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에도 뉴스가 차고 넘쳤다. 그중에서 으뜸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소식이다. 다만 놀란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 외 중요 뉴스들과는 다른 부분이다. 그런 와중에도 교회 장로였던 이 전 대통령이 한 스님으로부터도 당선 축하금을 요구해 받았다는 웃지 못할 뉴스도 있었다.

이처럼 대형 뉴스가 넘치는 가운데도 유난히 네티즌들의 시선을 끈 것은 정식 뉴스가 아닌 한 기자의 트위터였다. 화제의 트위터는 국내 기자가 아닌 외신기자인 BBC 로라 비커였다. 비커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 기자들에게 정중한 부탁을 보냈다. 자신의 기사에 대해 공정한 번역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로라 비커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기자이다.

비커 기자는 몇 명의 기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 관한 자신의 기사를 왜곡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비커 기자는 기사 속에 두 개의 인용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에 대한 것인데, 국내 기자들은 인용이라는 전제를 빼고 그대로 ‘천재’와 ‘나라를 파괴하는 공산주의자’라는 번역을 통해 기사를 왜곡했다는 것.

BBC News 코리아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오죽했으면 BBC KOREA는 페이스북에 로라 비커 기자의 설명을 담은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이것이 흔한 외신 오역에 따른 오보로 취급하기에는 더 심각한 이면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BBC 기사는 남북관계와 대미관계를 다루고 있었다. 사실 BBC 기자가 인용한 내용에 새로운 사실은 없다.

오히려 일반적인 외신에 없는 국내 우익의 반응을 실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 인용의 행간에는 이미 평판이 높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 세계가 환영하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극우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해서 이런 기사에서 ‘공산주의자’라는 부분만을 짜깁기해서 오보를 생산하는 국내 언론의 저의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는 한반도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에게는 평화를 결정짓는 엄중한 사안이다. 곧 생존의 문제를 두고 장난쳐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오역과 오보가 단지 영어 해석 능력이 부족한 것이든, 아니면 의도적 오역이든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흔한 외신 오역 사건보다 이번의 오역 사태가 더욱 참담한 이유는 의도적 오역의 의심 때문이다.

로라 비커 트위터 갈무리

BBC가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했다면 평소보다 더 세밀히 기사를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국내 통신사의 번역본 외에도 원본을 확인하려고 했을 것이다. 외신 오역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닌 환경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오역 기사를 낸 매체들은 굳이 국내 오역기사를 인용했다. 실수로 위장하고 싶었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치밀한 선택이었을까?

해당 기사들은 로라 비커 기자의 트위터 이후 모두 사라졌다. 최소한의 반론도 없었던 것이 더욱 의심스럽다. 아무리 기레기라는 말이 일상 언어가 된 한국이지만 이런 정도는 너무 심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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