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월드컵 첫 16강에 오른 한국 축구의 쾌거는 실로 대단하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박쌍용이라는 조합, 그리고 이정수, 정성룡 같은 예상치 않은 선수들의 선전은 16강 진출의 원동력이 됐고, 앞으로도 아시아 최강은 물론 세계 축구계의 중심에 서려는 한국 축구에 큰 자산이 됐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뒤, 이에 못지않은 원정 16강 진출은 한국 축구사(史)에 길이 남을 '성과 가운데 성과'였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거두는데 큰 역할을 해낸 사람이 있다면 바로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지난 2년 6개월동안 누구보다 숱한 시련과 어려움을 겪었던 허정무 감독은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을 보란듯이 뒤집어버리며, 국내파 첫 16강 감독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적절한 신예 선수기용을 통해 이뤄진 신-구 조화, 이전 감독이 해내지 못한 4-4-2 전술을 어느 정도 정착시킨데 성공한 것은 그만의 소신과 뚝심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과 몇개월 전에 경질설에 휩싸이기도 했던 그였지만 '당당하고 유쾌한 도전'을 펼친 그는 어떻게 됐든 월드컵 16강 감독이라는 명예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김지한)
하지만 꽤 상당한 숫자의 축구팬들은 허정무 감독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아르헨티나전, 나이지리아전에서 지나치게 '지키는 축구'를 보여줘 한국 축구 특유의 패기 있고 공격적인 축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허정무 감독은 아르헨티나전에서 지나치게 수비 안정화를 목표로 한 4-2-3-1 전술을 어설프게 사용하다 1-4로 대패해 그리스전에서 보여준 긍정적인 이미지가 완전하게 무너졌고, 나이지리아전에서는 2-1로 앞선 상황에서 이동국, 이승렬같은 공격수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을 투입한 것이 '잠그기식 축구'를 하기 위해서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연장전, 승부차기가 있는 토너먼트 전에서 잠그기 축구를 한 뒤, 승부차기에서 승부를 걸어 4강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고, '허무 축구' 논란도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일부 축구팬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도 많고, 결과만 좋고 내용이 없는 것 또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전처럼 우리가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경기를 계속 해서 펼쳐 나갔다면 이런 논란은 완전히 사라졌겠지만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전에 아쉬웠던 용병술은 개인적으로 비판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답답하게 했던 부분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부분을 놓고 봤을 때 2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팀을 만들면서 어쨌든 최종적인 목표였던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뤘고, 부정적인 면이 있었다 해도 경쟁과 원칙을 앞세워 경쟁력있는 팀을 만들었다는 것은 충분히 평가받을만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특히 본인 스스로 달라지려 하면서 강골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선수 중심의 팀을 정착시켰다는 점, 그래서 보다 더 당당하고 유쾌한 도전을 월드컵 본선에서 해 나가려 한 점은 허정무 감독이 하나의 팀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꼭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 논란이 있고 답답함을 호소하기는 해도 어쨌든 각 대륙을 대표하는 팀들 사이에서 16강이라는 쾌거를 이뤄낸 것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물론 예선 3경기를 치르면서 드러난 약점, 아르헨티나전 이후 특정 선수를 거론하며 책임을 전가하려 했던 부분은 충분히 비판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내용도 없이 무작정 비난을 퍼붓는 것보다는 나름대로 성과를 낸 부분이 있다면 조금씩 인정해 주면서 건전하고 발전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여전히 월드컵 무대에 도전하는 허정무 감독이나 많은 축구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비난을 한다 해도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는 만큼 일단 토너먼트에 도전할 허정무 감독의 소신을 믿고, 결과가 완전하게 나온 뒤에 칭찬과 비판을 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어쨌든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을 일궈낸 감독은 허정무로 기록에 남게 됐고, 선수들 또한 허정무 감독에 대해 신뢰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