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언론과 인터넷, SNS 등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어 자신에게 제기되는 음해성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27일 서울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서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 안젤라(가명) 씨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사진, 영상 촬영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봉주 전 의원. (연합뉴스)

안젤라 씨는 언론과 SNS 등을 통해 2차 가해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언론에서 오히려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언론 행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안젤라 씨는 "사실 제가 오늘 앉아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안젤라 씨는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다보니 오해가 생기고 팩트가 아닌 부분들이 확대·재생산되는 부분들이 있었다"면서 "그래서 이 자리에서 기자만이라도 설명을 확실히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젤라 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차미경 변호사는 "미투운동의 본질은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 이런 것들"이라면서 "많은 기사를 봤지만 그런 관점에서 작성된 기사가 많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차미경 변호사는 "만약에 허위가 있다면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게 온당하다"면서 "그런데 다른 프레임과 다른 논리, 음모론 등이 제기되는데, 이런 것들에 대해 대응할 방법이 없었고, 결국 오늘 이 자리를 만들기로 안젤라 씨와 결정했다"고 밝혔다. 차 변호사는 "언론도 그렇고 사회 일반이 이런 식으로 미투운동을 대응하는 것이 온당하느냐는 반성과 담론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안젤라 씨는 성추행 의혹의 피해자인 자신이 인터넷, SNS 등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걸 넘어서야 여성이 아닌 성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젤라 씨는 "익명 미투를 하는 건 증거가 있어서"라면서 "증거가 없으면 저는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젤라 씨는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벌어진 익명 미투 논란에 대해 "사람들이 제 얼굴이 궁금한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면서 "여전히 미투를 하는 데 있어 '벽이 높구나', '이게 현실이구나'란 생각을 했다. 이걸 이기고 넘어서야 발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7일 서울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봉주 성추행 의혹의 피해자 안젤라 씨의 기자회견.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진촬영은 안젤라 씨 퇴장 이후 허용됐다. 사진의 인물(오른쪽)은 안젤라 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하희봉 변호사. (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이명숙 변호사는 "언론이나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글을 올리거나, 정제되지 않고, 양쪽의 확인이 되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정말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오늘도 수많은 댓글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면서 "그런 식의 2차 피해 감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오늘 용기를 냈다"고 강조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정치인이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집중을 받는 사건에 관계된 변호사라면 SNS를 통해 의견을 가볍게 올리는 건 자제해야 한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미투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언론과 팟캐스트 등을 통해 반론권 없이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데, 언론중재위원회나 방통심의위를 통한 법적 절차를 밟을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안젤라 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호사 분들과 논의를 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차미경 변호사는 "왜 정봉주 전 의원이 이 사건에 대해 프레시안을 고소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어떻게 하면 실체를 드러내는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강구하고 있다. 조만간 결론을 내릴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기자회견문에서 안젤라 씨는 "많은 사람들이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얼굴과 신원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 호소를 의심했다"면서 "정봉주 전 의원은 세간의 편견과 의심을 악용해 저를 유령 취급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이 자리에 선 가장 큰 이유는, 가장 중요한 증거인 이 사건의 피해자, 즉 제 존재 자체를 밝힘으로써 최소한 기자 여러분들에게라도 제 '미투'가 가짜가 아니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젤라 씨는 2011년 12월 23일 렉싱턴 호텔에 갔던 사실을 증거로 제시했다. (사진=안젤라 씨 변호인단 제공)

안젤라 씨는 정봉주 전 의원을 만났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 2011년 12월 23일 오후 5시 5분과 37분 '포스퀘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렉싱턴호텔(현 켄싱턴호텔) 뉴욕뉴욕 카페에서 체크인 된 기록이다. 안젤라 씨가 최소한 해당 시간에 호텔에 있었다는 증거다.

안젤라 씨는 "그날의 구체적인 시간을 더듬기 위해 백방으로 2011년 12월 23일의 기록을 찾던 중, 위치 기반 모바일 체크인 서비스 '포스퀘어'를 통해 하나의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면서 "이 기록은 제가 앞서 말 한 성추행 장소에 대한 진술이 당시 상황에 부합한다는 점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안젤라 씨는 사건의 장소를 '창문이 없고 하얀 테이블이 있으며 옷걸이가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 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안젤라 씨는 "모순으로 가득한 거짓으로 진실을 호도한 사람은 정봉주 전 의원"이라면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시기 바란다. 그러지 않고 여전히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제 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려거든 저를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반드시 고소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수사기관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 철저히 그리고 당당하게 조사를 받을 것"이라면서 "정 전 의원이 어떻게든 진실을 훼손하고 막아보려 하더라도 진실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회 정론관에서 BBK 사건의 재심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정봉주 전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느낌이 저를 정치적으로 저격하는 것 같다"면서 "정치적 의도가 가득하고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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