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벤져스의 별명을 고른 한국 여자 컬링 대표선수들은 평창동계올림픽의 피로를 씻을 새도 없이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참가 중이다. 올림픽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은 탓에 세계선수권은 조금 가볍게 임하려는 계획이었다지만, 워낙에 국내 컬링 인기가 높아져서 그럴 수 없다는 분위기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답게 한국팀은 13개국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도 처음부터 순항해갔다. 올림픽 결승에서 만났던 스웨덴 팀에게 설욕을 하지 못한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승수를 쌓아가는 중이다. 그렇지만 쌓인 올림픽 피로 때문인지 쉽게 이길 것이라 예상됐던 경기에서 의외의 고전을 겪는 모습도 보였다.

컬링 미국전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20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와의 경기와 21일 미국과의 경기가 그랬다. 이탈리아와의 경기는 초반에는 매우 순조롭게 전개됐다. 3엔드 스틸 점수 3점을 포함해 7 대 1로 압도하면서 전반을 마쳤다. 그러나 후반 들어 큰 점수는 아니었지만, 한국팀은 이탈리아에게 무려 4엔드를 연속으로 스틸을 당하며 연장을 맞아야만 했다. 전반에 워낙 벌어놓은 점수가 많아서 다행이지 그대로 역전을 당할 뻔했다. 다만 연장에서 가까스로 1점을 얻어 신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탈리아전은 21일의 미국전에 비하면 그나마 수월(?)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경기도 초반에는 순조로웠다. 1점씩을 주고받은 1,2엔드 탐색전을 마치고는 곧바로 3점을 내면서 근소하지만 우위를 잡으며 결국엔 2점차로 전반을 마쳤다. 그렇지만 6엔드를 1점으로 잘 막은 후 점수를 내어야 할 후공인 7엔드에서 미국에게 2점을 거꾸로 스틸당하면서 이탈리아전의 악몽이 떠오르게 했다.

이번 대회 성적을 봐서는 한국팀이 전혀 패배할 이유가 없는 경기였지만 한국팀의 전체적인 컨디션이 문제로 보였다. 컬링은 주최 측에서 매 투구마다 부여하는 점수가 기록된다. 한국팀은 모든 경기에서 모두가 80점 이상을 기록해왔지만 이날 미국을 맞아서는 김영미 선수만 가까스로 81%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선수들 모두가 70%대로 평소와 전혀 다른 상태였다.

컬링 이탈리아전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그렇지만 컬벤져스 팀 킴의 위엄은 그런 위기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드러났다. 후반 엔드 전반적으로 미국에 끌려가던 한국팀은 6 대 8로 몰린 상황에서 맞은 10엔드에서 2점을 얻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러나 연장은 선공이라 보통의 경우 패배의 가능성이 더 크다. 앞서 세 선수의 공방을 마치고 스킵인 김은정 선수에게 두 번의 투구만을 남겼을 때마저도 하우스 안의 상황은 미국에게 유리했다.

분명 표정은 어두웠으나 안경선배 김은정 스킵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두 번의 남은 투구를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국팀의 스킵이 평범하게 버튼 드로우를 성공시키면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거의 미국팀에게 굿게임을 청할 순서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미국팀 스킵의 투구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런데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의 승부가 넘어간 상황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미국팀 스킵의 드로우가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그만 하우스를 지나치고 만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팬들은 난리가 났다. 그 순간 동시접속자는 8천 명을 넘어섰다.

컬링 미국전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그 8천 명의 한국 컬링팬들. 그들을 요즘 컬링 난민 혹은 중계 난민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번 세계선수권 대회 한국 공식 중계는 중국과 일본 전 두 경기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팀은 매일 두 번씩의 경기를 치르고 있다. 그 경기를 직접 볼 수는 없어도 다른 나라의 경기를 통해 근처 시트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의 외침이나 엔드 중간마다 잠깐씩 비쳐주는 풀샷을 통해 선수들을 보겠다는 지극정성을 보이고 있다.

그런 한국팬들이 중계권을 미리 사두지 않은 방송사들을 원망하면서 ‘난민’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또한 운이 좋으면 이탈리아전과 미국전의 경우처럼 기존 중계하던 경기가 일찍 끝날 경우 한국팀 경기로 중계를 이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월드 컬링 티비측도 유튜브 중계에 한국팬이 몰리는 것을 알고 그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덕분에 평소라면 천 명이 되지 않는 유튜브 컬링 중계는 정작 경기 당사국의 팬들 대신 한국팬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고 있다. 컬링 극장이 열렸던 이탈리아 전에는 동시 접속자가 6천 명이 넘더니 미국전에서는 8천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중국전처럼 연습하듯이 이기는가 하면 미국전처럼 팬들의 애간장을 다 태우고 결국엔 이기는 컬벤져스의 컬링극장에 유튜브로 몰릴 중계난민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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