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경찰과 자유한국당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경찰이 자유한국당 소속 김기현 울산시장 관련 수사를 벌이자, 자유한국당이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양비론'으로 몰아가고 있다.

▲26일자 조선일보 10면.

26일자 조선일보는 <한국당·경찰, 그들만의 '개' 설전> 기사를 게재하고 "경찰과 자유한국당이 김기현 울산시장 관련 수사를 두고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울산시청 압수수색을 지휘한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직접 한국당을 비난하는 글을 25일 올리자,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그를 미꾸라지에 비유하며 공격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제1야당과 경찰을 모두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다"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정치인 수사처럼 중요한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전에도 정치권과 수사기관이 대립한 적은 있지만, 이처럼 원색적 용어를 동원해 치고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경찰과 자유한국당의 논쟁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유한국당이 경찰에 과도한 비난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것이 자유한국당이고, 조선일보가 말하는 원색적인 용어를 동원한 것도 자유한국당이다. 조선일보가 들고나온 양비론이 부적절하단 얘기다.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지난 16일 경찰이 울산시청 공무원과 김기현 시장의 동생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하고 울산시장 비서실, 시청 건축주택과 등 5곳을 압수수색했다. 경찰 관계자는 "울산시청 공무원이 건설현장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있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혐의를 받고 있는 울산시 공무원은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특정 레미콘 업체를 공사에 참여시키라는 압력을 행사했고, 김기현 시장의 동생은 다른 아파트 현장에서 외압을 가했다는 고소·고발이 접수됐다. 김 시장은 자유한국당에 '관여한 바 없다'는 취지로 소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압수수색 당일이 공교롭게도 김기현 시장이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당일이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표적수사'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17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검찰만 정권의 사냥개 노릇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경찰도 이제 발벗고 나선 것을 보니 검·경 개혁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 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면서 "선거를 앞둔 울산시장을 음해하려는 경찰의 이번 작태는 선거 사냥개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 22일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경찰을 향해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다"면서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맹비난한 것은 경찰들의 분노에 불을 당겼다.

경찰 내부 인터넷망에는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경찰관입니다"는 피켓을 든 '인증샷'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특히 피켓에는 "돼지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이 부처로 보인다"고도 적혀있다.

▲25일 부산 사상구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사무실 앞에서 전국경찰 온라인 모임 폴네티앙 회장인 유근창 경남경찰청 경위가 장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현직 경찰관은 장제원 의원의 사무실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전국경찰 온라인 모임인 폴네티앙의 회장인 유근창 경남경찰청 경위는 "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경찰관이며 언제나 시민의 편입니다. 시민은 미친개가 아닌 사람경찰에게 신고합니다. 장제원 의원은 사상구민을 더 이상 부끄럽게 만들지말고 경찰 앞에 사과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25일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은 "심한 모욕감으로 분노감을 억제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황 청장은 "법과 원칙에 따른 지극히 정상적인 울산경찰의 수사에 대해 과도한 정치적 논란이 일고 있어 몹시 안타깝다"면서 "원론적으로 정당에서 공무원의 직무수행에 대해 정치적 셈법으로 평가를 내놓거나 비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황운하 청장은 "압수수색의 대상이 된 사건에 대한 수사는 시장 비서실장의 몇 가지 비리의혹에 대한 범죄첩보가 이첩된 1월 초부터 시작됐다"면서 "수사계획의 수립, 관련자 조사, 통화내역 조사 등에 두 달 정도 소요됐고, 3월 들어 증거물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황 청장은 "공천 발표일에 일부러 맞출래야 맞출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구속되면서 자유한국당이 검경의 수사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는 있다. 그리고 입법, 행정, 사법 3부는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뤄가는 게 원칙이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제2당으로서 경찰을 견제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법적, 도의적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경찰이 자당 소속 시장이 있는 지방자체단체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이유로 경찰을 비난하고 욕설을 퍼붓는 등의 행위는 '견제'가 아닌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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