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또 사고를 쳤다. 누가 봐도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해왔던 예능의 자리배치를 바꿨다. 이제 당분간은 화면 중앙에서 유재석을 찾지 못한다. 유재석의 자리는 가장 외곽으로 바뀌었다. 무한도전의 중심은 분명 유재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중심으로 다른 멤버들이 서열화하면서 외곽으로 포진하여 지금껏 잘해왔다.

무한도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예능에 있어서 메인을 중심으로 한 포진에 누구 하나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무한도전이 그 당연하다는 생각에 딴죽을 걸었다. 결국 게임으로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다보니 유재석은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자연스럽게 반대쪽 노홍철과 길과는 거리가 멀어져서 관광가이드가 사용하는 확성기까지 동원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런 상황이 낯설기는 했지만 묘하게 재미있었다.

유재석의 자리 이동으로 인해서 난개발지역이었던 정준하, 정형돈 자리는 자연스럽게 화면의 중심에 놓여 재개발지역으로 프리미엄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유재석 옆에서만 쩜오인자의 위세를 누릴 거라 생각했던 박명수는 오히려 개그 스트라이커로 등극하는 등 전체 멤버들은 유재석과의 거리, 위치와 상관없이 만족스러움을 보였다. 또한 하하는 어쨌거나 정중앙에 위치하게 됐다.

물론 아주 단편적인 테스트만을 거친 소감이라 이것이 오래갈 것이라고 성급하게 단정내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5년 만에 자리를 바꾼 새로운 느낌이 분명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자리를 바꾼 효과는 아무래도 다음 주를 봐야 더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무한도전의 반란은 아주 새로운 흥미를 주는 동시에 다른 예능들에게는 은근한 압박을 가하게 된다.

자리 결정 게임 중에 빨리 지나쳤지만 누군가 “이래야 따라하지 못하지”란 말을 했다. 그동안 무한도전 아이템을 다른 예능에서 비슷하게 하는 것에 대한 은근한 논란도 적지 않았다. 그런 것에 대한 불편함 심기를 김태호 PD 또한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비친 적도 있었다. 결국 무한도전의 자리 바꾸기는 내부적으로 모든 멤버들에게 자기가 서고 싶은 자리에 서게 한다는 대단히 민주적인 발상을 갖고 있지만, 밖으로는 ‘따라 하려면 따라 해봐’의 의미도 있어 보인다.

물론 모든 예능이 대부분 중앙 집중의 자리배치와 진행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뜨거운 형제들 처럼 중심을 분산시킨 새로운 형태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무한도전의 이런 도발이 특별히 어디를 겨냥하는지는 각자 상상하기 나름이다. 그러면서 작년 연예대상에서 김태호 PD가 내년부터는 좀 더 공격적인 아이템을 쓰겠다던 취지의 말도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다.

그런 속사정이야 어떻게 됐건 간에 자리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예능을 짤 수 있다는 점은 무한도전에게 항상 기대감을 놓지 않게 되는 도전정신이었다. 한편 자리바꾸기 게임은 전반적으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 의심 많은 사람이라면 이미 결정해놓은 자리대로 이동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다. 가장 반발했던 정형돈이 결국 정준하와 뚱보, 뚱뚱보 조합을 이뤘고, 기타 실외 게임에서 하하가 유재석을 속이는 과정이 좀 어설픈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보고 하하의 예능감이 줄지 않았다는 평가를 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무한도전으로서는 충분히 효과를 본 셈이다. 거기다가 자리바꾸기 게임을 통해 본래 유재석이 섰던 자리는 하하에게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것이 결코 하하에게 좋거나 원한 것이 아니라는 투로 급격한 조신모드를 보인 것이 하하에게 집중되었던 비난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자리바꾸기 자체가 하하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무한도전은 하하 복귀를 위해 예능의 신이란 프로젝트를 했듯이 2년의 공백기를 가진 하하에게 스스로 적응하라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배려를 하고 있다. 때문에 적어도 하하에게 병풍의 논란은 없을 것이다. 김종민은 하하가 가장 부럽다고 했는데, 사실은 하하가 아니라 무한도전의 배려심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게 했다. 자리바꾸기는 말 그대로 멤버들을 위한 취지였고 동시에 타사에 대한 도발의 의미도 담고 있는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