 하지만 유독 한국 축구에서만은 그런 집단적 가치에 대한 추수가 여전히 엄존한다. 수많은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붉은 옷을 맞춰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정작 프로축구 K-리그는 외면 받는 현상은 국가 간 축구경기가 여전히 '국가'의 존재 가치 앙양을 위해 전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문제는 정작 일부 어린 타 종목 선수들과 더불어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촛불로까지 이어진 거리의 물결에 동참한 시민들에게선 무조건적인 국가주의가 색깔을 잃어가고 있는 반면 정치권과 미디어,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대한축구협회와 기업들의 온갖 광고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축구에 국가주의를 색칠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TV 캐스터는 노골적으로 국가 간의 경기를 '전쟁'과 같은 무게로 포장해 상대 국가를 향한 호전적 투쟁심을 반복적으로 부각시키고, 정치권은 한국 선수의 승리를 '국정운영의 결실'이라 평하며 긍정적 결과물에만 숟가락을 얹고, TV와 인터넷을 뒤덮은 광고는 드러내놓고 애국주의와 국수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고취시킨다. 이 무게는 고스란히 한국 축구 선수들에게 전해져 경기에 진 선수들의 표정을 그 어떤 나라 선수들보다 더 어둡게 만들고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우리는 8강 진출이 좌절된 경기에서 경기를 지배하고도 그저 점수라는 결과물에서 진 한국 선수들이 툭툭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드러누워 울먹이던 표정들을 보지 않았던가.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훌륭한 경기를 하고도 '이기지 못해 죄송해야하는 죄인'으로 만들었을까. 그게 젊은 선수들에게 '국가를 대표한다'는 무게감을 필요 이상으로 안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기서 다시 네덜란드 축구 얘기로 돌아가면, 네덜란드 축구가 압도적인 집단의 조직력과 개별적 팀 구성원들의 창의력을 비슷한 무게로 더한 축구를 함께 보여줄 수 있었던 건 개인과 집단의 관계가 적절한 긴장 아래 비슷한 수준의 가치로 함께 인정받는 유럽 사회의 문화가 적절하게 축구에 녹아들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번 월드컵을 통해 드러난, 극복해야할 한국 축구의 한계는 비단 축구 그 자체나 축구대표팀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게 아니라 그들을 유도해낸 한국 사회에다 그 책임을 물어야하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일부 부진했던 대표팀 선수나 허정무 감독에게 무조건적인 비난의 화살을 쏠 때가 아니다. 그보다 한국 축구의 한계 극복을 위한 사회적 책임이 6월의 축제에서 선수들의 활약을 보며 맘껏 쾌락을 분출했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도 고스란히 함께 전가돼 있다는 점을 한 번쯤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서울신문과 메트로신문에서 7년쯤 줄곧 사회부 기자로 일을 하고 있다. 문화부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심각하게 말해왔지만, 주변에선 코웃음치며 농담으로 받아들여 좌절해왔다.

19년 동안 87년 민주화운동을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일컫는 곳에서 자랐고, 20대는 그런 10대에 대한 극렬한 반동으로 살았다.

지금은 10대의 '나'와 20대의 '나'를 해체하고 나와 타자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작업을 하며 살고 있다. 관조와 몰입은 분절된 자아의 간극, 그 어딘가에 있다. http://nomad-crim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