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대선 후보 부인을 비롯해 이른바 퍼스트레이디를 다룰 때 꼭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내조’라는 단어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발행된 20일자 대다수 신문들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부인 김윤옥씨를 한국의 전형적인(?) 여성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조’ ‘현모양처’ 등과 같이 남성중심의 용어를 사용해가며 “여자는 집에서 밥하고 남편을 보필해야 한다”는 사회의 통념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 국민일보 12월20일자 7면.
다음은 오늘자(20일) 신문기사 중 이명박 당선자의 부인 김윤옥씨를 다룬 것이다.

국민일보 <“1등은 원래 억울” 조언> 7면
경향신문 <김여사는 ‘안방야당’>10면
동아일보 <미역국 대신 뭇국 상차려> 13면
서울신문 <조언 서슴지 않는 ‘Mrs. 쓴소리’> 8면
세계일보 <튀지않는 내조…집안내 ‘Mrs. 쓴소리’> 15면
조선일보 <청와대 새 안주인 김윤옥 여사> 15면
한국일보 <“아내보면 걱정 사라져…” 낙천적 내조> 19면

오늘자(20일) 신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민일보다. 국민일보는 김윤옥씨의 사진을 사진을 실었는데 이 사진 속에서 김씨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국민일보는 7면 <“1등은 원래 억울…극한 표현 말라” 조언>에서 “1966년 이화여대 보건교육과에 입학한 부인 김윤옥씨는 미모와 말솜씨가 뛰어나 ‘과퀸’에 뽑힐 정도였다”며 “김씨는 ‘그림자 내조’에 충실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3면 <미역국 대신 뭇국 상차려>에서 “김여사는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오전 8시쯤 정성스레 생일상을 차렸다”며 “미역국 대신 뭇국을 차렸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씩씩한 윤옥씨’ ‘가정 내 야당’으로 불리는 김여사는 ‘활발한 그림자 내조’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물밑에서 전국 곳곳을 돌며 이 당선자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고 강조했다.

▲ 한국일보 12월20일자 19면.
일부 신문들이 ‘내조’를 강조할 때 한국일보는 더 나아가 ‘사이버 내조’까지 소개했다. 한국은 19면 <“아내보면 걱정 사라져…” 낙천적 내조>에서 “김씨는 인터넷 블로그 ‘가회동 이야기’를 만들어 이 당선자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글과 동영상을 올리는 등 ‘사이버 내조’에도 열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도 15면 <튀지않는 내조…집안내 ‘Mrs. 쓴소리’>에서 “김씨는 이 당선자의 건강을 위해 직접 부추 즙을 만들고 생강, 대추 등을 손수 달여 유세갈 때 꼭 챙겨줄 만큼 세심하다”며 “‘현모양처’ 형에 가깝다”고 전했다.

‘내조(內助)’는 ‘안에서 돕는다’를, ‘외조(外助)’는 ‘밖에서 돕는다’를 뜻한다. 주로 아내가 집에서 살림하고 남편이 밖에서 돈벌이를 하던 시절에 생겨난 용어다. 어찌보면 21세기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그런 단어인데 대다수 신문은 아직 그 용어를 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고정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는 이러한 용어는 가급적 지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동등한 성역할을 주장해야 할 언론이 ‘내조’ ‘현모양처’와 같은 표현으로 우리사회의 ‘전형적인 여성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모습을 '2007 대선'에서 지켜보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현실인 것 같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