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서울시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당초 다양한 정당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4인 선거구 획정을 거부하더니, 지난 20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역구 기초의원 선거구를 2인으로 쪼개는 행태를 벌였다. 거대양당의 '기득권 지키기'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민주당은 4인 선거구가 현실화될 경우 4등까지 당선돼 한 자릿수 득표율을 받은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대의제 위배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인천, 경남 등의 지역에서는 4인 선거구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이 유리한 정치환경인 서울, 호남 등지에서는 4인 선거구에 반대하고, 자신들이 불리한 지역에서는 4인 선거구 확대를 통해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이중적 행태의 전형이다.

지난 20일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권고한 7개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갰다. 당초 서울시 선거구획정위는 지난해 11월 4인 선거구를 35개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놨으나, 거대양당의 반발로 4인 선거구를 7개로 축소시킨 획정안을 내놨다. 그러나 서울시의회는 이마저 묵살했다.

같은 날 열린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강서 을 기초의원 선거구를 또 다시 쪼갰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황준한 시의원은 행자위에서 수정한 선거구 획정안에 대해 "다른 지역구는 모두 2인 선거구로 바꾸는데 왜 강서구만 3인 선거구를 그대로 두냐"고 반발했고,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이를 수용해 재수정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선거구획정 전날인 지난 19일 '민주당 의원들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4인 선거구를 전부 2인 선거구로 쪼개기로 합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이들은 실제로 4인 선거구를 모두 2인 선거구로 쪼갰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4인 선거구 확대를 요구하며 의장석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는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을 끌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의회 행자위는 선거구획정위의 획정안을 보고받고 논의를 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정회했다. 그리고 회의 재개 직후 자신들이 합의한 수정안을 곧바로 통과시켰다. 본회의는 더 심각했다. 바른미래당 의원 8명이 4인 선거구 축소에 반대하며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민주당 대표의원을 맡고 있는 김동욱 시의원은 "다 밀어버려"라고 외쳤다고 한다. 실제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들을 모두 끌어냈고, 선거구획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서울시의회의 선거구획정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담합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행태에 거대양당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4인 선거구 확대를 막아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중선거구제의 취지도 살리지 못한 데다, 정치적 논리에 원칙이 밀린 대표적인 졸속 선거구 획정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획정위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4인 선거구가 무산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거대양당이 반대했기 때문"이라면서 "서울시의회는 거대양당이 97% 정도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위원은 "획정위 내부에서 (기존 안에서 제시된) 4인 선거구를 35곳으로 확대하면 조례가 통과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시범적으로 7곳만 4인 선거구를 하자는 논리가 만들어졌다"면서 "원칙과는 무방하게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는 4인 선거구 7개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위원은 "결국 실리도 못 챙기고, 명분도 못 챙긴 선거구 획정이 됐다"면서 "표의 등가성, 중선거구제의 취지, 이런 걸 지키겠다고 하는 명분이 있었고 정당했는데, 그 정당성조차 지키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창피한 얘기지만, 실리적으로 7개 4인 선거구조차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하승수 대표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4인 선거구가 무산된 과정은 거대양당의 당리당략이라는 게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다"면서 "선거구획정은 그래도 선거제도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객관성, 중립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모두 무너져버렸다"고 비판했다.

하승수 대표는 서울시의회 선거구획정 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행태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과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개헌안에는 '선거의 비례성 원칙'이 포함돼 있다. 하 대표는 "비례성을 헌법에 넣는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노력을 하자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안 된다면 4인 선거구라도 도입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정치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진정성이 의심된다. 이번 서울시 선거구획정에 대한 민주당의 자세가 의지의 시금석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4인 선거구 도입 무산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나 전 대표는 "이 제도는 2006년 지방선거 직전에 만들었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속해있던 자신들의 여당이 제도화했는데 그 취지대로 하면 대의제 위배라니 가당키나 한 소리냐"면서 "민주당과 추미애 대표, 대의제의 원칙에 벗어난 건 당신들이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기초의회 중선거구제라는 제도도 배신했고, 당신들의 젊었던 시절 신념도 배신했고, 당신들이 약속한 다양한 풀뿌리 민주주의 정신도 배신했으며, 무엇보다 주류는 아니지만 다양한 생활을 이어가는 주민들의 대의되지 않는 삶을 배신했다"고 비판했다.

나경채 전 대표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다른 선거보다 기초의회 선거에 있어서는 다양성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다"면서 "이 취지를 정치권이 제대로 반영해야 하는데, 지방분권을 확대하겠다고 명분을 삼아 얘기하면서도 기초의원들을 국회의원들에게 줄을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 전 대표는 "자기 사람을 심어놔야 2년 후 총선에서 지역구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 기득권 때문에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선거제도 도입을 회피하거나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경채 전 대표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약속했던 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여당은 정치적 다양성을 수렴한다는 것을 확고한 당론으로 삼지 못하고 각 시도당이 3·4인 선거구를 해체하는 걸 방치하고 있다"면서 "한 마디로 말하면 최선의 대통령 등에 올라탄 최악의 여당"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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