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국회 행안위에서 집시법 강행처리를 막기위해 위원장석을 점거한 민주당의 모습. 위원장석에는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앉아있고 안경률 위원장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에서는 조진형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약칭 집시법) 개정안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게 뼈대인 조진형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을 두고 한나라당은 6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반드시 막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의석 수’가 최대변수로 떠올랐다. 날기치의 기억은 멀리에 있지 않다.

#1. 한나라당의 집시법 ‘날기치 시나리오 문건’ 발견

▲ 25일 국회 행안위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안경률 위원장ⓒ연합뉴스
24일 행안위 안경률 위원장석에서 하나의 문건이 발견됐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날치기 시나리오’라고 규정했다. 물론 한나라당도 해명이란 걸 하긴 했다. 25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은 “위원장은 여러 가지 예상을 하며 경우의 수를 둘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이 ‘날치기 시나리오’라고 말한 문건에는 “1항에서 11항까지 일괄 상정해 이의가 없으면 가결하겠다. 의사봉 3타 그리고 정회”라고 쓰여있었다. 토론이나 질의에 관한 문구는 없었다.

장세환 민주당 의원은 “한나라당에서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라고 하는데 한 가지 경우의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 역시 “이게 시나리오가 아니면 뭐냐?”라고 따졌다.

야당 의원은 24일 위원장석을 점거에 돌입, 25일 오전에야 농성을 풀었다.

#2. 질서유지발동은 언제 해야?…한나라당이 모를 리가 없다

▲ 25일 국회 행안위에서 안경률 위원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을 문제삼은 문학진 민주당 의원ⓒ국회방송
25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이날 오전 ‘질서유지권 발동’을 발동한 안경률 위원장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상임위가 봉쇄돼 행안위 소속 의원들 출입만이 허가됐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의원은 문학진 민주당 의원이었다. 문학진 의원은 “잘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2008년 12월 18일 국회 외교통상위에서 질서유지권이 발동돼 한나라당이 FTA 비준안을 날치기 상정했었다”며 포문을 열었다.

“당시 한나라당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낯 뜨겁게 국회의 일이 법원판결을 받은 바 있었다. 서울남부지법은 2009년 11월 23일 판결을 내렸다. 상임위 질서유지권은 장소적으로 회의장에 제한되고. 회의장 내부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시간적으로는 사후적 질서유지에 제한된다고 했다. 사전에 가상으로 있을 일을 예상하고 개연성만으로 질서유지권을 발동하는 것은 국회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문학진 의원은 “이 사실을 안경률 위원장이 모를 리가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집시법을 일방 강행처리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안경률 위원장은 당시 사실을 모를 리는 없어 보인다. 2008년 12월 18일 발행했던 사건의 파장은 상당했다. 문학진 의원은 당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함께 질서유지권의 최대 피해자가 됐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고 한미FTA 비준안을 상정하기 위해 문을 걸어 잠갔다. 외교통상위 소속 의원이었던 문학진 의원조차도 회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문학진 의원은 문을 열기 위해 망치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으며 그 후 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은 문학진 의원을 ‘폭력의원’으로 규정하고 연일 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2008년 최대 피해자로서 몸소 배운 질서유지권 발동에 대해 공부한 문학진 의원이 문제삼고 나선 것이니 할 말이 없어진 안경률 위원장으로선 할 말 없게 됐다.

#3. 일부 극소수의 국민들은 야간에 폭력시위를 원한다?

25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야간집회를 금지해야하는 갖가지 이유를 갖다 붙였다.

그 중 가장 놀라운 발언은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 입을 통해 나왔다. “우리 국민 중 극히 일부만이 야간에 폭력집회를 원한다”는 발언이다. 즉 야간 집회를 폭력집회로 등치시키는 유정현 의원의 발언,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야간집회를 금해야 한다는 이유는 대다수의 집회를 하지 않는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맞춰졌다. 모강인 경찰청 차장의 주장이 그랬다.

“소음 같은 경우 실제 집회현장을 측정해 기준을 넘어가면 볼륨을 낮추라고 경고를 준다. 따르지 않으면 확성기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도 있고 추후에는 사법처리도 가능하다. 그런데 벌써 피해를 입는 주변에 거주하는 분들이나 권리를 가진 분들의 입장에서는 소음 피해 자체는 이미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추후 사법처리한들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침해는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어렵다”

유정현 의원 역시 “법이라는 것은 국민의 법감정이 있어야 한다”며 “설문조사 결과 국민의 1/4가 일정 시간대의 집회를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금지시간대 역시 오후10시부터 오전6시가 적절하다고 한 것이 50%였다”고 말했다.

▲ 24일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진행된 '한나라당 야간집회금지법 강행처리 규탄' 기자회견의 모습ⓒ권순택

이 대목에서 24일 한나라당사 앞 규탄집회의 인권운동사랑방 랑희 활동가의 발언이 떠올랐다.

“23일 새벽 3시 30분 월드컵 한국 대 나이지리아 전이 열리는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가 밖에서 나는 소리에 잠을 깼다. 나는 명백하게 수면권이 훼손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월드컵과 대표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 그냥 웃으며 지나갈 수 있었다. 집회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야간 시간대에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집회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집회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고려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이지리아전 당시 월드컵 응원으로 인해 잠에서 깼다는 사람이 내 주변에서만 3명이나 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월드컵 응원 역시 집회라는 사실이다.

누구 말마따나 집회를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집회를 하지 않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며, 우리는 착한 사람의 권리가 침해당하도록 둘 수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집회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하고 있으며 필요가 있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유정현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이 진짜 오후10시부터 오전6시까지 집회를 금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말이다. 정부여당 비판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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